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멸시에 익숙한 사람인가?

난 멸시에 익숙한 사람인가?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는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53:3절)


멸시에 익숙한가? 이건 제게 대한 물음입니다. 그리스도인 아니 내가 이 세상에서 무얼 바라고 있는가? 당연히 사람의 평판과 칭송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세상의 인기를 끌려고 하지 마세요. 잘 하면 잘 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돌아오는 것은 은근한 멸시뿐입니다. 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몸에 채워보겠다고 건방을 떨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멸시천대를 받으면 금방 소름이 돋는 연약함을 발견하고 맙니다.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고, 설익어도 너무 설익은 겁니다.


주님은 자라는 과정도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존재가치가 전혀 없고, 어른이 되신 다음에도 명함을 만들 만한 인물이 되지 못했습니다(사53:2) 멸시와 조롱 심지어 고개를 홱 돌려 ‘에이 재수 없어’ 할 정도입니다. 만물의 찌꺼기와 졸들 중에도 최하위의 졸입니다. 전 어제 내가 과연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이런 멸시와 천대를 당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아이스크림이 녹듯 자존심과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비참함을 견뎌낼 수 있을까? 주님이 가야바 법정에서 당하신 저 수모, 갈보리 언덕에 오르실 때에 빚쟁이들에게나 쏟아지는 욕지거리와 비난의 화살을 뚫고 묵묵히 남은 때를 걸어갈 수 있을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 그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우리가 아니면 이와 같은 혜택을 누가 이 세상에서 받았을까? 우리는 양 같이 다 잘못된 길로 갔지만 주님은 우리의 죄악을 다 짊어지고 가셨습니다(사53:6) 뿐만 아니라 그 부활과 생명의 씨가 내 속에 떨어져 그 분이 찢은 살이 양식이 되고 그 분의 벌거벗음이 나의 의의 옷이 되었습니다. 그 고통스런 영혼의 수고로 인해 우리가 의로움을 얻었습니다. 그로인해 내가 죄인이었을 때에 나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롬5:8)의 빚쟁이가 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죄악을 짊어지고 고난의 십자가를 지라고...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주님처럼...(사53:12) 주님에게 고난도 있고, 멸시도 있고, 한 마디 말 못하는 수욕과 버림받음도 있지만 딱 하나 죽음이란 단어는 없습니다. 언제나 사심입니다. 그리고 오직 남을 위한 대속의 삶뿐입니다. 그로 인해 영원한 기업과 권세를 얻으셨습니다(사53:12) 의로우시기에 무덤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리마대에게 잠시 빌려 쓰고 되돌려 주셨습니다. 영원히 사시고 그 분 안에서 그 분의 길을 묵묵히 따르는 자들을 탄원하십니다(사53:12)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의 영혼의 수고의 혜택을 다 받았고, 그 탄원의 기도 아래에 있으니 오늘도 다시 일어나 걷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