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이 나으려면

열병이 나으려면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마8:14-15절)


요즘 명상하는 사람들이나 일부 승려들이 화(火)를 잘 다스리라고 가르칩니다. 이를테면 속에 있는 ‘화를 매만지고 또 감싸서 삭여라’라고 말하기도 하고, 시인들은 인생의 고통과 상처를 조개가 모래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품은 것처럼 인내를 하여 진주를 만들듯 해 보라고 권면하기도 합니다. 어떻던 육신의 열이나 마음속의 열이나 현대인에게 있어서 큰 문제입니다. 사실 적개심과 분노는 부모로부터 받습니다.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일로 인해 그 상처와 고통이 화가 되어 속에 잠복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상처를 주고 자신의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명상으로 이 깊은 고통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물론 약간의 유익이 되겠지요. 기독인들 중에도 호흡과 명상으로 자신 속에 있는 분노나 악한 생각을 정화시키려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당연히 그 노력을 통해 뇌가 산뜻해 지니 기분이 훨씬 나아져 금방이라도 날아갈듯 하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승려들이나 그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처럼 가부좌를 틀고 들어 앉아 매일 염불이나 명상을 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뭐 ‘충분히 게으름을 피우고 계십니까?’ 이런 질문을 받을 만큼 한가하지 않습니다. 제트기가 무색할 정도로 뛰고 뛰지 않으면 뒤처지는 무한 경쟁의 정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웃는 소리로 불(火)은 물(水)을 끼얹으면 꺼지잖아요.


그럼 성령의 생수를 뿌리면 되겠네요. 불타는 속으로 이열치열하려고 열 라면 먹듯 불같은 분노나 적개심을 품고 울며불며 ‘불로 불로 뜨거운 가슴을 태워 달라’고 하지 말고 ‘주여 물 같은 성령으로 내 가슴을 적셔 주소서’ 하면 되겠네요. 웃으려고 한 말에 죽이려고 덤비지는 마세요. 그러나 스쳐가는 말에 정답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엔 죽은 자나 병든 자나 귀신 들린 자나 다 낫는 조건은 예수님이 말씀을 하시든지 손으로 만지시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이든 그의 육체이든 접촉이 되면 다시 살고 낫는다는 말입니다. 바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1:1) 그 말씀이 임하고 그 말씀에 닿으면 모든 사망과 질병은 종지부를 찍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새 언약의 시대, 성령의 때에 어디에 서 있어야 주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 분의 영과 생명에 접촉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쪽(side)지요. 복음을 듣고 십자가 그 너머에 옮겨 놓으신 그 은총을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서 진리의 영을 통해 주님을 굳게 붙들어야지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 되게 하신 그 약속을 마음으로 움켜쥐어야지요(요14:21) 열이 많이 나십니까? 열 받을 일이 많습니까? 주님께서 이룩하신 주님과 연합, 그 안에서 주님의 손이 당신을 어루만지도록 믿음의 말씀을 영혼 깊숙이 받아들이세요. 긴 시간 동안 어린아이처럼 종알대고 그 자비의 손을 받아들이고 꼭 잡으세요. 아이스크림 녹듯 바위 같은 마음의 응어리와 앙금이 녹아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