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1장22절 이제라도
(요 11: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적극적인 사고방식(Positive thinking)을 제창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목사가 되기 전에는 다른 꿈이 있었습니다. 신문기자가 되는 꿈이었습니다. 그는 젊어서부터 무엇이든지 \"내가 하면 된다!\"라는 확신과 신념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대학에 다니면서 학점 관리를 잘 했습니다. 또 사회봉사활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원하는 신문사는 어디라도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신문사에 시험을 치르고 면접도 보았습니다. 이제 합격통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고 있던 우편물이 도착했습니다. 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우편물을 열었습니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당신은 신문기자가 될 자질이 없는 사람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문사에서는 당신을 채용할 수 없음을 밝혀 드립니다.\" 그는 이제까지 무엇이든지 \"하면 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 신념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는 그 뒤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 가운데 자기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빌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말씀입니다. 필은 지금까지 뒷부분 말씀에만 집중을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자기가 노력하고 애쓰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전반부를 빼먹은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아무리 애쓰고 노력한다고 해서 그것이 되겠습니까? 그는 뉘우쳤습니다. 자기의 생각과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을 받기 위해 주의 종이 되기로 결심하고 신학교로 들어갔습니다. 그의 진로를 바꾸게 된 것입니다.
인생은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고생도 하나 더 좋은 것으로 해결함 받는 역사도 임하게 됩니다.
개인적인 문제 속에서 체험합니다. \"지선아 사랑해\"는 책에 나오는 자매는 처참한 교통사고로 고운 미모와 희망의 미래를 잃어버렸다 합니다. 그러나 자매는 \"정말 내게 기적이 없었는가?\"고 자신에게 반문하며 이렇게 스스로 대답한다 합니다. \"기적처럼 하나님은 제 눈을 지켜 주셨고 캄캄한 절망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내 얼굴에 새 피부를 덮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더 큰 기적은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조차도 이해되지 않을 정도의 평안함이 늘 있습니다. 소망가운데 감사하는 가운데 임했던 평안, 몸의 편안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것, 전쟁터 속에 있어도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과 거기서 오는 영혼의 평안함. 예전 얼굴을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라 말과, 여덟 손가락을 절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제가 요동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평안 때문이었습니다. 왼손보다 오른손이 더 짧고 잘 움직여지지 않는데 왜 오른손을 더 지켜 주시지 않았냐고 울며불며 원망하는게 아니라, 왼손이라도 오른손처럼 잘 쓸 수 있으니 감사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손가락을 절단하러 들어가는 그 수술실 앞에서는 더 많이 자르지 않아서 감사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술을 마시고 운전해 우리 차를 들이박은 그분께 조금도 미운 마음이나 분노가 생기지 않도록 제 마음을 지켜 주셨습니다. 정말 힘든 가운데도 어제는 숟가락을 혼자 잡을 수 있어서, 오늘은 또 문고리 잡고 열 수 있어서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는 마음, 그래서 매일 매일이 너무 행복한 마음이 제게 일어난 가장 큰 기적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제 힘으로나 제 의지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에 저는 감히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자매는 이렇게 고백한다합니다. \"고난은 축복입니다. 힘겹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이기고 나면 주어지는 보물이 있습니다. 고난을 통하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는, 가질 수 없는 열매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저는 이제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 제게 물었습니다. 예전의 모습으로, 사고 나기 전 그 자리로 되돌려 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바보 같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제 대답은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제 안에 담겨 있는 고난이 가져다 준 축복의 보물들은 정말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몰랐던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었고 사랑을 맛보았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 안에 있습니다. 저는 기대합니다. 지금은 상상치도 못할 일들이 앞으로도 펼쳐질 것입니다. 크고 작은 기적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의 이 모습이 아니고는 전할 수 없는 메시지들을 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이 아니고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며, 이런 모습의 저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분명 제게 맡겨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 살아 계십니다. 지금 저는 행복합니다.\"
