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자의 소원

살아 있는 자의 소원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27:4절)


신앙은 말씀 안에서 많은 연단을 받아 주 예수그리스도와 친밀해지고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는 단순해져야 합니다. 부부가 매일 우리 대화 좀 합시다 이렇게 나오면 위기입니다. 부부간에 대화가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꼭 사사건건 대화를 해야만 서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부부는 이신전심의 상태로 발전해야만 정상입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를 다 알고 그 사랑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진리의 말씀 안에서 주님과 관계가 확립이 되어 그 안에서 오랜 사귐을 통해 아주 친밀한 관계가 되어 주님 외엔 더 구할 것이 없는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시1편) 곧 복과 하나가 된 사람(福者)은 그 길로 쭉 나아가게 됩니다. 제 같이 덜 된 사람도 때로는 더 이상 설교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내가 주님 품에 안겨 있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데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한단 말인가 생각하면 글을 쓴다든가 말로 표현을 한다는가 하는 것이 무의미 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은 설명하려 하지 않고 노래한다 곧 찬양을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주님이 나의 빛이다 나의 구원이시다 나의 생명의 능력이시다 이건 설명이 아니잖아요 바로 노랩니다. 거기에 귀납이고 연역이고 없습니다. 가진 그대로의 노래입니다.


거기다가 다윗처럼 춤은 왜 추느냐 하면 인간의 언어의 한계로 인해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몸짓으로 표현을 해야만 온전해 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을 할 때에 몸동작을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며 또 언어 중에 목으로 하는 말, 가슴으로 하는 말, 온 몸으로 하는 말이 다르다고 하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언어 중에는 바디 랭귀지가 최고입니다. 사실 세상의 소금과 빛(마5:13-14)이 몸으로 표현되는 언어잖아요. 자신 안에 빛이요 구원이요 생명의 능력이신 그리스도가 계시는데 무슨 설명이 그리 필요할까요? 그냥 노래를 부르세요 입에 달고 사세요 다윗처럼...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아름다움을 앙망하고 주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마지막 관문에서 남은 때를 사세요.


8복으로 율법의 의가 충족함(마5장)과 동시에 주기도를 통해 그리스도가 자신의 보물이 되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그 의가 나의 의가 되고(마6장) 그 의를 통해 주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가 됩니다(마7장) 거긴 주님과 이신전심의 세계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더 이상 배울 것도 더 이상 말로 표현할 필요도 없이 주님 안에 머무는 것 자체를 행복으로 알게 하십니다(요일2:27) 이름 없는 들꽃 한 송이도 우리의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데 하물며 주님 안에 있는 그 아름다운 은사를 어찌 말로 표현하리요. 다만 남은 육체의 때를 주 안에서 주님을 사모하다가 그 날에 정말 아무 말도 필요 없는 그곳으로 영원히 노래하러 가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