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즐거움을 늘 회복하라

구원의 즐거움을 늘 회복하라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51:11-12절)

구원은 구원의 자리 곧 소속이 있습니다. 성령의 기음부음이 있는 곳, 성령의 콘퍼런스가 일어나는 구역입니다. 우리는 이를 두고 쉽게 그리스도 안이라고 정의를 합니다. 그러나 그 곳을 안다고 우리가 항상 거기 머물며 구원의 즐거움인 기쁨을 늘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얻고 평강이 임한 다음에 따르는 하나님의 나라의 즐거움입니다(롬14:17) 그래서 기쁨은 그리스도가 임했다는 바깥 증거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에서도 주님과 연결이 제대로 되고 그 안에서 기도가 제대로 되면 주의 기쁨이 충만하다고 말씀하십니다(요15:11)

다윗의 고백으로 보면 죄가 무서운 것은 이와 같은 구원의 즐거움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생각은 언제나 하나님 반대편에 서서 원수 노릇(롬8:7)을 하기 때문에 의가 사라지고 그만 구원의 자리에서 밀려난 것 같고 성령의 기름 부음 역시 말라버리고 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서 그 안에서 의와 거룩과 영광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해 본 사람은 이와 같은 상황이 얼마나 비참한지 잘 압니다. 다윗처럼 자신의 체내에 있는 타고난 죄성과 악성을 고백하고(시51:5) 이 죄를 지워주실 것을 간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의 말씀 앞에 자신을 벌거벗겨 드러냅니다. 결국은 주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며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열납하실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시51:17)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 믿음으로 의를 얻고 하늘의 신령한 은사를 맛본 다음에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기 위해 늘 긴장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육체에 남아 있는 본성을 유혹하여 우리가 언제 하나님 반대편에 서서 성령이 없이 행동하는지 그 횟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구원의 즐거움보다 말초의 즐거움에 더 가깝습니다. 여러분이 아니라 제가 그렇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는 쫓아내시고 성령의 기름을 거두겠습니까?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 할 그 자리를 지키지 않고 조급함과 충동함을 이기지 못해 뛰쳐나오므로 주님께로부터 쫓겨 난 것처럼 느끼는 것이지요. 그리고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니 심령이 뻣뻣하게 되고 입술 또한 건조하게 되지요.

하나님께 찬양도 기도소리도 끊기지요. 그래서 다윗은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달라고 애원합니다(시51:10) 제 기도이기도 합니다. 비록 구원의 확증이 있어 영원한 생명을 맛보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하늘을 찌르듯 큰 함성을 질러 본 사람이라 할지라도 진리의 성령을 따라 그 구원의 자리를 지켜 구원의 즐거움을 가지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붙들려 있어야 행복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아니면 진리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없으나 일반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종결이 가까운 요한일서까지 나아가도 죄 문제를 다루고 그 죄를 자백하면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작동한다고 말씀하십니다(요일1:9) 아무리 바빠도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는 일 잊지 마세요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51:11-12절)

구원은 구원의 자리 곧 소속이 있습니다. 성령의 기음부음이 있는 곳, 성령의 콘퍼런스가 일어나는 구역입니다. 우리는 이를 두고 쉽게 그리스도 안이라고 정의를 합니다. 그러나 그 곳을 안다고 우리가 항상 거기 머물며 구원의 즐거움인 기쁨을 늘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얻고 평강이 임한 다음에 따르는 하나님의 나라의 즐거움입니다(롬14:17) 그래서 기쁨은 그리스도가 임했다는 바깥 증거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에서도 주님과 연결이 제대로 되고 그 안에서 기도가 제대로 되면 주의 기쁨이 충만하다고 말씀하십니다(요15:11)

다윗의 고백으로 보면 죄가 무서운 것은 이와 같은 구원의 즐거움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생각은 언제나 하나님 반대편에 서서 원수 노릇(롬8:7)을 하기 때문에 의가 사라지고 그만 구원의 자리에서 밀려난 것 같고 성령의 기름 부음 역시 말라버리고 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서 그 안에서 의와 거룩과 영광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해 본 사람은 이와 같은 상황이 얼마나 비참한지 잘 압니다. 다윗처럼 자신의 체내에 있는 타고난 죄성과 악성을 고백하고(시51:5) 이 죄를 지워주실 것을 간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의 말씀 앞에 자신을 벌거벗겨 드러냅니다. 결국은 주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며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열납하실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시51:17)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 믿음으로 의를 얻고 하늘의 신령한 은사를 맛본 다음에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기 위해 늘 긴장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육체에 남아 있는 본성을 유혹하여 우리가 언제 하나님 반대편에 서서 성령이 없이 행동하는지 그 횟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구원의 즐거움보다 말초의 즐거움에 더 가깝습니다. 여러분이 아니라 제가 그렇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는 쫓아내시고 성령의 기름을 거두겠습니까?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 할 그 자리를 지키지 않고 조급함과 충동함을 이기지 못해 뛰쳐나오므로 주님께로부터 쫓겨 난 것처럼 느끼는 것이지요. 그리고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니 심령이 뻣뻣하게 되고 입술 또한 건조하게 되지요.

하나님께 찬양도 기도소리도 끊기지요. 그래서 다윗은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달라고 애원합니다(시51:10) 제 기도이기도 합니다. 비록 구원의 확증이 있어 영원한 생명을 맛보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하늘을 찌르듯 큰 함성을 질러 본 사람이라 할지라도 진리의 성령을 따라 그 구원의 자리를 지켜 구원의 즐거움을 가지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붙들려 있어야 행복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아니면 진리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없으나 일반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종결이 가까운 요한일서까지 나아가도 죄 문제를 다루고 그 죄를 자백하면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작동한다고 말씀하십니다(요일1:9) 아무리 바빠도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는 일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