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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으로 본 유아환경교육
 김동춘 (총신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Ⅰ. 서론
현 시기 환경문제는 단순히 오염의 문제를 넘어서 현 인류의 생활양식 전반에 반성을 요구하는 실존의 문제이다. 환경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안이 제안되고 있으나 그 중 ‘교육의 논리’와 ‘교육적 처방’은 인간의 내면적 변화를 그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가장 근원적이며 장기적인 대책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에 확산되기 시작한 환경위기에 대한 논의들은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환경교육 및 훈련을 통한 위기 극복에 대한 논의와 결의들로 이어져왔다.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 하에 우리나라 역시 1980년대 이후 환경교육에 대한 논의가 조심스레 시작되었다. 환경교육은 환경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실천을 통하여 환경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은 비용으로도 지속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유아교육에서도 인간의 환경에 대한 바른 인식과 태도가 길러지는 유아기 환경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제6차 유치원 교육과정에서 건강생활, 사회생활, 표현생활, 탐구생활 영역에서 환경 보전을 위한 기초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1990년 이후 유아 환경 교육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어 유아 환경 교육에 관한 문헌들이 출판되었으며 유아 환경 교육과 관련된 많은 논문들이 소개되었다.특히 생태유아교육과 관련된 논문들이 많이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유아 환경 교육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어 기독교 유아 교육기관에서는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환경관을 정립하지 못한 채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의 가치관과 교육의 내용을 간과하고 유아 환경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의 신앙고백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기독인들의 환경관은 일반 환경관과는 근본적으로 합일되지 않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환경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단순한 의미의 환경 보전 운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보존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삶의 전체성을 나타내는 신앙 운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인들의 환경관은 환경 교육의 출발점과 목적 및 내용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이 교육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교사의 중요성이 무엇보다도 강조된다. 그 이유는 환경 교육은 환경에 대한 올바른 인식, 즉 환경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 형성에 큰 목적을 두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가 환경에 대하여 어떠한 가치관과 태도를 갖는가에 따라 유아의 환경에 대한 인식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 본 글의 목적은 성경적 관점에서 환경 위기에 대한 원인을 살펴보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독교 유아교육기관에서의 성경적 환경관을 정립하여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의 추진 전략과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기초를 제시하고자 한다.
Ⅱ. 환경위기의 원인
생태계 위기에 대한 원인을 최홍석은 인간의 탐욕, 환경을 파괴하는 과학기술의 역기능으로 보았다. 김경천은 환경 위기상황의 근본 원인을 인본주의 세계관과 기독교적 세계관의 몰이해로 보고 있다. 맹용길은 생태계 파괴의 뿌리는 급격한 산업화 때문이고 근본 원인은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 때문이라고 하였다. 신성자는 생태학적 위기의 원인으로 인간의 죄, 잘못된 자연관, 과학기술의 탈선, 인간의 탐욕을 제시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환경 위기의 원인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으나 본 연구에서는 인간의 죄, 과학기술의 탈선, 인간의 탐욕을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1. 인간의 죄
성경에 의하면 현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 위기의 근원은 인간의 죄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첫 조상이 타락했을 때 인간의 죄 때문에 그의 환경을 저주하셨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창 3: 17, 18). 인간의 죄는 자연에 변화를 가져왔고 인간과 다른 피조물간의 관계를 파괴시켰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평화가 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벌하기 위해 환경에 심판을 내리기도 하시고 심지어 심판의 대상으로 자연을 포함하기도 하셨다 (창 4: 11, 12). 홍수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은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이 거주하고 있는 지구 전체였다(창 6: 7). 이러한 사건뿐만 아니라 레위기 26: 14-40, 신명기 28: 38-40, 열왕기상 18장을 통해서 인간의 죄를 벌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의 환경인 자연의 재앙을 도구로 사용하시고, 선지서들에 기록된 심판의 선언은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피조물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실히 말하고 있다(사 4:2, 3).
