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하는 믿음 (행27:22-26)
우리 인간의 삶은 마치 고난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고난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아니, 고난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이 고난에서 제외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도 역시 많은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반드시 승리하게 되고 반드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면 이제 사도바울과 276명의 승객이 배를 타고 로마로 항해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유라굴로 태풍이라고 하는 태풍이 불게 되었습니다. 큰일났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해와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방이 캄캄합니다. 그리고 태풍이 불어칩니다. 그래서 배에 있는 모든 물건들 다 바다 속에 버렸습니다. 양식도 버렸습니다. 배에 도구들도 버렸습니다. 이제 글자 그대로 아비규환입니다. 죽음 직전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여러 날동안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육지에서 태풍이 불어도 힘든데 바다 가운데에서 그리고 캄캄한 가운데 태풍이 부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여러분,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도바울은 선장의 입장도 아니고 평범한 선객의 입장도 아니라 바로 죄수의 몸으로 항해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죄수인 사도바울이 많은 승객들을 향해서 뭐라고 하는가 하면 \'이제는 안심하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안심하라\" 여러분, 어떠한 상황에서 안심합니까?
1)안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안심해야 합니다.
안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상황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절박합니다. 위기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안심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삶입니다. 아무리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안심할 수 있습니다.
2)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도 안심해야 합니다.
이 상황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여러분, 자연재해를 어떻게 인간의 힘으로 막겠습니까? 더욱이 바다 위에서 캄캄한 가운데 어떻게 헤어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안심하라고 말합니다.
3) 절망의 상태에서도 안심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여러가지 상황들이 우리 앞에 다가올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불안해하고 초조하고 때로는 밤잠을 자지 못하고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방법을 동원할 수 없는 마지막 최후의 절망의 자리에 사도바울은 안심하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눈으로 보기에 현실이 너무 답답하고 앞길이 캄캄합니다.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움질일 수 없는 그런 암흑의 세상 속에서, 아니 절망의 구렁 속에 빠져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인간의 절망이 하나님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안심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면 어떻게 사도바울이 이렇게 무서운 유라굴로 태풍이 불 대에 온 승객들이 죽음을 앞에 두고 아비규환이 되었을 그때 어떻게 안심하라고 했는가. 사도바울은 도대체 어떤 믿음을 가졌는가. 오늘 본문을 통해 몇 가지 살펴봅니다.
1. 풍랑 중에도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믿는 신앙(24절)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본문(행23:11)에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ㅣ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의 원래 소원은 이제 예루살렘뿐 아니라 로마 가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풍랑을 통해서 사도바울로 하여금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의미합니다.(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그랬습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계획해서 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아주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계획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어렸을 때 받은 그 꿈과 비전은 산산조각이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애굽의 종으로 팝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합니다. 또 경건하게 살려고 몸부림친 요셉은 감옥까지 들어갑니다. 마지막 절망이었습니다. 누구도 그를 구원해줄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 속에서도 그를 애굽의 국무총리로 만드셨습니다. 그가 노예로 팔려갔거나 감옥에 들어갔던 것은 바로 애굽의 국무총리를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도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그런고로 오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요?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선한 뜻이 우리의 생활 속에 구석구석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뜻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 뜻을 발견할 때에 우리는 늘 안심하게 되고 늘 희망과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2. 하나님께 속한 것을 믿는 신앙(23절)
본문 23절에 \"나의 속한바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그랬습니다. 여기 속했다고 하는 믿음, 대단한 믿음입니다.
속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가르칩니까?
1)교제를 의미합니다.
내가 어느 회사에 속해있습니다. 그러면 그 회사의 사람들과 더불어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속해서 이제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드리며 하나님과 교제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중에 하나님께부터 말할 수 없는 위로와 은총을 입습니다.
2)신분이 달라집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왜 그 힘든 사법고시를 치르고 외무고시, 행정고시를 치르려고 애를 씁니까? 거기에 합격하고 나면 신분이 달라집니다. 신분의 도약이 됩니다. 시험만 합격하면 법관이 됩니다. 판사가 됩니다. 변호사가 됩니다. 검사가 되는 것입니다. 신분이 달라집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속했다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도약이 되었습니다. 신분의 변화가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신부로 여러분의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3)대우를 받습니다.
