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여사명을다하라
눅 9; 28-43
예수님께서 3년 남짓 메시야로서 공생애를 사시면서 가장 집중했던
사역이 제자들을 세우는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그 제자들은 교회가 되었고,
교회는 전 세계 가운데 퍼져갔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교회를 남겨놓으시고 떠나셨으며,
그 교회를 세우시기 위한 기초를 제자들을 통해서 이루어 나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전에
세 명의 제자 베드로, 요한, 야고보 즉, 미래의 교회의 대표들을 데리고 한 산에 오르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려와 귀신에 잡혀 고통하는 한 아이를 치유하십니다.
이 말씀 안에 교회가 머물러야할 두 방향 혹은 두 지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산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첫째로; 산위에교회
성경에서 산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를 상징합니다.
즉, 산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예배와 기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본문 28절에서 “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 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러 산에 오르셨습니다.
이 기도 안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예배함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양을 드리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예배와 기도 산에 오를 때에 세 가지를 경험합니다.
1) 영광을 경험한다.
제자들은 영광스럽게 변형된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29절에 “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제자들은 그동안 예수님의 육체 가운데 가려졌던 신성의 실체를 보게됩니다.
또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도 함께 경험합니다.
34절에서
이 말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라 하는 데
여기서 ‘구름, 연기’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날 때 동반되는 현상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된 인생이 대면할 때
스스로 당신 자신의 모습을 구름이나 연기 사이에 감추신 채 나타나십니다.
이처럼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이중으로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또한 그 자리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우리의 예배와 기도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예수님의 영광의 임재, 이후에 제자들이 오순절 다락방에서
경험한 성령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하기를 갈망합니다.
2) 말씀이 풀어진다.
30절, 31절에서 “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을 대표하는 이들입니다.
영으로 이 자리에 있는 모세와 엘리야는 그들을 통해서 풀어놓으신
구약이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될 것에 대해서 나누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가고
그분의 보좌 앞에 서면 성경의 말씀 가운데 있는 경륜과 계시가 풀어집니다.
문자 안에 하나님은 당신을 담아 놓으셨고, 그분을 뵈올 때에
그분께서 풀어 주시는 말씀을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제자들은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습니다.
35절에서 “
구름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 말을 들으라 하고” 하는 데
동일한 것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의 기록을 보면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라고 합니다.
예수님께 대해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이지요.
나아가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반드시 들어야할 음성입니다.
먼저 우리는 “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갈 때 가장 먼저 듣는 음성이 이것입니다.
이 음성이 우주 가운데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어떤 상황속에서도 초급해지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들어야할 음성이 “
내가 너를 기뻐한다. 너는 내가 기뻐하는 자이다.”라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음성은 우리의 마음의 확신을 갖게하고
어떤 고난과 환란과 어려움이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며 바위처럼 신실하게 살아낼 수 있게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면 말씀이 풀어지고,
나아가 우리를 향한
레마의 말씀들,
개인적이고 친밀한 사랑안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보이십니다.
3) 오직 예수님만 보인다.
36절에서 “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도 떠나가고 전해주신 말씀은 기억속에 남아있습니다.
그들 눈에 이제 유일하게 보이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보입니다.
결국 산에 오른 결과가 이것입니다.
세상은 온데 간데 없고 예수만 보입니다.
걱정과 근심과 염려는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예수님만 보입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려고 전전긍긍하던 것들도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예수님만 보입니다.
나도 사라진 것 같고 오직 예수님만 보입니다.
그래서 원수와 빚쟁이의 얼굴속에서 예수님을 보게되고,
그렇게 웬수 같은 남편 얼굴에서 예수님을 보게되고,
그렇게 보기 싫었던 집사의 얼굴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보이게되고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입니다.
나아가 오직 예수님만을 사랑하는 자로 예수님의 신부로 서게됩니다.
그리고 신랑되신 예수님과 더불어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둘째로; 산아래교회
그렇게 놀라운 일을 경험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끌고 내려오십니다.
베드로가 그곳에 초막 셋을 짓고 그곳에 머물기를 요구했지만 주님은 “내려가자”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산에서 내려옵니다.
37절에서“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라 합니다.
산 밑에 귀신들린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예수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아버지를 포함해서 모든 무리가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교회가 머물러야할 두 번째 장소가 바로 여기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곳으로 가야합니다.
그곳에 세 가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1) 사람들의 필요가 기다리고 있다.
본문의 귀신들린 아이와 그 부모처럼 사람들의 필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씀을 계속 보시면
밑에 있던 9명의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하려고 애를썼으나 치유하지 못합니다.
믿음의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산에 오르셨던 예수님께서 이 아이를 치유해주십니다.
이처럼 산 아래는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
예수님의 능력이 필요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그산에 오른 경험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생명의 말씀을 먹고,
오직 예수로만 채워진 사람들안에 예수님의 생명의 능력과 권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움직일 때 이러저러한 사람들의 문제를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나누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2)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다.
본문의 말씀 이후의 44, 45절에서 예수님은 “...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행할 때에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할 것은 반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때론 모욕으로 돌아오고,
조롱과 핍박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조차도 우리에게 분노하고
예수님의 생명에 관한 복음을 듣기를 싫어합니다.
그게 죄의 속성이고, 사탄이 뒤에서 그들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동일한 길을 걸으셨고 결국 그 반대자들에 의해서 십자가 못박힘을 당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와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가 피할 것이 아니라 통과해야할 것입니다.
사실 십자가를 지는 것, 그것을 통과하는 것은 유쾌하거나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을 때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생명은 십자가를 통과할 때에 열매로 맺혀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은 곧 교회의 길이기도 합니다.
3) 하나님의 위엄이 나타난다.
본문 43절에서 “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라 합니다.
십자가를 통과할 때에 하나님의 장엄하심, 하나님의 위엄과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순간에 그동안 그들의 지식과 경험과 종교로 인해
꼭꼭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이 일격에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열고, 선포되는 생명의 말씀, 복음을 듣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예수님께 나아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우리가 십자가를 통과할 때에 얻을 수 있는 결론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통과할 때 부활의 영광과 승천의 자리에 참여할 수 있었듯이 말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와 우리 모두 가운데 날마다 이런 하나님의 위엄을 삶속에 일어나길 축복합니다.
결론으로;
교회를 교회되게하는 것은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가입니다.
이 생명은 산에 오를 때,
즉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고 그 말씀으로 채울 때 우리 안에 풀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취하여 믿음으로 선포하고 살아낼 때 삶속에서 경험되어지고,
그 때 비로서 우리 안에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말씀을 예수님이 필요한 이들에게 십자가를 무릎쓰고
사랑안에서 섬기며 전할 때에 능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능력, 사람을 살리는 능력, 치유하고 회복하고 자유케하는 능력으로 말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가 이 두 자리에 온전히 서는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