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겉사람, 보이지 않는 속사람

보이는 겉사람, 보이지 않는 속사람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6-18절)


목사의 설교수준이 성도의 수준입니다. 한국교회의 설교가 아직 전도설교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거듭남도 영접도 새 하늘 새 땅도 어디에 가서 과외를 받아야 할 정도입니다. 그게 신학교의 수준들입니다. 율법이냐 은혜냐, 십자가의 마을이니, 종말론이니, 성령 컨퍼런스니 하는 과제도 어쩜 과외 선생을 만나야 해결이 되기도 합니다. 거기다가 자신이 뭐 구원의 진리의 족집게 선생이나 되는 것처럼 철학관 광고처럼 선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참 피곤합니다.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 자신을 발견하면 되는 일인데 거창하게 말을 꾸미는 사설 구원의 선생들이 우후죽순과 같습니다.


교회가 구원 받은 그 이후의 진로를 제시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후4장은 우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비치는 빛이므로 보배가 질그릇 속에 담긴 것과 같다는 말씀으로 시작이 됩니다(고후4:6-7) 성령이 오시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이입하십니다. 그래서 심히 큰 능력은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에게 있지 바깥 껍데기에게 있는 게 아닙니다(고후4:7) 이를 알고 난 다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행해야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됩니다(고전1:18,24) 자신이 죄에 대해 죽은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해서는 산 자임을 스스로 계산(롬6:11)할 줄 모르는 사람이 십자가 운운하면서 몰랑몰랑해 지는 것이 영성인양 생각하는 무리들이 많습니다.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은 자, 곧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경건으로 재창조되지 않고는 절대로 사랑(아가페)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 증거는 사람이 딱딱하면 딱딱한 대로 이기적이고, 몰랑몰랑하면 몰랑몰랑한 대로 이기적인 겁니다. 그러나 자신 안에 그리스도께서 빛과 생명과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 되시는 체험을 한 사람은 자신을 예수의 죽음에 수시로 넘깁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으로 자신의 목숨을 죽입니다. 끝내 그 새 생명의 존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 설 줄을 믿기 때문입니다(고후4:14) 여기서부터 겉사람은 포기하고 속사람을 사용하는 영적전투가 벌어집니다. 환난이지요.


육체대로 막 살지 못하는 것 자체가 바로 환난입니다. 이 레슬링은 죽을 때까지 반복이 됩니다. 영적인 신진대사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 거룩이니 사랑이니 말하는 것은 다 말장난입니다. 겉치레요 미학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 심겨진 새 피조물입니다. 그 분에게 붙은 연약한 가지일 뿐입니다(요15:5) 우리가 할 일은 주께 붙어서 주를 사모하고, 그 이름 안에서 간절히 구하는 일뿐입니다. 모든 열매는 충만해야만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과일은 씨가 영글면 바로 썩어갑니다. 속사람 곧 보이지 않는 영원한 영광의 몸이 되어가는 만큼 겉사람이 점점 쇠하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