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롬6:8-9절)
의와 거룩은 그리스도인의 기초입니다. 그 기초 위에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세례의 도를 확실하게 닦아서 자신 안에 선과 악이 아니라 생명과 사망의 분깃점이 분명해야 합니다. 세례의 원리를 반복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로 경건의 연습을 계속하면 영적인 공식이 자리를 잡습니다. 영적인 슬럼프에서도 금방 빠져나오고, 기가 막힌 웅덩이에서도 바로 뛰쳐나오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선악은 자신의 의지로 오락가락할 수 있지만 빛과 어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이 아니고는 왕래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 안에 빛과 생명으로 나아가는 신앙의 공식을 확립하여 언제나 손바닥을 뒤집듯 영적인 회복을 빨리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야기하면서 ‘나 이제 죽었으니 처분대로 하옵소서’ 하는 자세를 취합니다. 사람이 죄 가운데에 있어 욕심의 지배를 당할 때는 음식, 돈, 지식, 명예 등에 집착하느라 매우 활력이 있다가 어디 가서 말씀을 듣고 기도한 번 받고는 그만 서리 맞은 뱀처럼 비실비실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심지어 그게 뭐 평안이니 안식이니 거룩이니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완전히 헬렐레 하는 거지요. 일곱 귀신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아들일 진데 그의 죽으심에 합하여 장사 되었으면 그의 살으심에 합하여 새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롬6:4) 죽음과 다시 삶 곧 부활은 한 세트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끊임없이 뒤돌아보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년이나 뒤돌아보면서 뱅뱅 돌다가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도무지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아멘 하고는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봅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거울입니다. 그토록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 그의 부활과 생명과 연합이 되어 영원히 산다고 해도 육체의 생각 곧 죄의 노예가 되었던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영생에 대해선 실제가 아니라 막연한 개념일 뿐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죽으시는 것은 눈으로 본 것 같은데 다시 사심으로 우리 안에서 새 생명을 한 없이 주시는 그리스도는 보지 못한 겁니다.
성령으로 기록된 말씀은 성령으로 받아들이고 성령에 의해 전해야만 생명의 말씀이 전달이 되는데 전하는 사람이 아직 죽은 경험 밖에 없고 살아있는 체험이 없으니 그의 메시지에 성령께서 협조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례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반복하십시오. 평생토록 닦아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서 있다가 드디어 십자가를 건너 죄에 대해 죽은 옛 나를 깡그리 잊어버리고 의와 거룩으로 아버지를 향해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죽었으면 살아야지요. ‘자 죽자’ 하고 자폭하는 것은 참 된 세례의 의미가 아닙니다. 말씀에 의해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을 향하여(그 분의 목적, 의지, 마음, 뜻, 속성을 향하여) 산 자임을 날마다 계산하세요(롬6:11) 반복하세요. 그 횟수가 많을수록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