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만날 기회

주를 만날 기회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난하주:죄를 깨달을 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라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로다”(시32:6-7절)

주를 만날 기회를 만드는 데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의 동선에 자신을 결부시키는 일 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자신을 죄인에서 출발시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건너가서 그 안에서 발견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행하신 일을 받아서 믿음으로 따르지 않으면 당연히 그 반대편에 서 있게 됩니다. 주여 주여 불러대도 주님과 아무 관계도 없고, 교류도 없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드리우게 됩니다(요3:36b, 롬1:18) 영생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다음 주님과 상생의 관계(계3:20) 속에서 의를 얻어 평강과 기쁨을 누립니다(롬14:17)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 하나님 편이 아니라 죄인 편, 곧 마귀의 편에 서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자에게는 정죄가 없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은 아예 정죄를 향해 서 있습니다(요3:18) 여기서 인간의 모든 부정적인 심적인 요소와 환경이 설정이 됩니다. 심하면 여름 가뭄에 마른 나무처럼 됩니다(시32:4) 보통 환난을 통해 자신의 위치와 소속이 죄인의 자리라는 사실을 알고 그리스도께 돌아 온 사람들을 보면 깻묵과 같이 기름기가 쭉 빠져 있는 걸 많이 봅니다. 자신의 의에 걸려 말이나 노새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시32:9)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자신의 편으로 끌어가시기 위해 재갈과 굴레를 쓰십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키를 가진 것을 다 써 보고 또 써 본 다음에야 자기를 버리고 주님께 안기게 됩니다.

우리는 말로 해서 그리 순순히 따르는 종자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다윗은 말씀을 듣는 중에 공짜로 의를 얻은 행복 곧 허물의 사함을 받고 죄의 가리움을 받은 것이 복이며, 마음에 간사가 없어 이러쿵저러쿵 변명 없이 예 알겠습니다 하고 말씀을 듣고 믿고 따라가서 주 안에서 하나님의 정죄에 걸리지 않는 것이 복 중의 복이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시32:1-2) 경건이란 자신을 표현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 나타내려고 하는 영성입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육체는 어둠을 좋아해서 날마다 음부에 출퇴근을 하는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의 죄 됨을 고백하고 빛으로 돌아가므로 그 보혈의 능력으로 깨끗함을 얻습니다(요일1:9) 다윗은 왜 주께서 은신처가 된다고 노래할까요? 주님 안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거기는 홍수가 미치지 못하고, 구원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입니다. 지금 온갖 잡설이 홍수와 같이 흘러넘칩니다. 뱀의 말을 땅이 흠뻑 들이켰습니다(계12:16) 그러므로 주의 백성들은 홍수와 같은 땅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겨야 합니다. 은신처인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늘의 음성으로 말미암아 땅의 음성을 이깁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가 그 말씀을 증거할 때에 성령의 기름을 충만하게 부으십니다(요3:34) 경건한 자가 주를 만날 기회는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통해 자신의 죄 된 자리를 고백하고 그 자리를 박차고 주 안에 옮겨 온 운명적인 사건을 받아들이는 길 밖에 없습니다. 거기서 주의 인자하심에 둘러 싸여 의인으로서 구원의 노래를 부르며 주를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복이 이루어집니다(시32: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