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라”(시23:6절)
신앙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출발이 있고 종점이 있다는 말입니다. 신앙의 주인과 방법과 인도자는 우리의 목자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시23:1)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평면적으로 ‘믿으면...’하고 마는 것으로 인해 기독교의 천박함이 드러나고 맙니다. 농사에도 씨에서 열매까지 과정이 있어 오랜 노력과 기다림으로 이루어집니다. 신앙은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순간에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에 당도합니다.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하고 노래 부를 때입니다. 기도원이라도 한 번 갔다 오는 날이면 온 세상에 말갛게 되고 그리 예쁠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시23:2)는 잠시 뿐입니다. 곧 우리 영혼을 소생시켜 의의 길로 이끄십니다(시23:3)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의 이름 곧 존재는 십자가에 걸어야 합니다. 나를 끝내야 합니다. 나의 의냐 그리스도의 의냐? 이 승강이 때문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합니다(시23:4) 동서남북이 다 막힙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뿐입니다. 힘과 위로가 됩니다. 반복해서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나를 시인하게 됩니다. 성령이 잔소리 하시고 위로하십니다. 이 과정이 깁니다. 죽었다고 복창하고 그리스도만 인정하고 시인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군대의 복종훈련처럼...
드디어 주님이 그의 떡상과 생수의 상으로 부르십니다. 문제투성이인 자신을 그대로 두고 주님이 나를 그의 풍성한 구원의 잔치에 초청하십니다. 그리고는 성령의 기름을 붓습니다(시23:5) 왜냐하면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만 시인하는 훈련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와 그의 의의 순도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리스도의 장아찌가 되어갑니다. 그래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마다 ‘내가 여기 있노라’하고 응답하십니다. 성령은 안에서 응답하시고 말씀은 바깥에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부심이 생기고, 주의 종으로서의 담대함이 가득합니다. 한 마디로 덤비려면 덤벼라 하는 용기가 치솟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그토록 막연한 불안과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은 사라지고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밀착경호를 하기 시작합니다. 정다이 따라옵니다. 아! 놀라운 존재의 변화입니다. 대단한 영광입니다. 세상이 만만하게 보입니다. 크고 작은 자, 있고 없는 자가 거저 그럴 뿐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축복할 넉넉한 가슴이 됩니다. 바로 여호와의 집의 아들 곧 왕자의 자격지심을 얻은 겁니다. 그로부터 여호와의 집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시23:6) 나는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집이 되고 그 분들은 나의 집이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영원을 향합니다. 몸의 껍데기를 바꾸는 절차만 남겨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