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고스는 생명과 빛으로 오심(1:4~5)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이 빛은 생명의 빛입니다. 3,500년 전 피라미드 속에 한 항아리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 항아리 속에는 당시 사람들이 먹던 콩이 들어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콩을 땅에 심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3,500년이나 묵었던 콩에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콩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3,500년 동안 피라미드 속에 있던 콩이라도 그 안에 생명의 DNA가 있었고 그 생명은 햇빛을 받을 때 다시 싹이 나게 되었습니다. 빛은 생명입니다. 아무리 새콩이라도 동굴에 갖다 놓으면 절대 싹이 트지 않습니다. 물을 잘 주고, 거름을 주어도 싹이 나지 않습니다. 생명을 주는 햇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빛이 없으면 생명이 자라거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로고스이신 예수는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이 빛을 받는 사람은 어두움에서 나오게 되고, 영적 죽음에서 살아 나게 됩니다. 신약 성경 13권을 기록하고 서구세계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시도 바울은 한 때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예수를 이단으로 여기고 교회를 파괴하러 다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시리아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잡으려고 다마스커스 언덕을 지나가다가 하늘로부터 오는 이 빛을 받았습니다. 너무도 강력한 빛이라 거꾸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빛 속에서 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는 빛을 향해 사울은 외쳤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그가 빛이신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를 핍박하던 자리에서 돌이켜 예수를 증거하는 사도로 바뀌게 됩니다. 이 빛은 거부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빛입니다. 5절에,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 바른 번역은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입니다. 이 빛이 임할 때 어떤 종류의 어둠도 물러가고 비록 3,500년 동안 피라미드에 갇혀 있었던 생명이라도 살아나게 됩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사도 바울과 같은 숱한 악인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들 중에 바울처럼 빛을 받아 인류 역사와 문명을 밝힌 위인들이 허다합니다. 어거스틴도 10년 동안 마니교에 빠져 있다가 어느 날 로고스의 빛을 받고 변화하여 성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나 존 칼빈 역시 어둠 속에 있다가 빛을 받고 세계 역사를 바꾼 위인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도박 시장이 연간 60조원이라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 대단합니다. 세계 1위 하는 것 많아요. 술 마시는 것, 교통사고,도박도 나라 규모에 비해 단연 세계1위 입니다그 조그만 나라의 도박 시장이 연간 60조원이라뇨? 왜 도박 시장이 이렇게 커질까요? 나쁜 것인 줄 알면서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잘 나가던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 가운데 번 돈을 다 도박으로 날려 버리는 경우도 우리가 종종 봅니다. 잘 나가는 사회 지도층 인사나 연예인들이 마약이나 도박으로 인생이 완전히 망가지게 됩니다. 망가질 것을 알면서도 덤벼 드는 것입니다. 어두움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죄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나쁜 습관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힘으로도 안 됩니다. 노력으로도 안 됩니다. 결심하고 결심해도 안 됩니다. 빛이 있으면 어두움을 물러 갑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고 했습니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는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요12:46)고 했습니다. 어둠을 물리치려고 애를 쓰지 말고 빛을 받아 들이세요. 로고스이신 말씀을 받아 들일 때 빛이 그 안에 거하게 되고 자연히 어둠을 물러가게 됩니다. * 참 빛의 증거자 세례 요한(7-9) 이 ‘생명의 빛’에 대하여 증거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하나님께서 큰 일을 행하실 때 그냥 행하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미리 말씀하시고 행하신다고 했습니다. 아모스 3장 7절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언약하시고 언약하신대로 이루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고 그 분을 경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고스’가 이 세상에 오신다는 예언은 이미 3,500년 전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18장 15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고 했습니다. 구약 선지자들을 통해 로고스가 이 땅에 오실 것이라는 것을 600회 이상 예언을 하셨습니다. 누구의 자손으로 태어날 것이며, 어디서 태어날 것이며, 생김새는 어떨 것이며, 어떤 사역을 하게 될 것이며, 어떻게 죽을 것이며, 어떻게 다시 부활하실 것인가에 대해 구약 성경에 이미 예언되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고스’가 이 세상에 오실 때 빛에 거하는 사람들은 그가 로고스 이신 것을 다 알아 보고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가 ‘로고스’시다는 것을 더 분명히 하기 위해 ‘로고스’가 오실 때 그의 앞서 그를 증거할 자를 보내시겠다고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시40:3) 참 빛이신 로고스가 세상에 오시기 전에 천사장 가브리엘이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을 찾아가 알려 줍니다. 이 두 사람은 자식이 없었고, 늙었습니다. 천사는 이 두 사람 사이에 아이를 주실 것인데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으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 길을 예비하게 될 것이라”(눅1)고 알려 주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인기가 절정에 다다를 때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로고스가 아닌가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종교와 정치지도자들의 회의에서 사람을 보내 세례 요한의 정체성에 대해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냐?” 이때 세례 요한의 대답이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이다”고 답을 함으로 자신이 참 빛이 아니라 빛의 증거자라고 자신의 정체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참 빛으로 오신 로고스 예수의 신발끈 매고 풀어 드리는 것조차도 황송하여 감당치 못한다고 했습니다. 참 빛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겠습니다. * 참 빛에 대한 세상의 반응(9~13) 참 빛이 비추일 때 두 가지 부류로 사람들이 나뉘어 집니다. 첫째는 빛을 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 10~11절에,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임한 ‘로고스’를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빛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거부합니다. 반면에 빛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로고스의 빛이 비추일 때,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아멘! 하며 믿고 빛으로 나와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빛이 비추일 때 빛을 거부하고 대적합니다. 