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스런 시온의 그리스도인 (계14:1-15)

 이 세상은 어디가나 다 그것이 좋아 보이고 희망이 있어 보여도 정작 그것을 가까이 가보고 소유하면 그것은 슬픔이요 눈물이요 절망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세상에서 소망이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말하기를 산 소망이라 살아있는 소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산 소망이라는 말은 죽은 소망과 반대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 모든 소망은 다 죽은 것이라면 우리 하나님을 향한 소망, 천국을 향한 소망은 살아있는 소망, 산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가운데 계신 여러분들은 모두 산 소망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면 이제 사도요한이 저 외딴 밧모라는 섬에서 계시를 받으면서 하늘나라를 바라보니 거기에 어린 양 예수님이 계시고 그 옆에 십사만 사천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주 웅장하고 장대한 모습을 바라보게 되어집이다. 오늘 우리들이 이 땅 위에 살고 이 땅의 모습이 비록 힘이 들고 괴로워도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왜요? 잠시 잠깐 이 세상의 삶이 끝나면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 소망, 이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날마다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 누가 서 계셨는가 하니 어린 양이 서 계셨다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바로 그런 어린 양으로 저 시온산에서 계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시온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현대 지역적으로 말한다면 저 예루살렘 동편에 기드론 시내와 또 다른 골짜기, 그 중간에 절벽으로 된 산등성이가 있습니다. 그 산등성이 위에 역사적으로 다윗이 왕궁을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솔로몬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주위의 성을 빙 둘러쌌고 그곳을 첼쩜繭? 혹은 시온성이라 그렇게 표현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기 시온성이라는 말은 천국에 있는 예루살렘을 가르킵니다. 우리가 영원히 가서 거할 그 곳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시온산에 서신 이유?

1.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양으로서 시온산에 서 계셨다는 것은 우리 주님은 이제 만국을 통치하는 통치자로서, 또 만국을 지배하는 정복자로서, 온 인류들에게 존경과 영감과 경배를 받으시는 분으로 서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2.권세자로 서셨습니다.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 목사님은 재미잇게 표현을 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다른 여러가지 모습으로 설 수도 있었는데 하필 어린 양의 모습으로 서 계셨습니까? 그러면서 재미있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어떤 장군이 전쟁에 승리한 기념식을 거행할 때마다 좋은 옷들을 입지 아니하고 전쟁때 입었던 낡은 옷, 칼자국도 있고 총자국도 있는 그런 옷을 입고 승리해 기념식을 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옛날에 전쟁에 승리했던 그 모습을 떠올리고 그때 기억을 되살리고 그때 감격을 다시 맛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면서 스펄전 목사님은 그 예를 들면서 뭐라고 말했는가 하면 우리 주님이 우리를 구속하실 때에 어린 양 희생재물이 되셔서 구속하셨기 때문에 그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십사만 사천이 있었습니다.(1절)

어린 양 옆에 누가 있었는가 하니 십사만 사천이 있었다 그랬습니다. 십사만 사천에 대해서 성경 주석가들은 공통적으로 모든 구원받은 성도를 총칭한다 그렇게 말합니다. 거기에 일정한 숫자 십사만 사천이 있다고 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일정한 숫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고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원토록 살게 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은 어린 양의 보혈로 죄 씻음 받으시고 이제 의인이 되셔서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토록 주님과 더불어 찬양할 날이 있을 줄 믿습니다.


십사만 사천의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님 곁에 선 십사만 사천은 이마에 표시를 했는데 오늘 본문을 보니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기록했습니다. 그 아버지 이름도 기록했다 그랬습니다.(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름이 써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1.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별했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 죄악된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여러분들을 특별히 거룩하게 뽑아서 거룩한 무리로 말 그대로 성도로 삼으셨다는 말입니다. 성도의 삶은 거룩한 삶이고 거룩할 때에 능력이 나타나게 되고 거룩할 때에 사탄을 물리칠 수가 있고 경건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거룩할 때에 사랑의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2.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 아버지의 이름을 기록하고 성령으로 인 쳤다는 말은 성부 성자 성령의 인을 쳤다는 말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소유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거저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억 주고 십억 백억 준 것 아니라 이 세상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지고 값진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여러분을 사셔서 하나님의 소유로 삼았습니다.

