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19-20절)
로마서는 구원의 필요성, 구원의 과정, 구원의 결과가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누가 대영박물관으로도 로마서를 바꿀 수 없다고 한 말이 맞습니다. 다만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을 얻고,의롭게 되어 영화롭게 된 사람(롬8:30)에게만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로마서가 신령한 은사(롬1:11)를 얻게 하고, 자신 안에서 열매(롬1:13)가 맺혀 익어가고 있음을 압니다. 로마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롬8:2)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십시오. 그리고 로마서는 육신의 생각만 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이 그 육체를 처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을 쫓아 영의 생각을 할 수 있는 구원의 과정과 결과를 상세하게 가르쳐 줍니다.
만약 당신이 목사라면 로마서에 능통하고 그 구원의 과정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그로 인해 구원의 과실이 당신 안에서 익어가야만 합니다. 아니면 당신은 평생 복음의 빚쟁이는커녕 그 목사라는 직분에 치여서 이리저리 간수하느라 애를 먹어야 할 것입니다. 그건 육체의 모양을 내는 일이며 겉치레이며 표정이나 말씨의 연습입니다. 성경은 이를 두고 외식이라 합니다. 그게 세련되면 사람의 칭찬의 등에 얹혀 죽을 때까지 갑니다. 만약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택한 백성이라면 죽기 전에 생고생을 하게 됩니다. 밀린 숙제를 하느라고요. 아담 안에 있던 우리의 옛 사람은 세례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가능은 제로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갈보리 십자가, 곧 골고다 언덕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 과정,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된 나의 신분을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서 나타나십니다. 우리 안에서 증거를 하시고 안에서 나타내십니다. 다만 끊임없는 묵상과 기도로 생각을 영의 소욕으로 바꾸는 치열한 접전을 하는 수고와 인내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담 안에서 죄인이 후예로 잘못 태어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실려 ?戮?죽음과 다시 사심에 의해 사망에서 생명으로 일괄적으로 넘어왔지만(광범위한 의미로 은혜라고 함) 자신의 것을 만드는 일에는 혼신을 다해 시간과 몸을 투자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또 들으면 계시의 영이 임하여 진리의 성령의 기능과 역할을 알게 하고, 반복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묵상하면 지혜와 총명이 풍성해져 영의 세계가 확장되어 갑니다. 어느 정도 지나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는 길에 거침이 없는 담대함을 얻습니다. 그 때부터 신비한 포스가 그 얼굴과 몸짓에 나타납니다. 모든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드러납니다. 자연계시입니다. 성경을 특별계시라고 한다면 성경이 이루어진 성령의 전인 우리 몸에 그 영광스러운 능력과 신성이 나타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자연을 보고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핑계할 수 없음 같이 당신의 언행을 통해 나타나는 그 신비한 포스로 아무도 입을 댈 수 없도록 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