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까지 이르는 길

긍휼까지 이르는 길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절)


복이란 남에게 줄 수 있는 천국의 선물입니다. 용서하면 손해 볼 것 같은 사람, 사랑하는 것은 너무 힘이 든다고 푸념하는 사람은 아직 천국의 은사가 자신의 복으로 정착이 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법 정신의 사람은 율법 아래에 있던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아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억지 춘향의 연기를 시키는 게 기독교가 아닙니다. 남을 긍휼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긍휼로 대접을 받습니다. 반면에 긍휼이 없으면 긍휼을 뺀 심판을 받습니다(약2:13) 율법 안에 갇혀 저주의 그늘 아래에 있어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이판사판의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긍휼이 멈춘 영적상황은 생각하기 조차 싫을 만큼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에게 목회활동의 최대 위기는 그 심령에 긍휼이 말랐을 때라고 봅니다. 그나마 정신적인 통이 큰 사람은 ‘아! 그 뭐 그냥 내 버려 둬 봐요 좋아질 겁니다’ 하고 자동차가 자갈밭을 달리듯 달려가지만 예민한 사람들은 이 사람은 이래서 갉고, 저 사람은 저래서 갉습니다. 안 그러고 싶은데 며느리가 아무리 예뻐도 못난 발뒤꿈치 보고 흉본다고 하듯 꼭 시비를 합니다. 듣고 보니 자신의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목회자입니까? 긍휼을 생산할 수 있는 영적인 공장을 자신 안에 세우세요. 개성공단 같이 남의 땅에 세워 불안해 하지 말고 만세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굳건하게 세우세요.


거듭난 사람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사람은 영혼의 배고픔을 느낍니다. 더 정확하게 성령에 대한 간절히 주린 영혼이 됩니다(마5:3) 십자가의 도를 이해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 새로운 피조물의 첫 번째 현상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의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꿀 송이처럼 달게 느껴진다고 그 경험을 간증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 곧 성령의 기름을 부으십니다. 그 다음에 자신의 몸이 성령의 전이 되면 안팎의 갈등으로 레슬링이 일어납니다. 내부수리가 시작된 겁니다. 그래서 애통하는 마음이 되고 상한심령이 됩니다(마5:4) 성령의 위로 곧 파라클레토스의 복을 받습니다. 참 달콤하지요. 울다 웃다 반복하는 기간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도의 위대한 거래를 능숙하게 합니다. 자신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이고 오직 그리스도만 자신 안에 살아있는 의임을 알게 됩니다(마5:5, 갈2:20, 롬8:10)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므로 젖과 꿀이 흐르는 심령의 땅이 됩니다. 온유입니다. 마음의 땅을 갈아엎을 줄 아는 영적인 기술입니다(호10:12)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의 곧 그리스도를 구합니다. 아니 애타게 사모합니다(마5:6)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 그 심령이 이미 새 하늘과 맞닿는 새 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고 배부른 사람은 저절로 긍휼이 그 안에서 생산이 됩니다. 남을 긍휼히 여기게 되고 베푼 작은 긍휼로 인해 아버지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긍휼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