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것이 자랑이다

약한 것이 자랑이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절)

바울은 삼층천까지 본 사람입니다. 진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에 나아갈 수 있고, 성령에 이끌려 그 영광의 보좌를 본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완벽한 증인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에 시달렸습니다(고후12:7) 어떤 것인지는 알려고 하지 마세요. 그건 구원하고 전혀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다만 육체의 가시이며 사단의 사자라면 우리 한국 속에 있는 북한의 간첩이나 종북주의자들과 비견하면 될 것입니다. 한국에 살고 있지마는 한국 편이 아니라 북한 편입니다. 참 골치 아픕니다. 이와 같이 우리 안에는 육체의 편을 들고 사단의 편을 드는 가시가 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연약한 것이 매우 싫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선비의 가풍을 이은 가족의 성향이 너무 싫었습니다. 유명한 장군처럼 영웅적인 삶을 살고 싶은데 제 성격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신앙 또한 마찬가집니다. 위대한 일을 해서 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아야 하겠는데 이거 영 말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사람들의 앞장을 서서 큰 일을 하고, 대단한 족적을 남겨야 성에 차겠는데 어느 순간부터 항상 왜라는 의문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 뜻과 믿음의 화합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 파고 드는 유약한 자신을 보곤 참 실망스러웠습니다. 남이 볼 때에 연약하다는 것이 죽기 보다 더 싫었습니다.

지금도 그리스도를 뺀 제 자신을 보면 이런 몰골은 세상에 둘도 없습니다. 비겁하고 거짓투성이에다 온갖 부정함은 우글거리고… 차마 생각하기 싫은 자화상입니다. 육체의 가시나 사단의 첩자가 불쑥불쑥 나타납니다. 바울만큼 스스로 높일 이유도 없는 제게 그런 연약함이 드러나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저는 제 자신에 대한 가능성이 제로이기 때문에 제 안에 계시는 주님을 믿고 간절하게 의지합니다. 아직 바울처럼 대 놓고 그 연약함을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 쓸모가 없는 자신이라는 것에는 유구무언입니다. 찍 소리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딱 하나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도도하고 거친 제 자신의 강해나 글을 본 분들 중에 교만 운운하기도 합니다. 그 때마다 전 이렇게 말합니다. 교만, 그건 나하고는 천리도 먼 이야기라고요. 그 이유는 내게 있어서 그리스도를 뺀 다음에 남는 것은 처절하게 타락한 인간성, 온갖 악성과 악습이 찌들어 있는 연약한 육체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전 체질적으로 교만할 수 없다고요. 아버지께서 저의 심장을 약하게 만들고, 고민하고 몸부림치도록 하셨고,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그 생생한 체험을 공부하여 자신에게 적용하고 적용해 보는 긴 시간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그 연약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익혀 자신의 연약함을 자랑하여 ‘나 같은 것도 사랑하시는 아버지께서 하물며 여러분이야’ 하고 말하게 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