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11:39-40절)
사실 주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받았으니 고스란히 건네주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천국의 서기관은 연구하며 가르치는 교수들과 달리 보여주며 가르쳐야 하기에(마5:19) 딜레마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자신에게 이미 되어 진 말씀을 간증하기도 하지만 장차 되어 질 소망을 두고 증거만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증인은 많으나 약속의 말씀을 받아 이루어 그 끝을 보여주는 사람이 많지 않기에 덜컹하는 가슴을 쓰다듬을 때가 많습니다. 주님도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십니다(마5:48) 말씀을 복으로 받았으면 끝장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육상의 릴레이 경주에서 앞선 선수들이 바통을 넘겨주면 마지막 주자는 죽어라고 뛰어 결승점에 들어가야 먼저 뛴 선수들도 함께 시상대에 오르게 됩니다. 아브라함 이후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다 뛴 증거의 선수들이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누군가 약속의 말씀을 받아 그 끝을 보여주며 가르치는가를 말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달음박질도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 봐 맞지 돼지? 사실이잖아 내 말대로 되잖아’ 하고 기뻐하겠지요. 구약의 믿음의 주자들은 다 증거를 받았으나 지금의 새 언약의 시대 곧 성령의 때만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바통을 넘겨줄 다음 주자는 없습니다. 우리가 결승점까지 뛰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니면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저주를 받은 것은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여 아브라함에게 임한 복을 동일하게 받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하심입니다(갈3:13-14) 성령 이후에 다른 보혜사는 없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증거와 약속이 하나가 되어 끝내기 단계로 접어들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그 마지막 때에 마지막 주자입니다. 더 이상 관중석에 앉아 가타부타 관전평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입으로 증거하던 자리에서 일어나 필드에 나가서 몸으로 뛰어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복음입니다. 증인들과 약속의 사람들이 함께 영혼의 결국인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충만해지는 말씀이니까요.
따라서 언제나 믿음의 경주를 마5장3절의 영혼의 허기 곧 성령의 배고픔에서 출발하세요. 그리스도가 나의 의로 정착이 되면 복이 된 것이고, 이 복이 충만하면 바깥으로 소금과 빛(마5:13)이 됩니다. 소금은 짠 맛을 내고 우리는 살맛을 냅니다. 그리고 어둠을 밝히지요. 주기도를 하다보면 은밀한 상으로 하늘의 보화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받습니다(마6장) 사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상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집을 짓습니다. 그 안에서 정착촌을 건설하는 겁니다(마7장) 이 복이 이루어지기 위해 요한복음의 진리의 성령과 로마서의 개인구원의 원리와 히브리서의 하나님께 나아감의 비밀을 알고 있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