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시느니라“(요5:21절)
오늘은 사는 이야기를 좀 하십시다. 사실 사는 게 구원입니다. 죄 사함도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살기 위한 과정입니다. 근데 그 생명은 아담 곧 죄인이라는 옛 사람 안에는 절대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세뇌를 받듯 많이 듣고 나면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은 것 같고 한 일이 그럭저럭하니 천당도 갈 것 같은데 새 생명이라고 하면 갑갑해 집니다. 은혜만 받으면, 성령만 임하시면 그렇게 될 것이다 하는 막연한 소망을 가지고 신앙의 관성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의 자리에서는 절대로 하늘의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의의 자리로 옮겨 앉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일으키시고, 살리신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성경번역자들이 이 부분을 좀 분명하게 표현을 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사망에서 일으키신다 하심은 아담 안에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주와 함께 십자가에 죽인 다음 주와 함께 다시 살려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 놓은 기상천외한 사건을 말씀합니다. 이 과정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답습하지 않고 생명 운운하는 것은 말장난입니다. 저는 칼빈을 존경합니다. 어떤 사람은 칼빈을 알지도 못하고 칼빈주의자라 하고 어떤 사람은 칼빈을 알지도 못하고 비난하지만 나는 바울 이후에 칼빈만한 신학자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당신 안에 계시지 않으면 예수께서 하신 일도 당신 안에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다함은 이미 아담 안에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오는 거래가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을 주십니다. 아낌없이 주십니다. 충만하게 주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미 38년 된 환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5:8) 하시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자를 그 말씀으로 살리셨습니다. 시청각으로 그 말씀이 생명이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나도 생명을 줄 것이다(give life) 하십니다.
38년 된 병자가 말씀을 붙들고 일어나 걸었고요? 이거야 말로 신성모독입니다. 우리 주께서 천억의 별들에게 차렷하시면 그 앞에 부동자세로 서고, 산천초목에게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니 이 환자가 그 말씀대로 나아서 걸어간 겁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자신 안에서 자신을 따라와 구주로 머리로 붙들고 있는 ?湄湧?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가나안 땅에만 생명의 비가 이른 비와 늦은 비로 내린 것처럼 오직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그리스도 안에 다시 산 자들에게만 주님은 생명을 주시되 풍성하게 주십니다. 온전한 복음만 전하고 들어도, 거듭남탁아원이나 영접유치원이나 무허가 신천지 타운 같은 것은 없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