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의미와 해결의 길 (요 9:1-7)

 우리 인생의 삶에 있어서 또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믿음으로 살고 누구못지 않게 진실하게 바르게 살려고 애를 씀에도 불구하고 고난이 멈출 날이 없습니다.

고난에 대한 견해

여러분,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고난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 그것을 알게 되어집니다.

1)사람이 당하는 고난은 모두가 죄 때문이라고 멸시했습니다.
본문 1절에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한 맹인, 그것도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맹인을 보시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묻습니다. \"예수님, 저 맹인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 죄 때문입니까? 부모님의 죄 때문입니까?\" 그때 3절을 보면 우리 예수님께서 대답을 하십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고 말씀을 하십니다.

2)죄 때문인 고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제자들이 뭐라고 말합니까? \"본인의 죄입니까?\"라고 먼저 묻습니다. 그때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 고정관념은 모든 고난과 질병은 죄로부터 온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본인의 죄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사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38년 된 문둥병자를 고쳐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더 심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다시 가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병든 사람은 모두 죄인들이고 건강한 사람은 모두 죄가 없는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3)부모의 죄가 유전될 수 있습니다.
맹인이 이렇게 눈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은 그 부모 때문이냐고 묻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부모 때문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출20:4-6)보면 십계명이 기록되면서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고 하나님 미워하는 자의 자손 3, 4대까지 그 부모의 죄를 갚는다고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참 의미를 우리가 찾고자 하면 히브리서 2장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히12:5)이하를 보면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고 했습니다. 징계는 하나님의 아들이면 누구나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4)고난은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징계를 받게 되는데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입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깨닫도록 하는 징계를 허락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회개하고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때로는 징계하십니다.

② 믿음의 연단을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합니다.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약한 믿음을 강하게, 적은 믿음을 큰 믿음으로, 견고한 믿음으로 하시기 위해서 징계하십니다. 연단하십니다.

③ 신앙인격의 성숙을 위해서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는 성숙한 신앙 인격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야1:2,4)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랬습니다. 우리의 모진 인격을 하나님께서 바로 잡아주시고 더러운 인격을 깨끗하게 하시고 교만한 인격을 낮춰서 겸손하게 하시고 욕심에 얽매인 우리들로 하여금 정결하게 살게 하시고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기 잘하는 우리들로 하여금 용서와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징계는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하는 것입니다.

5)고난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이루는 도구입니다.
맹인에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가서 저 실로암 못에서 씻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은 맹인을 보면서 어떻게 보는가 하면 죄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누구의 죄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① 절망의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도구로 쓰여졌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때 당시에 유대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고로 이 맹인을 눈뜨게 함으로 인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란 사실을,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② 절망과 최악의 조건은 하나님의 기적과 최선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눈을 뜬 다음에 이 맹인은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고 또 예수그리스도를 담대히 증거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했다는 소리를 듣고 그만 불안해졌습니다. 예수가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을 가리우리 위해서 \"정말 예수가 네 눈을 뜨게 했느냐?\"라고 계속 묻습니다. 만약에 잘못 대답하면 출교를 당하는 그런 위험이 있습니다. 먼저 부모에게 \"네 아들이 예수라는 사람을 통해서 눈을 떴느냐?\" 라고 묻습니다. 출교를 당하면 그 사회에서 완전히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위험을 느끼고 \"내 아들이 장성하였으니 아들에게 물어보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위험이 앞에 있었지만 이 맹인 되었던 분은 \"예수님께서 내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라고 담대하게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드릴 뿐 아니라 예수까지 영접하게 되고 예수님을 생명을 걸고 전달할 수 있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는 것, 이 얼마나 중대한 일입니까.

② 고난은 사랑 실천의 기회입니다.
베토벤이 귀가 먹었습니다. 음악가로서 귀를 먹었으면 절망 아닙니까? 끝장 아닙니까? 그런데 그때 \"환희의 찬가\"라고 하는 유명한 곡을 작곡하게 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여러가지 환난, 시련이 우리를 뒤덮고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해도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게 될 때에 그 시련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고난 해결의 길

1)예수님께서 만나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고난 속에서 맹인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습니까. 그리고 예수님 영접하고 생명을 걸고 복음을 증거하는 복음의 증인, 참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까. 무엇보다도 우리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맹인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참 감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찾아 믿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 완전히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다른 종교는 자기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고행하고 수고해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형편을 보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시간도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2)순종하는 사람이 쓰임 받습니다.
이 맹인을 보면 철저한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자, 예수님께서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 진흙에 이겨서 그 진흙을 이 맹인의 눈에 발랐습니다. 그리고 저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아니, 눈을 감았는데 눈도 보지 못하는데 거기다가 진흙까지 발라놓으면 어쩌자는 말입니까.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 보면 그냥 기도해서 고쳐주고 잠깐 만져서 고쳐주는데 내가 맹인이라고 사람을 무시하나 그래 침을 이겨서 눈에 발라줘?\' 이렇게 생각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분은 조금도 불평,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순종의 특징

1)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해야 합니다.
불평과 원망이 없어야 참 순종입니다. 원망하면서 순종하는 것 참 순종이 아닙니다. 왜 오늘 우리에게 불평이 많아집니까? 순종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도전하는 행동입니다. 참 순종은 어떤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2)굴욕을 감수하는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여러분, 때로는 이 맹인의 굴욕감을 느끼고 무시를 당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그럴 수가 있습니다. 이 분이 가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바보같은 일을 하네.\' 아니, 눈 감았는데 그것도 부족해서 거기다가 흙까지 발라놓고 씻으라니 예수님 계신 그 부근에도 물이 있었을 것 아닙니까. 그 물 좀 가져오라고 해서 씨으면 되는데 왜 이렇게 먼 곳까지 가라고 하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맹인은 아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순종했습니다.

3)위험을 각오한 순종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이 실로암 연못이라고 하는 것은 저 성 밖에서 물을 보냅니다. 그래서 성 안으로 보내서 그 실로암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그 실로암 연못 옆에는 큰 언덕과 같은 바위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전부 33계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실로암 연못에 내려가려면 33계단을 내려가야 합니다. 눈을 밝게 뜬 사람들도 계단 잘못 내려가면 어떻게 됩니까? 넘어지면 큰일납니다. 눈을 감은 사람이 33계단을 내려가려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희생이 뒤따라야 되고 순종이라는 것은 모험이 따라야 되고 순종은 죽을 각오를 하고 해야 됩니다.

4)즉각적인 순종입니다.
이 맹인의 순종은 즉각적인 순종이었습니다. \"예수님, 나 궁금한 것이 있는데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그래, 무엇이냐?\" \"그런데 그냥도 다 고쳐주시던데 나는 왜 이렇게 흙을 가져다가 바릅니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보니 그냥 고쳐주시던데 날 때부터 맹인이니까 보지도 못했지만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마디 말 묻지 않습니다. 그저 이해가 가지 않아도 왜 연기는 물이 많은데 저 실로암까지 가라고 하는지 잉해가 안갔습니다. 그래도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낙심하지 아니하고 절망가운데에서라도 주님 바라보고 순종하고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