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가 된다

 회개가 된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나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16:29-31절)


눅16장은 인간의 의식이 내세와 바로 연결이 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육체의 때에 호의호식한 부자는 이름 없는 존재로 음부로 가고, 대문간에서 헌데를 벅벅 긁으며 개들과 함께 부스러기를 주워 먹던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완전히 뒤로 돌아 하는 역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가 죽지도 못할 죽을 고생을 하다 보니 형제들이 염려가 되어서 아브라함에게 그 형제 다섯에게 이 사정을 알려 거기에 오지 말게 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눅16:28) 그러나 아브라함은 일언지하에 노하고 대답을 합니다. 이미 모세와 선지자가 있으니 그들로부터 들어야 한다, 듣지 않으면 죽은 송장이 다시 일어나도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성경이 말하는 죽음과 이 부자가 생각하는 죽음과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의 죽음은 하나님과 분리입니다. 죄가 무서운 것은 그 죄가 하나님과 인간을 큰 구렁텅이를 사이에 두고 갈라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와 삯인 사망에 대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야 하나님과 다시 연결이 회복이 됩니다. 그래서 눅15장의 돌아온 탕자를 아버지는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고 말합니다(눅15:24,32) 모세와 선지자는 바로 율법이며 율법은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가르치는 화살표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들으면 주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과 그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뿐만 아니라 빛으로 임하심(눅17:24)까지 알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인자의 날 하루’(눅17:22)을 보지 못합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 명절 끝날 성령이 내주하고 역사하시는 날(요7:37-39)에 대한 소경이 됩니다. 부자가 음부에서 아브라함을 찾을 정도의 기초적인 신앙은 누구나 가질 수 있으나 아무나 나사로와 같은 고난의 삶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나사로는 죽었다가 다시 산 자의 전형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목숨을 부인하며 부잣집 문간에서 수욕과 배고픔을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었다가 다시 산 자에게 그리스도는 빛으로 임하시고(눅17:24) 현재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눅17:21)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노아 때처럼 먹고 마시고 시집 장가가고 집 짓느라고 언제 하늘이 뚫어지고 땅이 갈라지는지 모릅니다(눅17:26-27) 말씀을 듣지 않은 롯의 처는 그만 산송장인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롯의 처는 말씀을 듣지 않으므로 자신의 목숨을 포기할 수 없어 현세를 이길 수 없는 낙방신자의 모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아홉 나병환자처럼 그 신앙이 ‘나 깨끗하게 되었어’ 하는데서 멈추고 그리스도를 제사장으로 모시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눅17:14-19) 오직 한 나병환자만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한 사람이 참 회개의 모델이며 현재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