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후6:11-13절)
요즘 시쳇말로 말로 ‘쫄지 마!’ 하는 표현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복음을 받았지만 그 복음을 펼쳐 자신들의 것으로 삼는 일에는 아직 아득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보세요. 그게 진짜 복음인데 어마어마하지요. 만약 자신들의 것이면 자다가 벌떡 일어날만한 구원이며 영광이며 능력이며 권세이며 소망이지요. 그럼에도 고린도교회는 도토리 키 재기를 하는 중입니다. 사도들을 두고 편을 가르고, 빈부로 편을 가르고, 은사의 종류로 편을 가르고, 연보를 하느니 마느니 하고 편을 가르고, 전통을 지키느냐 마느냐 편을 가릅니다. 그야말로 좁쌀 신앙들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환난과 고난 그리고 고독과 박탈을 통해 가슴이 아주 작게 쪼그라드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의젓했던 큰 아들이 아이처럼 굴어대니 우리 어머니께서 ‘아이고 우리 아들은 점점 못해 진다’하신 적도 있습니다. 그 말씀은 그렇게 위풍당당하던 남자의 모습은 어디에 가고 쪼잔스러워 졌는가 하시는 말씀입니다. 진짜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적이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즈음입니다(시23:4) 그래서 지금도 헛기침을 하고 가성을 쓰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보면 ‘저 친구 아직 3층에서 떨어진 메주 덩어리 되려면 멀었네’ 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저는 한국교회에서 나와 세계 속으로 끌어내신 하나님께 찬양을 합니다. 만약 그대로 있었으면 내 교회, 내 교인, 내 교단, 내가 속한 신학교의 신학 운운 하면서 얼마나 좁쌀과 같았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하고 현기증이 납니다. 지금도 전 참 작은 사람이지만 전에는 참으로 더 작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 눈치 저 눈치, 이 체면 저 체면... 혹시나 내 이름이나 얼굴에 뭐 오물이라도 튈까 쩔쩔 매던 시절, 수욕을 그렇게 못 참고, 교권이나 단체의 왕따를 그토록 두려워하던 때의 일을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습니다. 어차피 수욕에 배부르고 고독을 즐겨야 대물이 되는 것인데 말입니다. 근데 제가 대물이라는 말은 아니나 바울과 같이 오대양 육대주를 향해 입도 열렸고 마음도 열렸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전 세계를 향해 내 말을 들으라 할 수 있고, 전 세계를 가슴에 담고 쭉 마음으로 훑어 나가는 기도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늘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두 발을 딛고 영상 34도 온도에 땀을 뻘뻘 흘리면 제 손으로 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그렇다는 말입니다. 한국교회를 향해 입도 열리고 아시아, 미국, 중국 아니 유럽, 아프리카 어느 누구든지 나를 만나면 수지가 맞을 거라는 확신하는 입을 가지고 있고, 불타는 마음을 열어젖히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작은 자 중에 작은 자의 간덩이를 키우신 거지요. 영광과 욕됨, 악한 이름 선한 이름, 무명하든 유명하든, 내 인생이 끝났다고 하든 말든, 아무것도 없는 자라고 하든 말든 나는 모든 것을 단 한 마디로 끝냅니다.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졌노라 그 분의 영과 생명에 잡혀 그 분의 복음을 미친 듯 외칠만한 비밀을 가졌노라’고 크게 외칠 수 있는 사나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