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마5:7절)
교회라는 간판은 걸었지만 훈련이 잘 되어 똑똑하여 냇가의 조약돌처럼 매끈하고 모양 좋은 모범생들만 모여 있다면 보기엔 그럴듯하지만 그건 하나님의 교회는 아닐 겁니다. 프랜차이즈 음식점도 본점과 각 지점의 맛이 동일한데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하나님의 긍휼을 수혈하고 드러내는 기능과 역할의 비밀을 지닌 교회가 성도들로 하여금 긍휼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숫자와 상관없이 그 교회 목사의 천국건설의 공사는 실패하고 있는 겁니다. 모르면 모르되 지금의 교회의 최대의 폐단이 아마 긍휼을 만들어내기 못하는 목사의 한계일 것입니다. 긍휼이 없으면 사랑도 용서도 없습니다. 교회 전체가 항상 재판정일 겁니다. 피차 심판을 주고받을 것이니까요(약2:13)
주 예수그리스도를 경외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없습니다(시103:13)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스스로 선한 체 하는 교만은 하나님의 긍휼이 스며들 틈을 막는 일입니다. 흡사 얼굴은 예쁜데 공부를 지독하게 못하는 학생과 같습니다. 얄밉지요. 하나님이 그 아들을 구주로 주셨으니 그 앞에 절하고 입을 맞추어야 합니다(시2:11-12) 자신을 자신의 것인 양 함부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발로 차면 망하게 됩니다. 삼위 하나님 앞에서 항상 자신을 없애고 배고픈 영혼의 거룩한 거지가 되어야 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시42:1-2) 하나님을 찾고 영혼이 그리스도의 영과 생명에 배가 고파야 합니다(마5:3) 주린 영혼으로 사모하고 또 사모해야 합니다(시107:9)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진리의 지식을 알고 십자가의 도를 따라 정상적으로 저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는 복이 있는 자라면 저절로 그렇게 되고 있겠지요. 아니면 밥 먹기 싫고 숨 쉬는 것이 거북한 환자와 같겠지요. 영의 사람은 자신 속에 있는 양극으로 인해 상한 심령으로 애통해 하는 가운데 성령의 위로를 받습니다(마5:4) 하나님은 우리의 죄대로 갚고 갉는 분이 아니십니다. 자신의 육체의 덫으로 슬퍼하는 자들을 성령으로 껴안으십니다. 우리의 체질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시103:14) 드디어 자신을 십자가에 팔고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새 피조물만 사들이기로 작정한 자에게 새 땅을 주십니다(마5:5)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마음껏 구하고 받을 수 있는 마음의 땅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물을 떠난 고기가 잠시하도 살 수 없듯 그리스도를 절실하게 붙잡는 신앙의 상태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천국잔치의 배부름이 옵니다. 영적인 뒤주가 넉넉하게 찹니다. 당연히 남을 긍휼히 여기고 수도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긍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이기면 상을 주시고 일하면 삯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더 이상 ‘말씀이 충만해야 돼, 긍휼이 있어야 해’하는 선생 노릇을 그만 두세요. 그 방법과 길을 제시하고 그 길목에 서서 하나님의 긍휼에 연결이 된 긍휼간판으로 묵묵히 서 계세요. 광화문 네거리의 이순신 장군의 동상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