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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잠3:7-8절) 통상적으로 영혼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정신은 그 시대의 윤리와 상식과 보조를 맞추고, 육신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면 건강한 삶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따지자면 하나님께 떳떳하고, 실정법과 사회의 요구에 책잡힐 것 없고, 환경과 기후조건에 잘 맞추면 된다고 여기는 게 아니겠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호연지기 곧 의로운 길에서 얻는 담대함과 자부심에서 나오는 기운 곧 사람의 도리를 다 했을 때 오는 의로운 자부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양약, 그리고 골수를 윤택하게 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과 생명이 링거처럼 연결이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골수는 뇌 하수와 직결이 되어 피를 생산하는 기능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 골수를 윤택을 다지고 다지면 승려들이 죽으면 사리가 나오듯 뼈 속이 보석같이 단단해 지겠지요. 골다공증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하고는 거리가 멀겠지요? 그런데 여호와를 경외한다, 그리고 악을 떠난다는 말씀을 성숙한 상태에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셔요. 권선징악의 하나님이 두려워 악을 멀리 한다? 맞지요. 절대로 나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면 자신과 주변이 다 좋겠지요. 그렇다고 그게 하나님의 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은 죽은 자가 사는 것이요 산 자가 그 분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를 멀리하고 스스로 지혜로운 체 하는 것은 성경적인 악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모든 것이 다 악이라고 여겨질 때 까지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선을 다 합쳐도 참깨 씨 생명을 하나 만들지 못합니다. 또한 이 세상의 선을 다 합쳐도 한 움큼의 사랑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선은 선이고 사랑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공급받는 빛은 생명으로, 생명은 사랑으로 진화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진화의 종국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생명을 얻는 하나님의 선에 대하여 무지막지하게 악합니다. 시간만 있으면 스스로 무엇이든 해 치웁니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듯 우선 사건이 생기면 스스로 해결하는데 이골이 났습니다. 우선 저 부터 하나님의 선에는 아주 게으르고 스스로 해 치우는 악엔 엄청 부지런합니다. 또 거기다가 주께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인해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 두셨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에는 젬병입니다. 게을러 터졌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총체적으로 악하고 게으릅니다. 그러나 성령의 간섭을 끈질기게 받다보면 ‘알겠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오직 주님뿐입니다’ 하는 경외감을 갖게 됩니다. 당연히 그 분을 따라 산 자의 동네 곧 생명을 공급하시는 자리에 우뚝 섭니다. 그 기초가 점점 견고해 지면서 진리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사모하게 됩니다. 악함과 게으름이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생명의 링거는 흘러들어오게 됩니다. 신기한 복입니다. 근데 혹시 제 말이 거짓말로 들리지는 않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