환경의 위기는 인간의 자연 파괴 행위 이전에 인간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심판에 있어서 인간을 그의 환경인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키지 않으셨다. 오히려 인간의 죄로 인해 그의 환경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환경의 위기는 인간의 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없이는 극복될 수 없다. 하나님을 배제한 환경운동들, 과학기술에 의해서나 자연을 인간과 동일체로 만드는 동양 종교의 범신론적 철학에 의해서 자연을 회복시키려는 노력들이 성공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환경 위기의 근원이 인간의 죄 때문 이라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면 환경교육은 궁극적으로 실패할 것이다.
2. 과학기술의 탈선
자연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보는 기독교의 자연관이 과학 기술의 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환경 위기를 불러온 것은 과학 기술 자체가 아니라 현대 과학 기술의 탈선이다. 현대 과학 기술의 탈선의 원인은 인간의 탐욕과 자율성이 그 원인이 된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풍요, 편리함과 안락만을 추구하여 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소비하려는 것이 인간의 탐욕이다.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이 더 많은 생산을 필요로 하고 생산 자원을 더 많이 소모하게 한다. 그리고 과학과 기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무런 절대적 규범의 제지를 받지 않고 하려는 자율성은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결코 기독교의 창조신앙이 아니다. 창조교리는 자연에게 하나님의 창조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고 인간의 무제한적 사용이나 착취, 남용을 허용해 주지 않는다. 분명히 현대 과학 기술의 자율성은 성경적인 창조관을 배척한다. 오히려 근대 과학 기술은 기독교의 자연관보다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자연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데카르트 이래로 인간은 자연을 자신의 물질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대상으로 파악했으며 기술은 그 과정에서 인간에 의해 사용되는 수단이었다. 또한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인간의 이성이 극대화되고 자연이 대상화되면서 역사와 자연을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에 빠지게 되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은 인간에 의해 대량으로 점점 더 조직적으로 착취되고 남용되었다. 그 결과 인류는 오늘과 같은 지구 환경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창조적 활동 능력을 주셨다. 그러므로 요구되는 것은 인간이 과학기술을 통해 스스로 세계를 정복하고 주인이 되려는 오만을 버리고 자신은 창조세계에서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이며 자신도 같은 피조물로서 다른 피조물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피조의식을 회복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규범들에 의해 인도 받으며 창조질서를 발전시키려는 본래의 역할을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3. 인간의 욕심
자연의 생태계는 주어진 것이고 근대인이 생각하듯 인간 마음대로 조절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류는 대략 근대에 이르기 까지 자연 질서에 대한 존중 속에 한계를 인식해왔다. 하지만 과학과 인간 중심적 사고가 중심이 된 근대의 후기에 와서 그것이 변했던 것이다. 그 이면에는 자연환경을 인위적으로 완전히 지배하여 어떤 불안의 요소도 남김없이 통제하려는 욕구와 무한한 물질적 번영과 풍족함을 추구하는 욕심이 주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자원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주신 인류 공동의 자산이다. 현세대에 의해 제한된 자원의 독점적 사용이나 낭비는 미래 세대의 권리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미래 생태학적 권리를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세대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불순종의 결과로 환경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타락한 인간의 죄의 본성은 인간 중심의 잘못된 자연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창조로서 갖는 가치를 중요시하기보다는 자신의 이기적인 탐욕을 채우기 위해 과학기술을 도구로 자연을 마음대로 지배해 왔다. 이것이 오늘날 환경 위기의 원인이다. 즉, 인간의 타락이 근본 원인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방안을 성경을 통해 얻어야 한다.
Ⅲ. 기독교 세계관에서 본 환경론
오늘날 세계가 겪는 환경의 위기 문제는 사실 인구폭발이나 자원고갈의 문제일 뿐 아니라 더 근본적인 차원에 있어서 세계관의 문제이다. 세계관의 속성을 감안할 때 개인이 어떤 세계관을 갖는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기독교인은 세상의 세계관과는 달리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들이 고백하는 신앙과 일치하는 기독교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환경 교육을 실행하고자 할 때, 기독교 세계관이 확고하지 않다면 환경 교육의 과정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이 교사 자신의 신앙과 분리하는 이원적 사고로 부지불식간에 비성경적 내용을 포함시킬 뿐만 아니라 무비판적으로 세속적인 교육 방법을 실행할 수 있다. 현재의 환경 위기에 대한 인식과 해결의 열쇠는 창조 세계를 하나님의 창조의 현실로 이해하는 기독교 신앙을 통해 풀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창조로서의 환경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성경은 웅장한 선언과 함께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놀라운 선언임과 동시에 성경적 자연관의 기초가 된다. 창조의 웅장한 진리를 모르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은 이해하기 어렵다.
