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신앙

불멸의 신앙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히7:16-17절)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했답니다. 그건 그 사람과 같이 인간이 인간을 연구한 철학자들의 독백입니다. 근데 아들의 말씀을 받지 않은 율법주의자들은 여기에 공감을 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다가 그만 끝도 없는 광야로 걸어가는 이스라엘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러다가 그만 고생시키려면 왜 우리를 애굽에서 꺼집어냈냐,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왜 맨 날 만나만 주냐, 왜 하필이면 모세만 지도자가 되어야 하냐, 가나안 사람은 거인들이고 우리는 메뚜기야 등등 불신자와 같은 소리를 입에 담습니다. 약속의 기업을 받아 가나안을 비전을 삼지 않은 자들은 상황에 따라 그만 불신의 상태로 돌입하고 맙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선 육체노동을 하고 바로의 배급을 받아먹는 종이었고, 광야에선 불기둥 구름기둥만 졸졸 따르고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만나를 주워 먹기만 했습니다. 은혜지상주의 신앙입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말씀을 받고 스스로 일한 소산을 먹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신자들이 거울인 이스라엘과 같은 방황을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받아 그 안에 새겨진 약속의 기업을 따라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를 침노하는 불멸의 믿음을 가동해야 할 터인데 그만 육체의 법을 따라 하루하루 쪽지 시험을 치듯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신앙을 채점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불공평한 하나님께 은근한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 모터사이클 타고 달린 것 같은 시절은 지나고 밋밋한 신앙의 언덕배기를 끙끙대며 간혹 달콤한 목사의 당근 같은 설교를 기운을 삼아 힘겹게 오르는 불쌍한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육체의 법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든지 아니면 은혜, 은혜만 외치다가 표적도 끝나고 꿈도 멈춘 상태에서 추억은 있는데 현실이 없는 무기력한 신자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오직 처방은 하나 뿐, 아들의 말씀을 듣고 들려줘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거룩인 뭔지, 영광이 뭔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사랑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시인하고 찬양할 수 있는 불멸의 신앙이 됩니다.


그리스도가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중보로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십일조(히7장)가 되고 안식(히4장)을 얻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없으면 육신이 놀 수는 있어도 영혼의 참 안식은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하나님이 없는 가인이 판을 치고, 교회 안에서는 받은 은혜와 진리로 팥죽을 사는 에서들이 우글거립니다. 말씀을 받아 인내로 이루어가면서 불멸의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존재가 변하고 상황을 다스리는 불멸의 신앙이 됩니다. 반드시 인내(휴포모네)가 필요합니다. 오늘은 질문으로 마치겠습니다. 말씀화가 된 사람에겐 성경이 퀴즈문제가 아니라 나의 보증문서(testament)임은 알고 계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