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엡3:20-21절)
신앙의 성숙도에 따라 하나님의 손길을 바깥에서 일어나는 현상에서 찾을 때가 있고, 자신 안에서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체험할 때가 있습니다. 광야에서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좇고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의 생수를 먹고 마시는 등 다 가시적인 하나님의 손길을 만납니다. 표적이지요. 그러나 가나안에서는 그 땅을 경작하여 생산이 되는 소출을 먹습니다. 광야생활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그게 수고로 보이겠지요. 공짜로 얻어먹는 신앙이 죽어라고 일하는 것 보다 그럴싸해 보이지 않을까요? 그러나 약속의 성취 안에 있는 사람은 그걸 하나님의 복으로 압니다. 인생살이가 편하고 고달프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만큼 이룩되어 가느냐 하는 싸움을 합니다.
계시의 말씀이 다가와 자신 안에 그 말씀이 심겨지고 자라나 30배 60배 100배 결실이 되어가는 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천국의 비유입니다(마13장) 말씀이 바깥에서 들리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역사하고 충만해 지는 겁니다. 그 때부터 성경이 은혜롭다 말을 하기보다는 자신 안에 일어나고 있는 구원의 건설공사를 보증하고 감리하고 준공검사를 하는 증거의 말씀이라고 간증하게 됩니다. 내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나를 읽기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계시가 있어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 계시고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어 하나님이 거기에 부르신 목적 곧 바람이 무엇인지를 알고, 베푸신 성도의 기업의 풍성과 그 능력의 지극하심을 알았다면(엡1:17-19) 구하고 생각(이미지)하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우리를 어디서 어디까지 옮겨 ?으셨는가? 그 길을 따라 갈 때에 어떤 대접을 하시는가? 그 한 잔의 피,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에 의한 나의 신분과 소속의 변화와 그로인한 하나님과의 관계,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한 몸 한 영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과정을 늘 마음에 그려야 합니다(엡2장) 생각 속에서 천국 브릿지(bridge) 작업을 부단히 반복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젖과 꿀이 흐르는 복된 땅의 소산을 먹는 것과 같이 심령의 땅이 복 되고 거기서 말씀이 성취되어가는 구원이 일어나는 이면적인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더 이상 바깥에서 자신의 존재의 근거나 가치를 찾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해 지고, 그리스도를 중심에 보시므로 평강을 맛보고, 마음의 중심이 사랑에 뿌리가 박히고, 그리스도의 지식이 넘쳐 그 너비와 길이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알기를 사모하고 구해야 합니다(엡3:17-19) 그 때쯤이면 구하거나 생각하거나 할 때에 우리 안에서 반응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맛보기 시작합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는 반드시 찬양을 받으셔야 마땅합니다. 대한민국이 먹고 살기가 팍팍하다고요? 그래도 일하는 불법체류자를 수십만 명이나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도 일하는 종들을 굶기지 않았습니다. 공중의 새도 먹이고 들의 백합화도 입힙니다. 하물며... 제발 자신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착상되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의 찬양을 부를 구원에 게으름을 피우지는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