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15:24,32절)
아담 안에 있는 육체의 사람은 하나님의 집의 양식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육신의 분깃만 생각할 뿐입니다. 선악의 레슬링을 하는 것으로 선이라 생각하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 하며 안 되는 자신을 합리화 하고 맙니다. 그리고 선의 의지를 따라 남에게 육신의 것을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성령이 내주하고 역사하지 않기에 그리스도가 생명이 되는 양식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때에 그리스도를 먹고 마신다고 하니 로마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식인종으로 알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리스도를 먹고 마신다는 사실에 아둔하면 그 사람은 아직 십자가 앞에 있는 죄의 동네에 주민등록을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호적을 하러 베들레헴(떡집)을 찾아 간 마리아로부터 모든 인류의 생명의 떡인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했습니다. 호적이란 말이 굉장한 의미입니다. 만약 우리의 호적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등록이 되어 있다면 당연히 우리의 고향은 떡집인 그리스도 안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야만 들어가는 곳입니다. 육신이 멀쩡하게 산 맏아들 같은 이는 아들이면서 종처럼 부지런히 일만 할 뿐 아버지의 것이 자신의 것인지도 모르고 아버지의 집의 양식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며칠 전에 한국에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아들이 며칠 어딜 다녀온다고 했는데 카드회사에서 연락이 오기를 그 아들의 신용카드가 필리핀에서 비밀번호가 다르게 인출을 시도한다는 겁니다.
깜짝 놀라 전화를 하니 받긴 하는데 응답을 하지 않고 끊어버리더랍니다. 이거 큰일입니다. 그러다가 한참 있다가 아들의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는데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끊고는 그 다음부턴 아예 꺼버리더라고 합니다. 그러면 전화와 카드가 남의 손에 있다는 결론입니다. 대사관에 실종(missing)신고가 들어가고 아들을 찾는 작업이 전 방위로 전개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들이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저녁에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 얼빠진 모습으로 그 아들이 나타났습니다. 아들이 실종된 이틀 사이에 그 부모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저도 아이를 8시간 잃어 본 경험이 있는지라 최선을 다해 도왔습니다만 그 심정은 도무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서 자신을 포기하고 그 생명의 양식을 먹는 것으로 만족하는 아들로 거듭나는 것이 진정한 회개이며 아버지의 큰 기쁨이며 천사들이 기뻐할만한 일입니다. 천지창조 때에 천사들의 합창이 있었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그 찬양이 있었으며 지금도 이 죽었다가 다시 산 아들이 다시 돌아와 아버지 앞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진정한 회개가 있을 때에 천사들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찬양을 합니다.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인 그 사랑으로 죄인을 회개시켜 자신이 죽었다가 다시 산 자임을 알고 아버지 집의 양식 곳간에 머물며 또 자신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하나님의 양식이 ?품?하는 하나님의 솜씨에 천사들이 기뻐합니다(눅15:10) 이런 일을 대행하는 곳이 바로 교횝니다(엡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