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사모하라

성령을 사모하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 줄줄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니라”(마7:7,11,12절)


어제 밤에는 밤새 꿈속에서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는 말씀을 지인에게 설명하고 또 이 메일로 보내고 하다가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건 우리의 수준이 아직 십자가를 두고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육체를 사용하다가 겨우 영을 따라는 사는 정도라는 말입니다. 애굽의 생활습관이 이스라엘의 뇌리에 깊숙하게 박혔던 것처럼 육체의 노예로 살게 하는 이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늘에 속한 사람들은 날마다 출애굽을 하고, 날마다 저 높은 곳을 향해 부르짖고 걸어야 합니다.


가나안에 정착이 된 이스라엘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중에 8복의 말씀을 늘 묵상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고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하나님의 온전함에 이릅니다(마5장) 이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은 주기도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날마다 주기도로 자신의 기도를 대신합니다. 그 속에 하늘의 신령한 복이 다 들어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하늘의 보화를 발견하고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마다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됩니다(마6장) 5장에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6장에서는 그 의가 자신의 것이 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7장에서는 그 의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의가 되도록 성령을 구하게 됩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립니다. 이로 인해 좁고 생명의 길을 걷고, 좋은 나무가 되어가며 반석 위에 세운 집이 되어 갑니다(마7장)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와서도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광야를 뒤돌아보는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 옮겨놔도 표적이나 기사를 위해 성령을 구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한참 동안 그러겠지요. 그리스도 안에서 신입생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질 때까지... 하나님의 사랑도 조건적입니다. 이렇게 할테니 이렇게 해 주세요. 그렇게 하시면 나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런 식이지요.


성령을 구하라고요? 그게 하나님을 대접하는 곧 하나님 사랑(율법과 선지자)이라고요? 벌써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잖아요?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잖아요?(갈3:2,5) 우리 몸이 벌써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 되었는데 왜 성령을 또 구해야 하나요?(고전3:16-17) 아뇨. 그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발언이 아닙니다. 아직 자신을 사랑하는 신앙일 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성령을 사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며 가장 좋은 대접입니다. 그리고 눅11:1-13절처럼 친구를 위해 떡 세 덩이를 강청하듯 이웃사랑을 위해 성령을 구하고 찾고 두드릴 수 있다면 신앙의 완성 단계를 치닫고 있는 겁니다. 그 경지에 가면 우리가 이 세상에 더 머물 마음이 없어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