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2-14절)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는 진리의 성령을 주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1차적인 주의 계명을 지키는(요14:21) 원리입니다. 영성이란 머리를 텅 비우고 마음을 휑하니 청소하고 아! 편하고 좋다 하는 시간을 오래 갖는 게 아니라 주의 대속의 과정을 듣고 깨닫고 합일 시켜 화합을 이루는 정신작업입니다. 가지인 나,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 뿌리 곧 농부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묵상하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그 사랑 안에 자신을 녹여가는 것이 바로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알리라’(요14:20)는 주의 계명 곧 그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없이 2차적인 계명인 서로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농부가 곡식이 부실해지면 가지와 이파리를 점검하지 않고 뿌리를 파 봅니다. 식물의 원리를 아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빛의 자녀들이 서로 사랑이 안 되면 그 원리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구약의 제사법에 청결법과 사회법이 있지만 유독 제사만 강조하는 것은 그 제사의 원리만 익히면 청결이나 인간관계가 저절로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주 안에서 거룩하게 단장하여 주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 빛을 밖으로 비추며 서로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의 성령 안에서 구원의 원리에 익숙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읽고 들으며 아!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는 걸로 끝을 내고 맙니다.
사실 독약인 줄 알고 먹으나 모르고 먹으나 죽는 것은 똑 같습니다. 결론은 죽음입니다. 죄와 사망을 안고 있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의와 생명으로 연결이 된 진리를 깨닫고 자신의 육신을 부인하고 그 자리에 서서 끊임없는 합일의 묵상과 간구의 경건훈련이 없이 사랑에 이르기는 불가능합니다. 가진 품성으로 서로 최선을 다하는 미학일 뿐입니다. 그건 생명과 사랑이신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컨대 수학의 공식을 이해한다고 문제를 잘 푼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문제를 공식에 대입하며 반복해서 풀어봐야 비로소 문제에 대한 답을 내는데 익숙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진리는 반복을 통해서 자신의 몸속에 체화 곧 합일이 됩니다. 그 만큼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영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우리의 육신의 조직과 성분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의 가지가 된 우리가 그 사랑 안에 머물기 위해선 그 진리의 복음을 수도 없이 자신에게 적용을 해야 합니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야만 그리스도의 영과 생명이 활동하게 됩니다. 그 때부터 그 힘에 의해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다만 여기서 문제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미움도 함께 받게 되는 겁니다(요15:19) 세상이 배척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 친구로서의 숙명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친구로 인정하시는 주의 대접은 반드시 남다릅니다(마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