자연과 자연 안의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이 있으라(말씀) 하시매 …이 있더라(창 1:6, 9, 11, 14, 20, 24, 26).\"
하나님의 창조 행위 때마다 창세기 1장에서는 7번이나 이 말을 사용한다. 하나님의 창조적 사역은 오직 말씀에 의한 창조였다(사 45:11, 요1:1-3, 히 11:3).
즉 하나님은 무에서 생태계를 창조하셨고, 생태계는 하나님의 계획과 명령에 의해 창조된 하나님의 세계로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이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과 결단으로 있게 된 것이다. 우주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그의 피조물을 통치하시는 것이다. 피조물의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만사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 중심 사상,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산다는 것은 기독교 세계관의 중심이 된다.
하나님은 세계를 지혜로 창조하셨다. 이때 지혜의 의미는 창조의 법과 복종자에 각각 대응하는 두 가지 의미로, 법의 측면에서는 우주의 구조 속에 새겨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계획과 질서가 있고, 복종자의 측면에서는 인간의 지혜, 즉 창조적 질서에 대한 동조 혹은 순응이 있다. 우리는 모든 물체와 동ㆍ식물의 규칙적인 질서 즉 자연의 법칙에 익숙하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들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속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행위와 지혜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 지혜는 창조의 다양성, 통일성, 상호 관계성 속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다양성, 통일성, 상호 관계성을 갖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창조 질서에 대한 동조와 순응의 지혜를 얻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창조에 관한 기사(창 1장)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창조의 작품들이 선하다고 선포하셨으며 이런 선포는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 31)라는 말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확히 의도하신 것으로 창조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목적과 조화되는 완전한 것으로 창조된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선하고 대단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은 만드신 이의 능력과 지혜, 영광을 선포하고 찬양하도록 지음 받았다.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 말씀을 좇는 광풍이며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목과 모든 백향목이며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과 방백과 땅의 모든 사사며 청년 남자와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찌어다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시 148:7-13) 인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들은 그들의 행위와 존재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선하게 창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물의 목적을 인간의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분별한 개발 및 파괴를 자행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의 근본 목적을 망각한 행위이다.
2.하나님께서 유지하시는 환경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말한다. 자연의 세계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세계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그것은 인간의 뜻에 따라 지배되고 정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유지되어야 한다. 세계의 소유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세계는 인간으로 말미암아 있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은 저절로 운행되는 기계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히 1: 3) 이 우주를 유지하고 계신다. 현재의 세계를 유지하시고 보존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을 가치 있게 보시고 아끼신다는 사실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동물들에게도 식물을 양식으로 주셨고(창 1: 29-30), 노아의 홍수 후 노아와 그 가족을 홍수에서 보호하셨고 현존 세계의 보존을 약속하셨다(창 8: 21, 9: 4). 안식일에는 가축도 함께 안식에 참여하게 되어 있었고(출 20: 10, 신 5: 14), 안식년에는 토지를 경작하지 않았다(레 25: 27). 이 외에도 많은 곳에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보살피신다(시 145: 9-16)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거기에 적합하고 상응하게 자연을 다루어야 한다.