신분의 도약은 따라서 무엇을 가져오는가 하면 더 높은 대우를 말하는 것입닏. 여러분, 교장보다는 사장이 훨씬 대우가 좋습니다. 여러분, 신분의 도약이라는 것은 대우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셨기 때문에 여러분을 이 세상에서 천하보다 귀한 가장 소중한 분으로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인 크리스트\' 무슨 말인가 하면 \'예수 안에\' \'주 안에\'라는 말로 표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이 세상이 힘듭니까? 어렵습니까? 답답할 때 많습니까? 아니, 죽고싶을 때도 없지 않아 있습니까?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왜 그런가 하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속해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책임집니다. 여러분의 필요를 공급해 줍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소속이 무엇인가를 잊지 말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소속을 날마다 묵상하며 살아강야 됩니다.
3.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믿는 신앙(25절)
마지막 25절을 보니 \"나에게 말슴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랬습니다. \"용기를 내라 네가 예루살렘에서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하게 되겠다. 이 모든 승객들 다 네게 맡기겠다.\"고 그랬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사도바울을 통해서 그 모든 배에 있는 승객들 276명이 구원을 받게 되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죄수의 몸으로 배에 탄 사도바울이 선장보다도 더 높은 지위에서 오히려 그들을 지도하는 높은 지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그 사람, 어떠한 상황에도 안심하고 살 수가 있습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우리의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의지할 사람이 누구 있습니까? 사람도 의지할 것이 못 됩니다. 돈도 의지할 것이 못 됩니다. 명예도 의지할 것이 못 됩니다. 건강도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언제 어떻게 될런지 모릅니다. 이 세상 어디를 바라보아도 우리의 의지가 없지마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의지가 됩니다.
우리 성경을 한번 보십시오. 성경을 보면 사복음서에 이방인 백부장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백부장의 종이 중풍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 내 하인의 병을 좀 고쳐주십시오.\" 그랬더니 예수님이 선뜻 뭐라고 대답하시는가 하니 \"그래 가자. 너희 집에 가자. 내가 고쳐주지.\" 그랬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합니까? \"아이고! 감사합니다. 예수님 가십시다. 가셔서 기도 좀 해주세요.\" 그럴텐데 왠일인가 백부장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나도 남의 슬하에 있는 사람이고 또 내 슬하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을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갑니다. 예수님이 내 집에 있는 것을 난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말슴만 하옵소서. 그리하면 낫겠나이다.\" 그럽니다. 참 놀라운 믿음입니다. 그때 우리 주님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놀라셨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믿음이 있다니 예수님이 놀라셨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예수 믿으려면 예수님을 놀라게 하는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밤낮 예수님을 속 썩이는 믿음 가져와서 걸핏하면 예수님 말씀 의심하고 낙담하고 예수님 볼 때에 얼마나 속상하시겠습니까? \'그 어떤 집사 정말 대단해. 어떻게 저런 신앙을 가졌어?\' 예수님을 볼 때에 놀랄 수 있는 신앙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스라엘에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이스라엘에 모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보다도 백부장의 믿음이 더 좋았습니다. 아니, 그렇게 예수님이 칭찬하고 인정하는 그렇게 깜짝 놀라는 믿음, 도대체 어떤 믿음입니까? \"말씀만 하옵소서. 그리하면 낫겠나이다.\" 말씀만 믿는 신앙입니다. 그 믿음 우리 주님이 그렇게 귀히 여기고 칭찬하시는 믿음이었습니다.
어떻게 안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믿을 때에 안심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지나고 변해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 말씀, 생명의 약속이 여러분을 도와주시고 그 말씀대로 여러분의 생활 속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런고로 온 땅이 험한 절망가운데 있을지라도 비록 우리가 넘어져 있다 할지라도 말씀을 붙들고 다시 일어나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는 태풍 속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유라굴로 태풍같은 시련의 현실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안심하고 하나님 의지하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