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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15:10-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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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진보가 없음은 과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은 그리스도와 연결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너가고, 하늘과 땅을 잇고, 영원과 순간을 연결하는 영적인 다리입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는 가운데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진리는 반복하는 가운데 습득이 된다고 말을 하게 됩니다. 주 예수그리스도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의 나무(요15:5)라는 사실에 동의하는데 까지는 그리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대로 아멘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 이름 안에서 구하는 것(요15:7) 열매를 맺고 주의 제자가 되는 것(요15:8)은 여러 해를 두고 이 과정을 반복해야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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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결과를 두고 말씀하시지만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은 시간차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에 인내를 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내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주 예수그리스도가 믿음의 대상만이 아니라 포도나무와 가지의 불가불리의 밀접한 관계로 형성하는 신앙의 과정의 핵심은 진리의 성령이십니다(요14장) 절대적입니다. 신앙은 도상연습이 아닙니다. 진리라는 실체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고,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를 같습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킨다는 겁니다(요14:21) 그러면 아버지의 사랑을 공급받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새 계명을 주시곤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요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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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계명이 아니면 우리는 사랑의 다운로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진리의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있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는 새 언약이 이루어져 이 언약을 지키는 것을 사랑 안에 거한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 사랑 안에 거하므로 우리에게 주의 기쁨이 전달되어 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실제적인 연결이니까요.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요1:16) 따라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 발견된 사람은 이 진리를 통한 과정을 지식으로 이수하는 게 아니라 체득하여 자신 안에 이루어지도록 반복해야 합니다. 지루하다 여길 만큼 오랫동안 반복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속에서 생명의 기운이 밖으로 뿜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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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우리 영혼으로부터 밖으로 흘러넘치는 생명의 에너지입니다. 나무가 제대로 먹고 살지 못하는데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열매는 나무의 생명의 결정체입니다. 기쁨 또한 안에 있는 생명이 밖으로 뿜어 나올 때에 얻는 행복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 그 이름 안에서 구하라, 열매, 하나님의 영광, 제자, 사랑 안에서 거하는 것, 기쁨 그리고 이웃 사랑(요15:12)으로 연결이 됩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이깁니다(요일4:18) 미움도 이깁니다. 세상의 어떤 아름다움도 존귀함도 이깁니다. 자신 안에 있는 영광과 아름다움이 밖의 것 보다 나으면 세상을 이기는 겁니다. 그런 과정을 가진 진보가 모든 이들에게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