예수께서 설교를 하실 때 그에게 나와 듣고 제자가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설교를 듣고도 오히려 돌을 들어 치려고 하고, 대적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을 박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도들이 설교를 할 때 은혜를 받고 돌아 오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에 돌을 들어 치고 핍박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설교를 듣는데 왜 이렇게 정 다른 반응이 나올까요? 출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빛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사람들입니다. 13절에,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빛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내게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주 앞에 나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여러분들은 아버지께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알기를 원하고, 그 나라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뜻데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버지께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이 때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신 로고스이십니다” 이 대답을 들은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7절에,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하신 이는 네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만이 빛이신 예수께로 나옵니다. 출생 자체가 다른 것입니다. 언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게 되었습니까? 에베소서 1장 4절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로고스’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사상’ ‘하나님의 작정’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의지’라는 뜻은 이미 창세 전에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사상과 작정과 예정과 의지가 먼저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은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결심을 하는냐 같은 내게 달린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그 뿌리는 ‘로고스’입니다. 창세 전부터 선재하시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사상’ ‘하나님의 작정’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능력’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예정은 현재 나의 상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빛을 보고 빛을 영접하는 자는 태초부터 구원받기로 예정이 되어 있는 것이고 빛을 보고 거부하고 대적하는 자들은 태초부터 하나님의 작정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말을 성경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교회에서 거의 하지 않습니다. 교인들이 듣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의 사고와 이성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과학적이거나 이성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빛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책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놓고 ‘하나님은 불합리하고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그런 판단과 비난을 받을 위치에 있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빛의 자녀들의 아버지입니다. 빛으로 지금 나와 있는 내 현재의 모습을 통해 절대자이시고, 창조자이시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구원을 창세 전에 작정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빌1:6) 반드시 구원을 얻습니다. 비록 넘어지고 자빠지고 일시적인 죄악에 빠질지라도 구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인간의 조건에 따라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이 변경이 되는 것은 성경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런 무능력하고 변덕스런 하나님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창세 전에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어떤 조건으로도 실패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43장 13절에,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빛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바리새인들, 율법사들, 사두개인들을 향해 예수께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로고스가 그 속에 없으므로 로고스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했습니다. * 독생자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이신 로고스(14절)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로고스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여기 ‘아버지의 독생자’란 뜻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낳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와 결혼해서 로고스를 낳습니까? ‘독생자’의 의미는 ‘독종자’ 즉 같은 종류란 뜻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제자들은 로고스의 영광을 보고 따라갔습니다. 어느 멍청한 사람이 처음 만난 젊은이가 “나를 따르라”고 할 때 직장을 버리고, 사업을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따라갑니까? 제자들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즉시 따랐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제외하고 전원 다 ‘예수는 로고스시다’는 복음을 전하다 순교 당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사도 요한도 펄펄 끓는 가마솥에 던져 졌으나 전혀 타지 않아 터키 밧모섬에 유배되어 거기서 기도하다가 하늘이 열리고 요한계시록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우리가 로고스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우리에게 독생자의 영광을 보여 주시고 진리와 은혜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드리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헌신된수고는로고스의 영광을 보고 은혜와 진리의 빛을 받은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렇게 하면서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고, 죄송하게 느끼고, 더 헌신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가지고 살아 갑니다. 그게 빛의 자녀들입니다. 사랑하는 유나이티드신학대학교 신학도들 이여 !!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로고스이신 하나님이 직접 세상에 오셔서 어떤 분인지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사상과 영원하신 작정과 예정과 의지와 능력을 보여 주셨습니다. 헬라인들이 찾던 이데아의 영원한 세계,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참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깨닫고, 독생자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로 그 나라를 위해 살아 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