3.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위임하신 환경
1)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6-27)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에 의해 이 세상의 관리자로 지음을 받았다. ‘하나님의 형상’ 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이 세상이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아님을 증거 한다. Berkhof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신학자들의 해석은 다양하나 대표적인 개혁주의 신학자인 Calvin은 하나님의 형상은 아담이 부여받은 완전성을 지칭하는바 명료한 지성, 이성에 복종하는 지성, 적절히 통제된 감성, 창조주가 부여한 모든 탁월하고 찬탄할 만한 재능 등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즉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이 물질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영혼의 기관으로서 영적 존재로 인간은 하나님이 지니고 계시는 참, 지식, 선, 거룩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며 또한 피조물을 지배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지배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인종과 문화와는 물론 하늘의 새와 물 속의 피조물을 위한 ‘책임적 존재’로 창조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은 물론 자연의 만물에 대한 인간의 ‘책임성’을 뜻한다. 그는 자기 밖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지배자적인 태도로 살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삶을 나누고 그들과 함께 모든 것을 나누며 그들을 돌보고 가꾸며 필요한 경우 그들의 고난을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적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2) 청지기로서의 인간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창 2:15)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가꾸며 돌보는 일이 주어졌다. 아담에게 주어진 에덴동산을 가꾸며 돌보는 일에서 ‘가꾸다’는 문자적으로 ‘섬기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돌보다’는 ‘지키다’, ‘경계하다’ ‘보존하다’, ‘돌보다’(to serve)의 의미를 갖는다. 아담은 자연을 지배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가 거하게 된 땅을 경작하고 돌보도록 명령을 받았다. 만일 인간이 땅을 지배하도록 명령을 받았다면 이 명령은 아마도 지구의 모든 자원들을 무책임하게 착취해도 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에덴동산을 가꾸며 돌보라는 명령은 땅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꾸며 보존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Hoekma는 말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문화명령은 인간의 타락 후에도 변함없이 타락 전과 동일하게 유효하다. 문화명령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직후에 바로 주어졌으므로 피조물로 남는 한 벗지 못할 책임이다. 따라서 문화명령은 인간이면 누구나 행해야 하는 필생적 의무로서 중요성이 있다. 그래서 인간의 문화적 과업은 인간이 이 땅 위에 존속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이것이 성경을 바로 이해하고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개혁주의 세계관의 시작이다.
환경 문제에 대한 성경적 접근은 무엇보다 ‘이 세상이 누구에게 속했는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답은 명백하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 그러나 이것은 부분적인 대답에 불과하다. 시편 115: 16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 이 구절들의 의미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그의 권리를 전적으로 인간에게 양도하셨다고.’ 아니다. 그렇게 해석할 수는 없다. 오히려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도록 하기 위해 땅을 인간에게 주셨다고.’ 그렇다고 한다면 주인은 여전히 여호와시요, 인간은 잠정적인 관리자일 뿐이다. 땅을 소유하고 있는 인간은 결코 완전한 양도권을 소유하지 못했다. 단지 대여권을 받았을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물과 상호작용을 하도록 하셨다.
문화명령을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2:15)에서 살펴볼 때 하나님은 아담을 친히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내어 창조 세계를 보존하고 봉사하도록 가르치는 명령으로 관리인이 되어 책임있는 청지기로서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연을 인간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처분한 결과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대한 무자비한 파괴가 진행되고 있다. 무자비한 산림 벌채, 동물의 노획 등으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의 소유인 자연을 인간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많은 피조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자연에 대한 청지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은총과 축복을 받았다. 문화명령은 문화명령 수행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과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을 인간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을 제시해 줌으로써 우리가 피조물을 개발하고 이용할 때에 반드시 지향해야할 원리와 방향을 제공해 주어 환경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궁극적인 대안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인간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소명을 감당할 일터에서 변화시켜야 할 소명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돕는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지상 경영론자로서 창조 질서의 보존을 위해 먼저 창조 세계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타내어야 하며 그것들이 본래의 창조 질서에 순응하도록 하는 선한 청지기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하겠다.
Ⅳ.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
1. 기독교 유아환경교육의 필요성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공통된 인식으로 출발한 환경 교육은 환경에 대한 가치관 및 태도 형성, 즉 환경관의 형성을 중요시한다.
창조, 타락, 구속의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기독교 환경론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창조된 선한 창조계, 문화명령에 의해 피조계를 다스리라고 위임된 인간의 청지기적 책임, 인간의 죄로 인한 창조계의 타락,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통한 창조계의 회복이다. 따라서 기독교 유아교육기관에서의 환경 교육은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기독교 환경론에 의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인간의 책임 있는 응답으로 출발하여야 한다.
2. 기독교 유아환경교육의 목적
Brummelen은 기독교 교육의 포괄적인 목적은 그리스도의 책임 있는 제자가 되도록 학생들을 돕고 인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이해하고 자신을 헌신하는 것으로 기독교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목표를 제시하였다.
첫째, 삶에 대한 기독교적 안목의 기초, 틀, 의미를 밝혀 들어내기.
