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비워야 합니다

자기를 비워



빌2장5절로8절 자기를 비워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종려주일 혹은 수난 주일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맞게 하셨습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은 겸손하고 순종의 도리를 귀중하게 여겼기에 그 참혹한 죽음의 고통을 끝내 견디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체를 가지신 분이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자기를 비우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도 과연 수난의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내 자신을 비울 수 있는 것인지, 종려 주일 수난 주일에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심각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우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심에 대하여 말씀 하십니다
비움(케노시스)은 통이 완전히 빌 때까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다 쏟아내는 행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와 종의 형체를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보여 주시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자신이 가지신 모든 것들을 노출시켜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비우심을 말씀 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6절)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시기 이전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본체를 가리키는 헬라어로는‘모르페’(μορφη)와‘스케마’(σχημα)라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모르페’는 어떤 사물의 본질적인 것이나 결코 변하지 않는 형상을 뜻하고, ‘스케마’는 시간이 경과하거나 환경이 바뀜에 따라 변화하는 형상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의 본체는 바로‘모르페’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람들과 같이 되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그것은‘스케마’에 해당됩니다. 모든 인간을 구원하고자 자신을 낮추어 인간과 같이 되신 것이 다. 영광을 포기함으로써 가능한 신비였습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심을 말씀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나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는 인간으로 오시기 위해 자신의 영광을 포기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도 이미 그의 영광은 하나님과 동등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과 동등하시나 타락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동등됨을 포기하시고 종의 형체를 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이 되심을 말씀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종의 외적인 모습을 취하셨거나 종으로 가장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종의 본질적인 속성을 취하셔서 종이 되셨습니다(Hawthorne).
\'종\'은 그리스도이신 \'주\'와 대조적인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나타냅니다(Renqstorf, Hawthorne).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하여 자신의 권리나 특권을 포기하여 죄 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음을 시사합니다(막10:45;눅 22:27).
사람들과 같이의 같이(호모이오마티)는 \'유사함\'(similarity)이나 \'동일함\'(identity)을 강조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죄의 본성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다른 모든 인간들과 같이 되셨음을 시사합니다(Kent, Lincoln). 그리스도는 참인간이십니다.
본래 하나님과 동등되심에도 불구하고 동등됨을 포기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히 5:8).
낮아지시고 겸손 하신 주님은 나귀를 ‘타시고 입성 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자기를 비우신 그리스도를 말씀 하심은 그리스도를 본 받아 살라고 말씀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겸손의 마음으로 남을 돌아보라고 하십니다. 나만이 아니라 상대방도 역시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의 인격이며 귀중한 존재이고 나와 은혜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 내 곁에 두신 사람입니다. 그래서 겸손은 그리스도인 최고의 미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의 본보기가 되셔서 우리에게 오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분은 본체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철저히 인간을 위해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합니다. 진정 마음을 비웠으면 종이 되고, 자기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수난의 의미를 마음에 품으려면 우리 주님처럼 먼저 자신의 마음 모두를 쏟아 놓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언젠가 밖에 나가 일하던 중에 무슨 자료가 필요하여 전화로 아내에게 가방을 열어 보라고 했더니 가방에 무엇들이 가득 차서 쉽게 찾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집에 돌아와 마음을 정리하기 전에 가방부터 비웠다고 합니다. 갖가지 것 들이 다 나왔다고 합니다. 무엇이든 쉽게 버리지 못해 가방이나 서랍에 그대로 담아 두는 경우가 많았다합니다. 들춰 보니 오래 전에 떠난 교우가 보내준 서신, 작년에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 여러 종류의 공문서, 그리고 언젠가 교우들과 함께 탔던 관광버스 기사 명함까지 거기 있었다합니다. 쏟아 놓으니 참 시원했다합니다.
인터넷도 불 필요한 파일들을 정리해 주어야 속도가 제대로 나옵니다.
자동차도 비워 무게를 줄여야 기름이 적게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처럼 겸손한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십니다(5절).