가정적으로 잇을 수 있습니다. 중세 때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유럽의 어느 마을에 로잘린이라는 젊은 귀족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방 사람들에 의해서 성지 예루살렘이 빼앗겼다는 사실을 마음 아프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도 십자군 전쟁에 출전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있어서 로잘린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로잘린의 부인은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는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 틈을 타서 하인이 못된 마음을 먹었습니다. 재산을 모두 빼앗고는 로잘린 부인을 그 마을에서 쫓아내 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로잘린 부인은 자기의 시녀를 데리고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이곳저곳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한 작은 마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친절했습니다. 그들은 로잘린 부인과 그의 시녀가 그들의 마을에 기거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 때 로잘린 부인에게는 닭이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동양의 새인 닭은 유럽에서는 아주 귀할 때였습니다. 로잘린 부인은 닭을 정성껏 키웠습니다. 매일매일 낳는 달걀을 먹지 않고 모아두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부활절이 되었습니다. 로잘린 부인은 마을 사람들이 자기에게 베풀어준 사랑과 친절에 작은 것이지만 보답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모아놓은 달걀을 삶았습니다. 그리고는 달걀을 예쁘게 색칠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로잘린 가문의 오래된 가훈을 적어 넣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을 믿자!\" 로잘린 부인은 동네 어린 아이들을 모아서 예쁘게 색칠한 달걀을 하나씩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그 날 오후였습니다. 한 초췌한 모습의 소년이 그 마을에 나타났습니다. 어머니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고향집으로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로잘린 부인은 그 아이의 손에도 삶은 달걀을 쥐어주면서 병든 어머니에게 갖다 주라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삶은 달걀을 가지고 병든 어머니를 찾아가던 도중이었습니다. 그는 기진맥진해서 허기진 모습으로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십자군 병사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병든 어머니에게 주려고 가지고 가던 달걀을 십자군 병사에게 주었습니다. 허기진 병사는 고맙게 그것을 받아 쥐고서 먹으려고 껍질을 까는데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거기에는 자기 집 가훈이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을 믿자!\" 그는 바로 젊은 귀족 로잘린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와서 보니까 아내는 어디론가 떠나간 뒤였습니다. 그는 아내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기진맥진해서 길거리에 쓰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달걀이 계기가 되어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부활절 계란의 유래이기도 합니다.
질병 속에도 나타납니다. 밴쿠버에 테리 팍스 산에 이름이 붙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합니다. 테리는 21살에 다리에 암이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골육종이라는 병입니다. 할 수 없이 오른 다리를 잘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암 세포가 남아 있어서 온 몸에 서서히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죽음의 문턱으로 서서히 다가가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테리는 병석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얼마 안 있으면 죽는다. 그러나 암은 아직 극복되지 못 하였다. 암을 극복하려면 연구비가 엄청나게 들 것이다. 암 정복을 위하여 돈을 모금하자. 그리고 죽자. 나같이 암으로 죽는 이가 없도록 하자\" 테리의 생각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그는 <희망의 마라톤>을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카나다 대륙 5,375 km를 혼자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달릴 수 없을 때까지 달린다. 생명이 꺼져 갈 때까지 달리는 것이다\" 테리는 달리면서 만나는 이에게마다 1불씩 기부하여 달라고 말했습니다. 암극복 연구비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 사실이 온 카나다에 퍼져 나갔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돈을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두가 박수갈채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이마다 돈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그가 모은 돈이 모두 24,000,000 불이었습니다. 그 이 돈을 모두 암 연구에 써달라고 기부하고 죽었습니다. 1981년 6월 22일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래서 3,954 m인 이 산을 그를 기념하여 테리산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그 후 카나다에서는 해마다 9월이면 <테리 팍스 달리기> 대회를 한다합니다. 멋진 생각에 멋진 결과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갔지만 그의 마지막 생각은 온 인류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죽음을 통해서도 역사합니다 어느 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보, 영감.\" \"왜 그래?\" \"하나님께서 우리 이름을 하나님의 명부에서 빠뜨리셨나 봐요. 그래서 우리를 모르시나 봐요.\" \"쉿! 하나님께서 들으실라.\" 할아버지 부부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데리고 갈까 봐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조용히 하라고 한 것입니다.
