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2-13절)

믿음이 사랑으로 발전해야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영생의 믿음 곧 살아있는 믿음은 말씀의 씨가 뿌려져서 사랑의 추수로 진행이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나타나심의 은사나 표적을 강조하는 고린도교회는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그야말로 부분적으로 보고 부분적으로 생각하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사랑(아가페)이 없습니다. 믿음은 의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고 죄로 죽었던 인간이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 발견이 되어 그 생명을 받은 것이 바로 의로 여김을 받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처럼 복음을 제대로 듣고 소화시키지 못하고 세상 편에 서서 왁자지껄하면 안 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면 하나님과 화평이 이루어졌고, 그 다음엔 하나님의 영광에 도전하게 됩니다(롬5:1-2) 그래서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을 한 이도 있습니다. 그게 바로 믿음 뒤에 따르는 소망 곧 성도의 비전입니다.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거듭나서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확증되어 하늘의 상속을 받은 자로서 성령께서 가정교사가 된 그리스도인에게 따라붙는 소망이 바로 몸의 구속입니다(롬8:1-25) 이런 사람은 아무도 못 말립니다. 하나님이 그의 편이며 그리스도가 그의 편임을 압니다. 아무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압니다(롬8:39)

이 소망은 사랑에 다다릅니다. 죄인이었을 때에 나를 위해 죽어주신 사랑, 진노에서 건지기 위해 나 대신 그 진노를 6시간 동안 받으신 그 사랑, 원수가 된 나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의 수욕과 고통을 감내하신 그 사랑, 나를 하나님과 한 편이 되도록 죄에 사망과 진노에서 건져내어 그 안으로 옮겨오신 그 사랑, 그토록 게으르고 무지한 내게 말씀을 더듬더듬 깨달아 듣고 믿어 시인할 때에 옳지 하고 의를 안겨주신 그 사랑, 그 의를 바탕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얻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마음을 즐기도록 한 그 사랑을 알게 합니다(롬5:11)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보던 신앙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신앙으로 발전합니다.

비록 육체를 가지고 있는 우리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영을 따라 우리의 영혼은 그 피 안에서 십자가를 건넌 하늘의 시민이 되어 그 영혼은 성령에 실려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엡2:18) 속된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과 맞짱을 뜨는 거지요. 내 영혼이... 여러분의 영혼이... 혈과 육은 부분적으로 보지만 우리의 영혼은 책망할 것이 없으니 담대하게 아버지를 찾습니다(요일3:21) 거듭난 우리의 영혼이 거리낌이 있을 리가 만무입니다. 이런 상태를 다윗은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시16:8)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출신이나 인격이 사울보다 못해도 사울처럼 백성을 갉아먹지 않고 사랑하고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을 익히세요. 진리를 터득하세요. 그리고 계속 나아가세요. 사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