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 (빌1:20-24)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세 번째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고기를 친히 먹이시고 또 예수님도 잡수시고 ?후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베드로야, 네가 이 사람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 내가 주님을 사랑함을 주께서 아십니다.\" 이렇게 세 번씩이나 베드로에게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고백하게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바로 주님께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사명을 받은 후에 복음을 전하다가 \"내가 예수님과 똑같이 십자가에 못박힐 순 없다\"며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장렬한 순교를 했다고 하는 전설이 있습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저주하면서 부인했지마는 우리 주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지도 아니하시고 꾸짖지도 아니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 오셔서 오히려 부드러운 음성으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배반하지마는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높이 달려 피와 땀과 진핵을 다 쏟아 생명보로 죽어주셨고 우리를 먼저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주님을 사랑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했던 한 사람, 사도바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도바울은 어느정도 예수님을 사랑했는가 오늘 우리가 사도바울을 통해 배워야 하고 재정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했습니까?

1.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20절)
무슨 말인가 하면 사도바울에게 이 세상은 행복하다 불행하다 성공한다 실패한다 잘 된다 못 된다 그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직 그 사도바울 속에 계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고 예수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것, 그것이 사도바울의 초점이었습니다. 그가 죽거나 살거나 그것은 관계 없었습니다.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아 오직 내 속에 계신 예수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면서 살고 높이면서 살고 존경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사도바울의 예수님 사랑이었습니다.
여러분, 여기 \'존귀한다\'는 것은 헬라원어의 뜻으로 \'내 속에서 더욱 커진다\'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주님이 내 속에서 커져서 나를 지배하게 되고 나를 통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들이여! 정말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정말 예수님이 그토록 좋습니까? 정말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의 생명이요, 모든 것이요, 전부입니까?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하여도 예수 떠난 신명은 사는 법이 없다고 그랬습니다. 원체를 떠난 나뭇가지가 혹시 산다 하여도 예수 떠난 신명은 사는 법이 없다 그랬습니다. 이런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와 죽는 것도 유익함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21절)
내가 산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예수님이 내게 가득 찼다는 말입니다. 예수가 나의 전부라는 말입니다. 예수가 내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예수 없이는 잠시도 존재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숨을 쉬고 예수님 때문에 길을 걷고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사업을 하고 예수님 때문에 운전을 하고 우리의 모든 일생을 예수님 때문에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그토록 사랑했기에(롬14:7-8) 고백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그랬습니다. 사도바울은 주님을 그토록 사랑했기에 그의 삶에 목표가 뚜렷했습니다. 예수를 위해 사는 것이었습니다. 사는 것만 아니라 죽는 것도 예수를 위하는 것이었습니다.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1) 말씀 순종함에 있어 방해요소 없이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 죽기 싫어합니다. 죽는 것은 이별이요, 슬픔이요, 아픔, 고통입니다.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왜 유익한가 하면 우리가 주님을 천국 가서 마음껏 아무 장애물이 없이 섬길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주님 기쁘시게 하고 주님 위해서 살려면 얼마나 힘든 일이 많고 고통이 많습니까? 그러나 천국 가면 마음껏 아무 장애물이 없이 주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고 기쁘시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2) 그리스도께 가까이 가는 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죽지 아니하고 주님께 갈 길이 없습니다. 누구나 우리가 죽음으로 인해서 주님께 들어가는 입문이기 때문에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3) 죽은 후에 상급이 있습니다.
그래서 (딤후4:7-8) 보면 사도바울이 인생의 종착역에 이르러 지난 날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죽음을 앞에 놓고 뭐라고 말합니까?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랬습니다. 사도바울은 죽음을 앞에 놓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 앞에서 상 받을 것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 땅 위에 살아가는 동안 힘들고 어렵고 괴로워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혹시 죽는다 하더라도 절망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왜요? 우리는 주님 앞에 설 때에 상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결코 두려워 할 일이 아닙니다.

4) 죽음은 황금보석으로 단장한 찬란한 천국에 들어가는 입문이 됩니다.
죽음은 영원한 황금보석으로 꾸민 찬란한 영생의 기록이 우리의 것이 되기 때문에 유익합니다. 사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만약에 여러분이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산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어떨 것 같습니까?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요? 살면 살수록 고난이 많은데 그것을 영원히 어떻게 삽니까? 어떻게 힘들어 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시고 고난도 눈물도 질병도 환난도 없는 영원한 천국을 우리에게 준비해 놓았습니다. (요14:1-3) 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그런고로 죽음은 유익합니다.

5) 먼저 간 사랑하는 가족들과 형제들, 친구들, 이웃들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대부분 다 천국에 가 계실 분들이 많은 것입니다. 때로는 배우자, 때로는 사랑하는 자녀들, 정말 헤어질 수 없는 관계에서 이 세상을 떠나갈 때에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 아픕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다시 만날 날이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만나서 부둥켜 안고 하나님을 찬양할 때가 있습니다.

6) 살아서 유익한 경우도 있고 죽어서 유익한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 삼손 같은 경우에 태어나면서부터 나실인으로 특별히 하나님의 사자의 지시를 받아 태어나서 경건하게 자랐지만 그는 나중에 드릴라의 무릎을 베다가 그만 블레셋 사람에게 붙잡혀서 눈이 뽑히우고 맷돌을 가는 비참한 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습니다. 죽어서 살았을 때보다 더 많은 원수를 죽일 수가 있습니다.


3. 사도바울은 육신으로 사는 것보다 내세에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이 더 많았습니다.(23절)
사도바울은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너희들과 예수그리스도의 사이에 끼어있어. 내 마음은 당장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가서 살기를 원해. 그러나 너희를 위해서 내가 여기 더 머문다.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서 내가 이 세상에 더 머물겠다.\"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는 것이고 죽어도 주를 위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사랑한 삶의 결과는?   

1)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생활을 했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도바울은 본문 20절을 보니 기대와 소망을 가졌다고 그랬습니다. 오늘 이 세상 어디에도 우리의 참 기대와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데서부터 수생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할수록 그 심령에 희망이 솟아오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멀어지고 세상 것을 사랑하고 예수님 멀리 할수록 그 마음에 절망이 사로잡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2)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담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20절에 계속 말하기를 예수님을 사랑할수록 어떻게 해야됩니까? 마음 속에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함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사랑할수록 강하고 담대한 신앙의 장부가 되고 예수님의 사랑이 멀어지게 될 때에 그 마음에 불안과 고통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님 사랑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할수록 우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되고 소망이 솟아오르게 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고 이 세상의 고통이 그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3) 성도들에게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준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던 사도바울, 빌립보 교인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더해줬다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진정 예수님만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것을 사랑하던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서 우리 위하여 십자가에 높이 달려 피와 땀과 진핵 다 쏟아 생명보로 죽어주신 예수님만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바울같이 값지고 보람된 삶, 살아도 주를 위한 삶, 죽어도 주를 위한 삶,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시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