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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시리라 하셨느니라”(엡5:14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마6:13) 날마다 반복할 우리의 기도이며 주께 간청할 일입니다. 우리는 여차하면 마귀와의 씨름에 넘어집니다. 혈과 육의 씨름이 아니라 공중권세 잡은 악한 영들과의 전투입니다(엡6:12) 십자가를 중간에 두고 죽느냐 사느냐 치열한 공방이 없는 사람은 이미 사탄의 수중에 떨어져 있는 중입니다. 이런 사람들, 나도 한 때에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적이 있다, 환상과 꿈을 봤다, 방언도 하고 열심히 복음을 전해 봤다, 성경을 사랑해서 읽고 또 읽은 적이 있다 등등... 이런 사람들은 지금 성령을 소멸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곧 잠자는 신앙이며 죽은 자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고독하게 경건의 훈련을 쌓는 게 아니라 롯처럼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 놓고 세상의 여러 스펙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윗처럼 성전에서 오직 하나님만 쳐다보고 아뢰고 의논하며 징징거리는 신앙이 아니라 사울처럼 인간적인 맛을 풍기는 사람으로서 세상에 내 놓아도 멋이 있는 신앙입니다. 문제는 그들과 하나님은 끝내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썩은 것, 더러운 것, 죽은 것들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긴 하겠지요. 당연히 믿는다고도 하겠지요. 그러나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고 구원의 즐거움이 사라졌습니다. 비판은 하되 용납은 하지 못하고, 판단은 하되 그 일을 해결할 방법과 능력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찬송이 없습니다. 구원 받은 이후의 진행방향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표적, 은혜, 영생의 순서에 따라 차례로 나아가야 할 신앙을 그만 업무에 종사하고 사람의 칭찬 받고 그들로부터 혜택을 보는 신앙으로 빠져버렸습니다. 모르면 모르되 거의 모든 선교사들이 이 함정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겁니다. 그 눈에 그리스도의 빛의 정기가 사라졌습니다. 그 음성에 기름부음이 없습니다. 심령이 말랐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신앙은 심령의 배고픔(마5:3)부터 시작해서 성령을 간절히 구하는 것(마7:7-12)으로 진행이 되어야 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사모하는 마음 곧 영의 주리고 목마르고 갈급한 마음이 사라진 상태가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그 위기는 날마다 찾아옵니다.어쩜 주변 사람들이 다 원수일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죽지 않기 위해, 잠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잠이 들면 그리스도의 빛도 장님의 기름 값입니다. 소용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 빛하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산 자, 그리스도 안에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자에게만 그리스도는 빛으로 비췹니다. 아! 그 행복,그 만족, 그 찬란한 기쁨, 측량할 수 없는 풍성, 영광스러운 즐거움... 주변의 죽은 자들을 조심하세요. 특별히 가족을 유의하세요. 원수는 항상 집 안에 있습니다. 들릴라가 삼손을 잠들게 하듯 살았기 때문에 죽이지는 못하고 잠들게 하는 악한 영의 마취제들이 우글거립니다. 세월도 악하고 사람도 악합니다. 어둠의 사람을 조심하고 죽은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영혼이 죽지 않고 살아가려면 절대로 잠들지 말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