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마22:1-2,43-44절)
우리의 범죄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와 우리의 의를 위해 다시 사신 그리스도(롬4:25)를 믿는 믿음에 의해 의를 얻습니다(롬5:1) 예수를 숭배적으로 ‘나 그 분을 믿어’해서 의를 얻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를 얻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 와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으므로 의를 얻습니다. 바로 택함을 받은 사람이며 의인이며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을 가졌으며(요1:12) 천국 혼인잔치에 참예할 예복을 입은 사람입니다. 잔치는 무조건 먹고 마시고 하는 곳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없는 것은 다 가짜이며 외식하는 표면적인 그리스도인 곧 무늬만 새기는 신자들을 생산하는 공장일 뿐입니다.
우리 주님은 언제나 제자들 앞에 밥상을 차리십니다. 거기서 회개를 가르치고(눅15) 거기서 자신이 우리의 양식과 음료가 되심을 말씀하시고(요6) 거기서 사명도 주십니다(요21) 교회의 강단 앞에 헤브론(교제) 성찬상이 항상 놓여 있듯 교회는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잔치를 하는 곳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행사가 주류를 이루면 그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존재가치가 전혀 없는 사람들의 놀이터일 뿐입니다. 그 다음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면 하나님의 형상과 글이 심령에 새겨집니다(마22:20)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므로 존재이입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므로 우리 또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그 말씀이 육화되어 갑니다. 자신이 느껴요.
그 다음에는 부활입니다. 죽은 다음의 부활이 아니라 부활과 생명(요11:25)이신 그리스도와 결부, 연합, 화합, 융합이 된 상태는 그 자체가 부활의 삶입니다. 타고난 목숨인 육신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 곧 새 생명으로 사는 연습을 부단히 하게 됩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집짓는 활동이 인생이 전부가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야곱처럼 비록 몸은 이 땅에 머물고 있지만 영원한 본향 안에 있는 믿음에 의해 활동하듯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로 인해 피동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십니다(마22:32)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아니 거기서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마22:37) 노 초이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체를 자신의 몸 같이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가 나의 주가 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혈통에서 난 예수를 주라고 불렀습니다(마22:45)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보지 않습니다. 더 이상 이 땅에서 보여주신 모습에서 믿음의 근거를 찾지 않습니다. 창조의 근본이시며 만유의 주재이시며 만물의 시작과 끝이신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그의 말씀 안에서 그의 영과 생명에게 혼신을 맡기며 먹고 마시고 숨 쉬며 삽니다. 이게 바로 천국입니다. 시편 차원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