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2-17절)
공부를 해 본 사람만이 공부의 가치를 압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 사랑에 심취해 본 사람만이 그 사랑의 높이와 넓이와 깊이와 길이를 압니다. 신앙의 과정을 너무 단순하게 설정해서 유치하고 천박한 기독교를 만드는 거짓 선생들 때문에 건물만 번드르르 하고, 성도의 경건의 능력은 흔치 않습니다. 온갖 이단사설이 일어나는 것도 이를 보다 못한 하나의 비뚤어진 신앙의 과외 심리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되신 교회입니까? 하늘의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를 따라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하늘의 백성입니까? 신앙의 구도를 제대로 잡으세요. 이건 항상 맞고 옳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적어도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의 로드맵이라도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게 있어서 가장 많이 틀리는 것은 육신을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심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어긋납니다. 혼자 있을 때는 그런대로 자신을 영 안에서 지키고 있다고 남과 대화를 할 때는 그만 조급해 지고 충동을 받아 전혀 엉뚱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맙니다. 실망스럽고 밉습니다. 분명히 주께서 몸은 죄로 죽은 것, 영은 의로 인해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어 놓고 온 세상에 방을 붙여 놨음에도 그게 그리 용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탈출이며 날마다 죽음입니다.
하늘의 속한 자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하고, 영의 기운으로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왕세자가 왕의 아들 닮아야지 포장마차에서 어묵이나 먹고 노닥거리고 있으면 어떡하겠습니까? 사실은 우리는 육신의 의무로 살아야 할 책임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선악과 독성에 찌든 지난날의 습관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와 성찬을 반복 연습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악한 습관에서 탈출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의 40년 광야걷기와 같습니다. 거기서 애굽의 노예근성이 다 죽습니다. 인간은 육신의 노예근성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 체면치례 경쟁의식 등등은 다 자신의 육신의 종이라는 증거입니다. 자기 방어가 강한 사람이나 교만이나 비굴이 다 그런 부류입니다. 그러나 영을 좇아 행하는 사람은 자유와 담대함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다운 기풍이 있습니다. 수치를 당치 않고 부요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끝내 그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찬송을 부릅니다.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 하네’ 아무리 이 세상의 고난이 무섭더라도 하나님의 자녀이며 상속자에겐 그 영광을 먼저 보여주시고 건너오라 따라 오라 하십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