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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8:17절)

요즘에 들어와서 매스컴에서 힐링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어쩌면 힐링이 시대적인 대세인 듯합니다. 그만큼 상처가 많고 아프고 멍든 가슴들이 많다는 이야깁니다. 당연히 몸도 망가졌겠지요. 성경에 의하면 구원과 치유는 한 세트입니다. 복음이 제대로 증거가 되면 구원이 일어남과 동시에 치유가 따릅니다. 그런데 많은 곳에서는 구원은 구원이고 치유는 치유라는 식으로 떠듭니다. 낫 놓고 기역자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깁니다. 교회의 설교가 토크쇼에서 인생의 쓴 맛, 단 맛을 이야기하므로 듣는 이로 하여금 공감과 위안을 얻도록 하는 힐링 프로그램만도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설교자는 먼저 자신의 영혼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충분히 적용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죄와 사망 그리고 병과 치열한 싸움을 해 보고 난 그 결과를 전해야 합니다. 모르면 떠들지 마세요. 모르면 글 쓰지 마세요. 5월이면 ‘즐거운 나의 집’이란 노래를 많이 부릅니다. 그런데 그 가사는 독신자인 사람이 지었답니다. 그 사람은 즐거운 나의 집을 동경할 뿐 그게 뭔지 몰라요. 이런식의 설교는 안 됩니다. 지금 세상에서 힐링을 주도하는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나 영혼의 노래를 부르는 시인들은 거의 다 외계 곧 지구행성 너머에 있는 그 어떤 존재와 손을 잡으려 합니다. 그래서 인도나 티베트를 다니며 수행하는 자들의 영적인 기술을 배우려 합니다. 거기에 힌트가 있습니다. 지구 행성 그 너머의 존재라는 말에서...

그러나 기독교가 거기에 침을 흘리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가 문둥이에 손을 대시고 말씀하시니 나았습니다(마8:3) 또 그리스도가 말씀하시니 중병병자가 나았습니다(마8:13) 그리고 그리스도가 열병 앓던 여인의 손을 만지니 나았습니다(마8:13) 확실한 힐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만 잡으면 그 말씀에 닿기만 하면 힐링이 일어나겠지요? 주께서 다시 십자가를 다신 건너 육신으로 오셔서 당신의 육신을 잡아 주는 일은 만무입니다. 그 분은 영이십니다. 부활과 생명의 영이십니다. 다만 어린 신자들을 위해 환상이나 꿈으로 그 인자하신 모습을 매만져 주시시도 합니다. 그런 정도의 분이라면 제 글을 소화하지 못할 겁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가야합니다. 아담 안에 있던 죄와 사망에서 건져 그리스도 안에 옮기시고 이제 우리의 영혼과 합일이 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을 당신의 영혼으로 찾아가세요. 친근하게 눈을 맞추고 얼굴을 맞추세요. ‘아무리 그가 찔림으로 나음을 입었도다’(벧전2:24) 외쳐도 당신의 영혼으로 그 분을 맞이하고 그 분과 합일이 되는 간절함이 없으면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습니다. 낫지 않습니다. 구원이 먼저입니다. 온전한 복음입니다. 그 은혜 안에서 십자가를 건너 진리를 따라 내 영혼이 주님을 만납니다. 이미 하나이지만 이질적인 조직과 성분 때문에 멀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이 진리의 지식을 따라 그 분을 찾고 찾으면 그 때에 손을 대시고 말씀을 하시던 그 힐링이 지금이라도 일어납니다. 당신과 나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