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너희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절)
우선 축제 신앙으로 감정의 즐거움을 좇는 심미적인 놀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간증을 묵시적으로 표현하는 아름다운 언어의 유희도 지나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실존의 하나님 곧 참 하나님이시며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에 있어서 된다 안 된다 이런 답이 나와야지 뭐 많은 수사가 들어가면 그건 정답이 아닙니다. 수학문제에 답이 길면 그건 틀린 겁니다. 그렇듯 진리를 깨닫고 터득하는 시간은 길지만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에 있어서 체험을 간단해야 합니다. 어물어물하면 그건 안 된 겁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지만 은혜를 받아야 된다든가 아니면 성령을 받아야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그건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제 같은 경우는 많은 대화를 나눈 다음이나 급하게 일을 처리한 다음이나 마음에 불편을 주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엄청난 피로가 몰려옵니다. 그 때에 사람을 만나면 거의 눈을 감습니다. 완전히 그로기입니다. 그래서 눈을 게슴츠레 뜨는 둥 감는 둥 하고 있으면 저더러 잠이 오느냐고 묻곤 합니다. 사실은 방전이 되어 재충전 중입니다. 그땐 무조건 상황을 피해 주님과 은밀한 교제를 시작해야 합니다. 아니면 실수를 드러냅니다. 남이 모르는 실수입니다. 조급하다거나 충동적인 말과 행동이 나오고 맙니다. 무공을 하는 사람에겐 힘을 쓰고 난 다음엔 운공조식이 필요하듯 영의 사람은 항상 자신의 방전과 충전의 상태를 잘 조절해야 합니다.
저의 방법은 얼른 현재의 환경을 피하여 혼자 조용히 주님의 대속의 은총을 다시 쫓습니다. 로마서 1-8장도 좋고, 마5-7장도 좋고, 요1-17장도 좋고, 히1-10장도 다 좋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연결이 된 상태를 회복하고 막힌 교제를 잇고 공급통로를 다시 확보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끊어진 것이 아니라 나의 사정에 의해 막힌 겁니다. 그야말로 기(氣)가 막힌 거지요. 많은 반복 실패를 겪은 다음 그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주님이 내가 너희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이 계명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배웁니다. 그리스도 이전에야 ‘내가 할 수 있다’ 하고 무력시위를 한 거지요. 지식이 있고, 건강이 있고 기술이 있고 경험이 있으니 난 할 수 있어 하고 덤빕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의 자비의 손에 많이 잘리고 깎이고 닳아본 사람은 그 분이 공급하시는 생명이 끊기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여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겠지요. 주의 영접에 따라 나도 주를 영접하는 과정, 진리의 성령에 의해 그 문에 들어가 길과 진리와 생명의 계단을 따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경건의 훈련, 피와 십자가와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올라가는 반복 훈련을 통해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와 내가 실제로 연결이 되어 있고 그 분에 의해 피동이 되어야 열매가 있고 아니면 엉뚱한 짓을 하고 마는 자신을 철저히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과 생명의 방전과 충전의 원리를 익숙하게 터득합니다. 단 육체를 벗는 날 그 땐 더 이상 필요가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