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로부터 구원

육체로부터 구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으로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절)

구원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새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감을 확립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 생명을 얻되 계속 얻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영생입니다. 그럼에도 흘리신 피에만 머물러 있다거나 나무 십자가 밑에서 끙끙댄다거나 성령의 은사에 매달려 있는 것은 성경은 방탕이라는 표현으로 나무라십니다. 온전한 구원의 프로세서를 위해서는 적어도 로마서를 통한 요한복음의 이해와 히브리서의 고지는 점령을 해야만 구원에 대해서 동서남북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대갈을 할 수 있는 나팔이 됩니다. 계급장 떼고 닥치고 들으라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죄송하지만 여기서 누가 제게 설교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면 나는 목회자에게만 말씀을 증거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일반 교회의 초청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따르지 않습니다. 저도 한 때에 제 자신의 구원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몇 년을 머문 적이 있습니다. 따분했습니다. 바짝 따르는 분들도 없어 보여 몇 년 땡땡이를 쳤습니다. 그러나 근년에 이르러 주님은 다시 느슨해진 고삐를 당기시는 것 같습니다. 히브리서1장부터 13장까지 쭉쭉 나아가다보면 언제나 이 5장에서 마음이 걸립니다. 사탄의 가시처럼 찌르는 그 무엇이 있는데 그건 바로 육체로부터의 구원의 명제입니다. 이게 저의 현재의 숙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랑해야 할 대상에 대해 이젠 사랑이라는 말 대신에 숙제라고 명제를 바꿨습니다. 우린 주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죄와 사망에서 빠져 나와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거룩을 얻었습니다(히2장)

하나님께로부터 오셨고 그리고 돌아가신 길을 훤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태초 안에 계시던 말씀이 대제사장이 되셔서 나를 그리고 이끄십니다. 그 길을 오락가락하기를 수천수만을 반복했습니다. 당연히 믿음의 화합을 위해 영과 혼과 육의 차서에 길들여져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를 조준하여 나아가는 자격지심을 확립했습니다(히4장)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알고 새 언약과 하늘 성소로 가셔서 거기서 나를 위해 간구하시는 주 예수그리스도를 모시고 그 분의 과정과 날 오라고 하신 장소까지 보입니다. 바로 완전한 구원이며 시온 산에 선 자로서의 마땅히 이룩해야 할 구원입니다. 사실은 여러 가지 징계를 통해 드디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얻어 믿음의 삶이 나옵니다(히12,13장) 이 과정에 있어서 제겐 언제나 히5장이 모래를 품은 조개의 아픔처럼 아릿하게 다가옵니다.

죄와 사망에서 떨어진 후에는 이 세속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이르기 위해 육체로부터 구원이 필요한 겁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의롭게 되었고 거룩함과 영화로움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껴입고 있는 육체는 상상외로 더럽고 누추하고 거짓되고 악합니다. 시간만 있으면 엉뚱한 발상을 하고 맙니다. 지긋지긋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거룩하신 기도의 싸움을 겟세마네의 동산에서 땀을 핏방울 같이 되도록 하셨지만 저희들은 하나님께 뽑혀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구원에 초청 받아 천국 파티에 참예한 자로서의 싸움입니다. 이제 겨우 천국의 방명록에 이름만 적어 놓고 큰소리치지 맙시다. 자신의 육체의 더러움을 안다면 이제는 주님의 동선을 따르면서 크게 신음하면서 울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