모든 세상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회복하게 된 그 세계 안에서 학생들이 특별한 사명을 갖는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이해시킨다.
둘째, 개념, 능력, 창의성의 발달을 촉진하기.
하나님의 창조계가 타락한 상태이지만 창조계의 경이로움과 잠재성을 선포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베푸신 달란트로 그분과 이웃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한다.
셋째,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삶의 의미를 경험하기.
학생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임을 경험하고 자신의 독특한 방식으로 응답하고 헌신적으로 참여하게 한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다운 생활양식에 헌신하고 기꺼이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도록 격려하기.
학생들은 개인적인 헌신으로 혹은 다른 그리스도인과 협력하여 삶 전체, 즉 말과 행실을 그들의 개인적인 구속자이며 생명의 주님의 그리스도께 드리도록 격려한다.
이에 기초하여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의 목적을 살펴보면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의 목적은 창조 질서 회복을 위한 선한 청지기로서의 책임 있는 제자도의 실현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①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 세계 속에서 경험하며 ② 창조 세계를 잘 알고 ③ 하나님이 주신 창조 세계를 보호하기 위하여 유아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고 개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며 창조 세계를 잘 관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리스도의 자녀로서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3.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의 주제 및 내용
교육부 제6차 유치원 교육과정에서 유아 환경 교육과 관련 내용은 건강 생활 영역에서 주변 환경 깨끗이 하기, 환경오염이나 재해에 대비하기, 사회생활 영역에서 아껴서 생활하기, 경제생활에 관심 가지기, 환경 보전에 관심 가지기, 표현 생활 영역에서 자연과 사물 및 조형작품 감상하기, 탐구 생활 영역에서 생물에 대하여 관심 가지기, 자연 현상에 대하여 알아보기 등 환경 보전, 자원, 우리의 환경, 환경오염에 관한 내용을 건강 생활, 사회생활, 표현 생활, 탐구 생활 영역에서 골고루 제공하며 각각의 주제를 독립적으로 혹은 다른 주제와 연결시켜 전개할 수 있도록 유아 환경 교육 실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일반 유아 환경 교육의 모든 교육 주제들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지금도 이것을 계속 유지하시며 붙드시고 계시는 것들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학교에서 하나님이 만드셨고 지금도 지키시는 것들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 회복을 위한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의 주제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 영역이 포함된다. 일반적 환경론에서 제시하는 유아 환경 교육의 주제와 크게 다를 수 없다. 다만 자연 보호와 환경 보전의 기본 명제가 되는 세계관이 다르면 주제나 방법보다는 목표와 추구하는 교육 효과가 달라질 뿐이다. 외형적으로 주제(단원)가 같더라도 창조, 타락, 구속의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기독교 환경론은 인본주의에 기초한 일반 환경론과는 가르치는 목적 및 추구하는 교육 효과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기독 교사는 유아들에게 가르쳐야 할 내용에 대해 부지불식간에 불신앙적인 내용을 제시하는 이원론적인 사고를 할 때가 있다. 같은 주제라 하더라도 기독 교사는 비기독교 교사와는 달리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해 생각하고 계획하고 가르쳐야 한다. 기독 교사는 창조 교리에서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영적인 의미를 발견하여 유아들이 하나님 말씀의 규범에 근거한 기독교적 삶의 비전과 실재 그리고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양식을 탐색하도록 도와주고 하나님이 유아에게 주신 특별한 은사를 경험하고 유아의 독특한 방식으로 응답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기독 교사의 가장 기초적이고 완전한 교과서는 성경이 되어야 한다.
