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24-25절)
구원에 있어서 아무리 강조를 해도 부족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생겨난 옛적과 오늘 날의 자신입니다. 기독교가 타협을 할 수 없는 극단이며 독선이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길 외엔 하늘을 두고 단언하건대 구원은 없습니다. 아담 안에 있던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입어 십자가를 건너 그리스도 안에 옮겨졌다는 사실이 바로 어이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이후에 성령의 감동을 자신 안에 일으키기 위한 준비로는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의 은총을 묵상하고 거기에 자신을 결부시키는 정신적인 작업뿐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진실로 진실로(아멘 아멘) 두 번 말씀하시는 부분은 반드시 자신에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주를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과 연결을 짓는 믿음을 가진 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을 듣는 자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 죄와 사망이 없는 새 땅으로 옮겨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옛 땅 곧 옛 하늘 밑에 있다면 율법이 다스리는 자리에 있기에 영생은커녕 하나님의 정죄가 그 위에 얹혀 있는 죄인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에 의한 사망이 늘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이라는 형이상학의 새 땅을 설명하시기 위해 구약을 통해 가나안이라 약속의 땅을 설정하신 것을 기억하세요. 거기서만 말씀이 들리고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옵니다. 구원이며 생명의 땅입니다. 가나안 외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엔 그 아들로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 아들의 음성이 바로 구원이며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 죽으심과 다시 살으심을 믿음으로 따라와 오늘이라 하는 때에 들리는 그 아들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고 또 살아가야 합니다.
만약 날이 가면 갈수록 죄인이었던 옛날과 의인이 된 지금의 구분이 더욱 명확해 지면 그만큼 생명의 성령의 역사에 예민해 집니다. 두루뭉술하고 얼렁뚱땅한 사고로 구원 운운해서는 성령이 그 믿음을 보증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부평초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다니고, 바람에 나는 겨와 물결과 같은 신앙의 원인은 복음을 듣고 진리를 발견하고 그 대속의 은총의 과정을 반복 답습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업무 중심의 신앙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라도 주님을 들으세요. 어떤 제물보다 낫습니다. 그래서 옮겨온 그 자리에서 이른 비와 늦은 비와 같은 생명의 비 곧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서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