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깨달음에서 영혼의 구원까지

죄를 깨달음에서 영혼의 구원까지



“율법은 장차 올 좋은 것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1,2,10,14,39절)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죄를 다 씻어 하늘 문을 여시고 들어가게 하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 참 좋은 찬송입니다. 죄인이 복음을 듣고 죄 사함을 받아 성령의 가르치심과 이끄심을 받아 천국 안에 들어가는 과정을 노래합니다. 바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인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죄를 기억나도록 하므로(히10:3) 참 죄 사함의 메시야를 기다리도록 하는 임시조치법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하시지 않고 한 몸을 원하셨는데 바로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한 몸의 제사를 예비하셨습니다(히10:5) 곧 십자가의 속죄와 화목의 제물입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단 한 번의 제사로 인해 그리스도 안에 예정이 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죄와 육체와 세상의 반대편으로 분리시켰기 때문에 거룩입니다. 우리의 거룩한 행동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사건으로 우리는 죄인의 동네에서 의와 거룩의 동네로 일괄적으로 옮겨졌기에 거룩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저력은 이 거룩의 분기점을 통과할 줄 아는 진리의 지식을 가진 자들을 통해 나타납니다. 육신의 자리에서 거룩을 외치고 아무리 성도의 기업의 풍성 운운해 봐도 속빈 강정일 뿐입니다. 그건 사망에서 생으로 옮긴 이면의 거룩이 아니라 분칠한 외면의 거룩이기 때문입니다. 볼품만 있을 뿐 쓸품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믿어 순종, 롬1:5) 세례와 성찬의 의미를 거듭 묵상하면 자신이 거룩하게 된 위상을 확신하게 됩니다.

바로 진리로 거룩하게 된다는 주님의 말씀의 참 의미입니다(요17:17) 이 거룩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도전하는 자격지심이 일어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를 따라 가서 그와 하나가 되는 영적인 작업이 분주해집니다. 이를 두고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다 하십니다. 곧 하늘에 속한 자의 영, 휴거의 영이 된다는 의미이며 하늘에 앉으신(엡2:6) 주님과 연합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므로 온전함(complete unity, 요17:23)을 이룬다는 바로 그 말씀입니다. 이 정도가 되면 예수의 피를 힘입어 그리스도의 그 공로와 그 과정에 인도함을 받아 그 몸으로 열어놓으신 휘장 안으로 열린 새롭고 산 생명의 길을 담대하게 나아가게 됩니다(히10:19)

하늘 성소에 들어가 계시는 대 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영과 진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요4:24) 곧 끝까지 다가 갈 수 있는 믿음으로 얻는 영혼의 구원입니다(벧전1:9절 참조) 진정한 영혼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과 진리의 영을 따라 하나님께 닿아야만 얻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을 거부하고 방해하는 죄는 어느 누구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다만 이 구원은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뒤로 물러가지 않고 당당히 앞으로 나아갈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해 뒤로 물러가면 곧 멸망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히10:38)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완성해 두신 거룩과 온전함 그리고 영혼의 구원을 얻는 전 코스를 좇아가는 일에 잠시의 중단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