겸손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겸손에 이르기를 끝까지 권면하는 바울의 서신입니다. 겸손의 도리를 말하는 자리에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근본적 겸손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수난 중심의 그리스도론이 전개되었습니다. 주님은 본래 하나님이시지만 종의 형체를 입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복종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셨다는 내용입니다.
자기를 비우는 일을 실천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겸손한 마음을 품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어야 자기를 비울 수 있고, 자기를 보여 준 후에는 다시 겸손한 마음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보여 주고 난 후에 할 수 있는 것은 겸손뿐입니다. 그러므로 겸손은 자기를 비우는 일의 시작이요, 마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성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후세에 남겼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선생님, 신앙 생활에 있어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마치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물었던 것과 흡사한 질문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그것은 겸손입니다. 사람들은 이어서 두 번째를 물었습니다. 그것도 겸손입니다. 혹시나 하고 무리들이 세 번째를 묻자 어거스틴은 담담하게 그 또한 겸손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에 유명한 씨어즈(Sears) 라는 회사가 있다합니다. 이 회사가 왜 그렇게 잘되는지 살펴보았더니.... 그 회사의 경영 방침은 다른 회사에는 없는 독특한 방침이 있었다합니다. 그것은 손님이 물건을 사서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바꿔 준다는 것입니다. 왜 바꿔 달라는지 물어 보지도 않고.... 아무 소리도 안 하고 바꿔 주고... 싫다면 돈으로 돌려주는 것이... 그 회사의 경영 방침이었습니다. 물론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가 되지요....처음에는 장사가 안 되는 것 같아도 지난 100년 동안 그렇게 했기 때문에 오히려 성공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남을 섬기는 태도입니다. 이 회사의 경영 방침은... 언제나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오픈 플랜\'으로 고객만족 경영을 이루어서.... 세계의 수많은 회사들이 씨어즈의 성공사례를 배워서 자기 회사 경영에 적용한다 합니다.
시은소교회 김성길 목사님과 청평댐에 낚시 하러 갔다가 좋은 말씀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실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낚시 하러 온 사람들 중에는 돈 많은 부자도 오고 영관이나 장군 같은 계급 높은 사람도 오고 큰 회사 사장이나 회장들도 오기 때문에 허름한 옷차림에 벙거지 같은 모자를 쓴 사람이라도 우습게보면 안 되고, 돈이 있어도 있는 체 말고, 계급이 높아도 높은 체 말고, 공부 많이 하고 학위가 있어도 아는 체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이런 말씀을 했다합니다. 한번은 계급 높은 분이 벙거지를 뒤집어쓰고 낚시를 하는데 그 옆에 별 두 개 단 장군이 벙거지를 쓰고 그 옆에 배를 바짝 갖다 댔습니다. 더 높은 분이 점잖게 좀 떼라고 부탁해도 들은 척도 않고 계속했습니다. 계속 떼라고 하니까 그 장군이 “야, 네가 뭔데 남보고 떼라 말라 해?”하니까 더 높은 그 사람이 참고 있다가 낚시를 마치고 나가서 그 2성 장군한테 뺨을 치면서 “차렷! 쉬어!” 하면서 기압을 주는데 알고 봤더니 그 사단장보다 훨씬 계급이 높은 사람이었더랍니다.
높아도 낮은 자같이 처신하고 있어도 없는 자같이 처신하면 큰 실수를 안 할 텐데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사니까 불행한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처럼 죽기까지 복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8절).
죽음의 길을 흔쾌히 걸어갈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하물며 죄도 없이 가장 처참한 형벌을 받아 죽게 되는 그 길에 이르기까지 복종할 사람은 더욱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종이 되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고 아버지의 뜻에 끝내 복종하셨습니다. 그가 종의 형체를 입으신 까닭이었습니다. 종이라고 하여 주인을 위한 죽음의 길에 들어서지는 않습니다.