죽음은 어려서 당하기도 합니다.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경우입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청년의 때 죽음을 당하여 상여에 메여 장지로 가다가 주님을 만나 살아 났습니다 베다니의 나사로도 죽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지명들은 제각기 고유한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 베들레헴은 「떡 집」,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등 복되고 밝은 뜻의 이름들입니다. 그러나 이곳 베다니는 「괴로움의 집」이라는 의미로 매우 어둡고 불행한 고장의 이름입니다. 베다니의 나사로는 마리아, 마르다 자매와 함께 사는 것으로 부모의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일찍 부모를 잃은 소년 소녀 가장이었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호주격인 나사로가 병들었고 결국 죽어 장사지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집 베다니의 실상이요 이세상의 모습입니다. 질병은 정상적인 생리활동에 이상이 생겨 그 기능이 작용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육체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과 영적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정신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의 경우 하나님과 비정상적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증후군을 뜻합니다. 심리적인 불안이나 공포, 염려와 근심, 자괴감, 수치심, 죄책감과 같은 것들로써 과학적으로나 물리적인 처방만으로 치유되기 어려운 질병입니다. 질병으로 앓다가 마침내 나사로는 죽어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병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장사하게 되고 그 후에 시체는 썩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는 질병과 재난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불행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엿새 전에 나사로의 집에 가셨을 때 마르다는 많은 음식을 장만하고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가룟 유다는 삼백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비싼 향유를 허비한다고 책망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사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직분자의 가정이나 믿음이 대단히 좋은 사람은 환난과 시험, 고난과 고통, 예기치 않는 재앙, 이해할 수 없는 병마 등이 흔히들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을 하며 만일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을 잘못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단정을 지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도 나의 친구 나사로하로 하신 사랑하는 나사로의 가정에서 질병과 죽음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젊은 사람이 꿈도 활짝 피워 보지 못하고 죽었다는 그 자체가 슬픔이요 대단히 안타까운 일인데 이러한 슬픔이 예수님을 잘 믿는 나사로의 가정에서 일어났습니다. 질병과 죽음이 지나간 다음 깊은 절망과 눈물이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합니다. 주님이 떠나지 않고 여기 계셨더라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난날을 돌이켜 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고 말씀하시니까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라고 합니다. 내일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마르다는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23)라고 합니다. 현재적인 믿음입니다. 지난 날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믿음과 함께 현재에 대한 믿음도 가져야 합니다. 결국 주님께서 역사하시니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나고 그들의 문제가 해결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문제 가정적인 문제 질병의 문제 죽음의 문제가 많은 세상입니다.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때 해결해 주시는 역사가 함께 할 줄 믿습니다. 국가적으로 소고기 문제 무역협정 문제 기름 값 폭등으로 인한 파업 문제 경제 문제 등 여러 어려운 문제에 온 나라가 시끄럽기도 합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기도 하며 이제라도 주께서 역사하시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이제라도 주님께서 역사하시면 모자람이 있는 곳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되는 역사가 입합니다. 굶주림이 있는 곳에 벳새다 들녘의 오병이어의 기적이 임하게 됩니다. 밤새도록 수고 하고 실패한 자리에서 만선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힘겹게 노를 저으며 애쓰도록 풍랑이는 바다가 잔잔해 집니다. 사면 초가의 위기 상황에서 홍해 바다가 길을 내게 됩니다. 굳게 닫힌 여리고 성은 무너져 내립니다. 흘러 내리는 요단 강도 멈추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직장과 사업, 국가적인 교회적인 여러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이제라도 신앙으로 간구하며 도움을 구할 때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은총이 함께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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