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에서 거처까지

계명에서 거처까지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함께 하리라”(요14:21,23절)


계명하면 율법의 조항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기도 하겠지요.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 있으면 성경의 모든 말씀이 행동을 요구하는 법조문이 되지요. 그러나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에 있으면 주의 모든 가르침은 받아들이고 따르는 명령으로 다가 옵니다. 계명하면 법정신으로 ‘따라야 한다, 순종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먼저 복음을 제대로 듣고 받아들여 살기부터 먼저 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세의 계명이 아니라 나의 계명 곧 주의 계명은 구원의 전 과정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계명을 지킨다는 뜻은 주의 계명을 가지고 따른다는 뜻입니다(has my commands and obeys them)


행동으로 지키는 계명이 아니라 믿음으로 따르는 계명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안 지켜도 되느냐 물으십니까? 그런 바보 같은 물음엔 대답을 안 하는 게 상책이지만 잠깐 설명하자면 성경의 주의 모든 명령 동사는 존재가 먼저 된 뒤에 나오는 행위들입니다. 사랑이란 존재가 사랑하게 하고 복이란 존재가 축복하게 됩니다. 아시겠지요? 율법 아래의 서기관들은 육체가 나 홀로 법을 만나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천국의 서기관들은 새 언약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이루어 그 법을 완성해 가는 겁니다. 당연히 삼위 하나님의 공동 작품이십니다.


율법을 완성해야 하는 요구(의) 옛 언약이나 새 언약이 같습니다. 근본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다만 그 방법이 다릅니다. 그게 바로 주의 계명입니다. 새 계명입니다(요13:34) 따라서 주의 계명이라면 앞에 있는 20절의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를 생각해야 합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이런 실제상황이 우리 안에 일어난다는 약속입니다. 또 구원을 얻기 위해 사랑을 얻기 위해선 반드시 믿음으로 간직하고 따라야 할 계명입니다. 만약 주를 사랑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생각만큼 이 구원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와 십자가와 성령의 은총 안에 머물지 않으면 하늘에 있는 주님은 사랑하고 사모할 수 있으나 내 안에 계신 그 분을 사랑하기는 매우 껄끄럽습니다. 아니면 거의 천사 수준입니다. 주의 말씀 곧 주의 가르침을 지키고 따르는 것을 바로 양이 목자를 따르듯 주를 사랑하고 따르는 일입니다. 사랑하면 목숨을 걸고 끝까지 따릅니다. 정말이지 주를 따르는 일은 육체의 목숨을 걸고 주의 생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사랑이 원료로 주어지고 주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주께서 머무는 거처가 되십니다. 신분이 달라지고 생각과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