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갈1:16-17절)
저는 나름대로 늦게 신학을 한 탓으로 마음이 바빴습니다. 전국의 유명한 교회는 다 돌아보고(처음엔 교회 건물 탐방) 그 다음엔 유명하다고 하는 목사들의 설교를 섭렵해 봤습니다. 성막론이 유행할 때엔 성막론, 종말론이 창궐할 땐 종말론, 강해 설교가 대세일 땐 강해설교...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 유명하다고 하는 목사들의 교회성장이론이나 설교기법 등을 직접 찾아가거나 책으로 독학할 때가 있었습니다. 유명하니까 또 유명한 말이니까요. 그러나 언젠가 부터는 명문대가나 명문장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성경에 밑줄을 긋는 일 자체도 명문구(名文句)의 환상에 사로잡힐 우려가 있음도 알았습니다.
그때는 명문구의 성경구절을 수백 개나 암송하기도 했습니다. 아는 척 좀 했지요. 구원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항상 그 명문구의 구절을 들이대지요. 유명한 분들이 사용하는 유명한 문구니까 말이지요. 그럼에도 그리스도와 관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는 영 어색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다가 내가 팍 죽으면 되나 해서 40일 금식을 하다가 진짜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거의 죽었습니다. 무식했지요. 그 또한 40일 금식이라는 명문구의 환상에 빠진 거지요. 물론 안 한 것 보다는 백배나 낫겠지만 지금 같으면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 때는 40일 금식만 하면 다 될 것 같은 대세였지요. 환상입니다.
그 이후에도 별별 명문구의 교회 성장방법이나 설교방법이 쏟아졌지요. 심지어 미국의 명문교회를 탐방하는 무리들도 많았지요. 그 중에 어떤 목사는 ‘이거 정말 목사님의 목회에 도움이 되세요?’ 하고 묻는 호텔 주인의 말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지금도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보면 명문가의 명문설교가 쏟아집니다. 다 환상이지요. 아니면 환장이든가... 그러나 바울을 보세요.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빛으로 봤습니다. 지금까지 그가 가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완전히 부도가 났습니다. 그 열심에 의해 오히려 맞아 죽을 짓만 한 겁니다. 그런데 그는 그 빛을 안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유명해 지기 위해 동네방네 그리스도를 봤다고 떠들지 않습니다.
친척 친구와 의논도 않고, 서울로 올라가서 명문(名門)이나 명문(名文)의 반열에 오르려 하지 않고 조용히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서 그 옛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구약)을 그리스도를 통해 조망을 합니다. 그 안에 비췬 계시의 빛으로... 그리고 다시 처음 빛을 본 다메섹으로 돌아옵니다. 적어도 그리스도로 인해 출세를 해서 명문(名門)이 되고 명문(名文)을 쏟아내는 목회자와 설교가의 길을 접었습니다. 저도 그리스도의 빛과 생명이 제 속에 꿈틀거리는 순간부터 명문이 되는 길과 명문장을 만드는 일을 포기했습니다. 아라비아와 같이 허허벌판, 다메섹과 같이 척박한 땅에 머뭅니다. 그렇지만 명문가와 명문장의 환상의 도시, 서울보다는 여기가 훨씬 좋다는 생각으로 여태 머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