사환들에게 순복할 것을 권면한 말씀 속에서는 고난을 받은 그리스도의 자취를 따르도록 이끄십니다
(벧전 2:18-25)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추운 겨울 날 어린 아이가 강물에 빠졌습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와 다리 위에서 구경을 하며 \"저를 어째, 저러다가 죽겠네. 누가 좀 들어가서 구해내세요.\"하며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와할 뿐 아무도 물에 들어가 구해낼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군인아저씨가 다리위에서 용감하게 찬 강물 속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를 붙잡았습니다. 그 순간 모터보트가 나타나 아이와 군인을 배에 태워 아이는 안전하게 구출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몰려가 \'역시 군인은 다르다. 용감하다.\' 하며 박수를 치며 칭찬했습니다. 사람들이 보트에서 내리는 군인에게 다가가 \"이 추운 날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그 군인이 말했습니다. \"다리위를 지나다가 사람이 물에 빠졌다고 하길래 구경을 하는데 갑자기 누가 날 밀어버렸어요.\"
누군가에 의해 갑자기 떠 밀려서도 일해야 하지만 주님은 자신이 자진하여 우리 위하여 희생 하셨으니 주님을 본 받아 죽기까지 복종 해야 합니다.
썬다싱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합니다. \"한 어머니가 두 아들을 길렀다. 큰아들은 잘 자라 판사가 되고, 둘째 아들은 망나니로 자라 사람을 죽이고 살인 죄수가 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재판장 형이 동생을 재판하게 되었습니다. 동생과 어머니의 입가에는 미소가 흘렀습니다. 잘 봐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형은 준엄하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동생은 형 그럴 수 있어? 라고 원망하며 끌려나갔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집에 돌아왔습니다. 애야 동생한테 좀 가벼운 형을 내릴 수 없었니 수심에 찬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살인자는 사형입니다. 이것이 공의입니다.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대답하자 어머니는 얘야 잘했다. 그러면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무엇입니까? 너는 인생을 잘 살아보았다. 그러나 네 동생은 인생을 사람답게 한 번도 살아보지 못했다. 너는 이제 죽어도 된다. 그러나 네 동생은 이제라도 다시 인생을 살아봐야 한다. 내가 대신 사형 당하려무나. 어머니의 심각한 명령에 형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동생대신 죽었습니다.
생명을 살리려면 생명의 대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주님이 겪으신 것입니다. 생명을 바치는 고난은 고난 중에 고난이며, 최고의 고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비운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영광을 받으십니다(11절).
우리들의 생애의 가장 위대한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립보서 2장 3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
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말씀하시면서, 어떤 일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인지를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허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허영(vain glory)\'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것으로, 헛된 영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과시며 자기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는 어떠한 봉사도 헛된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낮아지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끝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벧전5:6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은 13년 동안 고난을 당했지만 애굽의 총리로 높임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목동이었지만 이스라엘의 왕으로 높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우시고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순종하신 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은 모든 피조물들이 무릎을 꿇어야 할 영광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예수님이 자신을 높여서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높여 주셨다. 이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자기를 비우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주일 저녁예배를 다녀온 남편은 집에 오자마자 아내에게 평상시와는 다르게 잘해줬습니다. 너무 친절하고 사랑해주고 아껴주고..아내는 목사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과일바구니를 들고 다음날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주일 저녁예배말씀이 굉장히 좋았나 봐요? 설교말씀은 아내를 사랑하라였죠! 목사님 아닌데요.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요.
아내를 사랑하니 과일 바구니가 갔습니다만 사람들을 사랑하면 하나님께 여욍이 됩니다.
나를 비우는 행위는 내 자신의 작은 개인적 행위에 불과한 것 같지만, 이 일이 세상을 바꾸고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 뜻에 따라 살아가는 인생들이기 때문입니다.
겸손이 바보처럼 여겨지고, 나를 비우는 것이 실패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겸손히 자기를 비우셨고,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비움을 통해 영광 받으실 아버지 앞에 고난 받으신 주님 따라 이 빈 마음을 조용히 바치는 모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