4.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의 교수 - 학습 방법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의 교수 - 학습 방법은 통합적인 접근을 원칙으로 한다. 기독교 교육의 교육 과정은 수직적 통일성과 동시에 수평적 통일성을 이루어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은 위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수직적 통합을 이루는 동시에 수평적으로는 기독교 유아 교육의 각 영역간의 수평적 통합을 이루는 완전한 통합을 교수 학습 방법의 원리로 한다. 수직적 통일성이란 창조 세계의 의미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1: 16-17).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을 통해 유아는 하나님이 창조 세계에 부여하신 의미를 알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 세계를 통해 유아가 응답하게 됨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 동시에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의 교수 학습 방법은 수평적 통일성을 이루어야 한다. 기독교 유아 교육은 기독교 유아 교육의 전 영역의 통일성을 이루는 수평적 통일성을 지향하고 있으므로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도 기독교 유아 교육의 전 영역에서 통일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제시한 수직적 통합과 수평적 통합의 완전한 통합을 원리로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의 교수 - 학습 방법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즐거워 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즉, 유아가 감각을 통해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상할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둘째,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은 경험을 통해 형성된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대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성경적 지식과 전문적 지식을 연결시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 때 유아의 발달을 고려해 지식과 이해를 발달시켜야 한다.
셋째, 유아들 스스로 환경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결정할 수 있는 의사 결정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넷째, 유아들 스스로 결정한 다양한 문제 해결 방법을 유아의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즉 지식의 습득과 행동의 변화가 조화를 이루는 교수 - 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섯째,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을 위한 교수 학습 자료는 유아의 감각을 자극할 수 있는 자연, 자연자료, 다양한 시청각 자료 및 교재, 교구를 사용해야 한다. 교수 - 학습 방법도 견학, 산책, 게임, 역할놀이, 이야기 나누기, 간식, 수ㆍ과학, 동화, 동극, 노래, 신체표현, 조형활동 등을 통해 감각적이고 역동적인 활동을 선택해야 한다.
여섯째,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은 유아교육기관과 가정과의 협력체계 하에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다.
5. 교사의 역할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은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유아의 환경에 대한 인식 즉 환경에 대한 성경적 가치관과 태도 형성에 큰 목적을 두기 때문에 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에서 요구되는 교사의 역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사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확립하고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에 대한 교육 목적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헌신이 있어야 한다.
둘째, 교사는 시범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을 위해 교사는 환경에 관한 호기심, 열정, 놀라움을 유아들과 나눌 수 있는 시범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 교사는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해 하나님 중심으로 수직적 통일성과 수평적 통일성을 갖는 통합 교육 과정을 개발하는 연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넷째, 교사는 계획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교사는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을 계획하고 유아들에게 경험을 통한 환경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교수 - 학습을 위해 필요한 물리적 교육 환경의 구성, 교육 자료를 구입, 제작하여야 한다.
다섯째, 교사는 평가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교사는 유아가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올바른 환경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를 형성하였는가?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실천 즉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는가를 평가하는 평가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Ⅴ. 결론
현대인은 생태학적 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경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유아기에는 인간의 환경에 대한 바른 인식과 태도가 형성되므로 유아 환경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한다. 성경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배타적인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이 자연을 돌보고 관리하고 다스리는 선한 청지기적 사명을 지닌다. 환경 교육은 피조세계를 잘 다스리고 가꾸라는 문화명령의 일부이다. 따라서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을 실시하여 유아기부터 생활 속에서 선한 청지기로서의 실천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의 주제는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 영역에서 다루어질 수 있으며,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의 목적은 창조 질서의 회복을 위한 선한 청지기로서 책임 있는 제자도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과 일반 유아 환경 교육과는 환경 교육의 목적 및 내용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따라서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은 일반 유아 환경 교육이 대신할 수 없는 ‘창조질서의 회복’ 이라는 관점에서 환경교육을 다룸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인간의 제일 목적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환경 교육은 특성상 가정교육, 사회교육, 학교교육을 통해서 동시에 이루어질 때 효과가 크다. 즉 가정, 교회, 유아교육기관에서의 연계교육이 이루어져 유아가 가정, 교회, 유아교육기관의 생활 속에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또한 지속 가능한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의 활성화 여건 조성을 위해서 기독교 유아교육기관의 원장과 시설장, 일반 교사와 학부모 등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환경의식 고취가 요청된다.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의 내실화를 위해서는 교육주체인 교사를 대상으로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의 실시가 요구된다. 왜냐하면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에서 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기독교계 유아교사 양성대학에서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과 관련된 과목을 신설하여 예비교사에게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과목을 이수토록 하여야 하겠다. 또한 기독교 유아교육기관의 교사들과 교회학교 교사들에게 교단차원에서의 기독교 유아 환경 교육에 대한 연수가 제공되어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