“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매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6:14-16절)
교회 출석하는 걸로 믿는 자라는 평가는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바야흐로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계3:14-22)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통째로 몽땅 망할 조짐이 보입니다. 신 불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두고 양편을 갈라야 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천국시민이 아닙니다(마7:21) 믿는다고 하지만 불신자가 많습니다. 예수를 믿느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믿느냐? 다시 오실 예수를 믿느냐 자신 안에 임마누엘이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느냐? 육신의 축복을 구하느냐 영을 좇아 성령의 기름부음을 최고의 복으로 알고 구하느냐?
하나님에게(간접목적) 무엇을 구하느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직접목적) 구하느냐? 믿지 않는 목회자, 믿지 않는 교인, 믿지 않는 배우자, 믿지 않는 친구, 믿지 않는 동료, 믿지 않는 파트너... 참 어렵습니다. 목회자 세미나를 해 보면 믿지 않는 사람이 어찌 그리 많은지 모릅니다. 바울의 신앙의 기준은 그리스도를 자신 안에 모신 믿음입니다(고후13:5) 복음을 위해 나선 주의 종들이 결혼을 하려면 적어도 로마서 8장은 서로 공유하는 사이가 되어야 할 겁니다. 믿지 않는 배우자 참 골치가 아픕니다. 생각이 다릅니다. 말이 달라요. 행동노선이 다르고 가치관이 달라요. 당연히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가 다릅니다.
얼마나 많은 남자 사역자들이 믿지 않는 아내 때문에 속을 앓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여자 사역자들이 믿지 않는 남편 때문에 신음하는지 모릅니다. 겉으로는 멀쩡할 수 있습니다. 하늘이냐 땅이냐, 영이냐 육이냐, 빛이냐 어둠이냐, 성전으로서 항상 주님과 교제하고 천국을 침노하느냐 욕심에 의해 이것저것 잔뜩 마음에 벼르고 있느냐, 믿지 않는 자, 참 골치 아프고 힘에 겹습니다. 차라리 세상이 편합니다. 오감대로 상대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오감 나아가서 육감을 들고 와서 얼굴을 들이대면 이거 보통 고문이 아닙니다.
롯의 처가 하나님을 안 믿었겠어요? 사울 왕이 하나님을 안 믿었겠어요? 그럼에도 소금 기둥이 되고 역사적으로 두고두고 부정적인 신앙의 상징인물이 되었습니다. 요는 자신의 몸이 성전이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육신의 우아함이나 친절, 상냥함이나 아름다움은 계산하지 마세요. 믿지 않는 자의 육신은 믿는 자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동행이 안 됩니다. 사용하는 방향이 전혀 다릅니다. 자신의 몸을 성전으로 알고 그 기능과 역할을 진보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자들 가운데서 조용히 나와 따로 계세요. 아버지께서 영접해 주실 겁니다(고후6:17) 믿는다는 이름은 있으나 진리의 성령이 없는 믿지 않는 자들 곧 회색분자들이 참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