3.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의 절대보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해 주었으면 어느 정도 기간이 있다가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안심하십시오. 영원입니다. 또 기분 좋으면 순종 잘하고 말 잘 들으면 구원해주고 또 말 안 듣고 속썩이면 구원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구원의 절대성, 구원의 완전성이라고 말합니다.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 다음 (38-39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2) 새 노래로 그리스도를 찬송합니다.(3절)
본문을 보면 이마에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기록하고 그 아버지의 이름을 기록하고 성령께 인친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는가 오늘 본문을 보니 새 노래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새 노래는 어떤 노랜가 하니 맑은 물소리도 같고 우렛소리와도 같고 또 한편은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 타는 소리와도 같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웅장하고 장대하고 그러면서 거문고 소리처럼 부드러운 소리가 융화된 아름다운 색상을 가진 찬양이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 땅 위에 사는 동안 불신자와 다른 우리는 찬송을 불러 영광을 돌립니다. 또한 염려와 불안과 절망과 좌절감들이 찬송을 부를 때에 쫓겨나가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찬송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찬송을 많이 불러야 합니다.

3) 정절이 있는 순결한 사람입니다.(4절)
천국에서 하나님을 찬양한 분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오늘 본문을 보니 여자와 더렵혀지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사람,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자와 더렵혀지지 않았다, 즉 여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 죄 된 것들, 또 우상과 우상숭배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과 더불어 가까이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음란한 간음하는 여인이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일제가 우리나라를 점령했을 때에 신사참배를 내걸고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이방 우상의 신사챔배를 하게 했습니다. 그때에 목사님들과 뜻있는 교우들이 감옥에 갇히고 매를 두들겨 맞고 심한 환난, 핍박을 당하면서 나중에는 순교한 분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나라가 오늘 세계적으로 기독교가 이렇게 발전하고 부흥하는 원인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수많은 순교자들 중에서 우리가 잘 아는 주기철 목사님 1939년 2우러 5일 9개월 동안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석방된 후에 평양 산성현교회에서 5가지 기도라는 제목을 설교를 했습니다.

1.사망권세를 이기게 하옵소서.
왜요?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2.오랜 동안의 고난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나는 고난을 감당할 수 없는 연약한 것 전부 주님이 아시지 않습니까.

3.사랑하는 내 어머니, 내 처자, 그리고 교우들을 지켜주옵소서.
이 곳 저 곳으로 끌려다니면서 어머니를 돌보지 못합니다. 어머니를 하나님께 부탁합니다. 병약한 내 아내, 하나님께 부탁합니다. 아직까지 어린 내 자식들, 이제 죽음을 향해 가면서 내 마음이 심히 괴롭습니다. 비참합니다. 이 가정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부탁합니다.

4.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신부된 주님께 대한 정절을 지켜야 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정절을 지키지 않는다면 말이 됩니까? 나는 죽고 또 죽고 열 백번 죽었다 살아도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5.내 영혼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내가 어느 날 십자가를 붙들고 십자가 앞에서 죽든지 아니면 감옥에서 죽든지 아니면 사형장에서 죽든지 어느 장소에서 어느 곳에서 어떻게 죽더라도 하나님 내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합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의 현주소가 어디입니까? 정말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정결을 지킬 수 있는, 그리고 주를 위해서 생명까지 던질 수 있는 그런 신앙의 장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오는 자라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생명을 버린다 그랬습니다. 양을 완전히 책임지는 목자입니다. 여러분의 일생 다 가도록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이 여러분을 인도해주십니다.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야 합니다. 내가 좋은 곳을 가고 잘 가고 좀 마음에 안들면 안 가고 이익이 되면 따라가고 불이익이 되면 안 따라 가고 그것이 아닙니다.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야 됩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님은 결국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주님을 따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1.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주님과 더불어 함께 있는 것이고 주님과 교제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과 더불어 함께 교제하고 따라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많은 환난, 시련에 직면하게 됩니다. 주님 따라가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내 욕심, 내 생각, 내 주장대로 하려니 그것에 많은 고통과 괴로움과 시련이 다가옵니다.

2.주님께 다 맡겨야 됩니다.
주님께 다 맡겨야 됩니다. 따라가는 양은 자기가 자기 스스로 책임지지 않습니다. 자기 먹을 것을 구하는 것 아닙니다. 자기가 옷을 해 입는 것도 아닙니다. 목자만 따라가면 필요한 것이 다 있습니다. 맡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 양 되신 사랑하는 교우들 주님따라 가면서 염려하지 맙시다. 세상이 아무리 답답하고 캄캄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둠이 깔렸더라도 불안해도 우리 염려할 것 없습니다. 왜요? 우리는 주님 따라가고 말씀만 순종하면 우리 주님이 다 맡아주십니다.

3.내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내 욕심, 내 주장, 내 생각, 이것 다 포기해야 맡길 것 아닙니까? 다 포기하십시오. 이제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거기에 빛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새로운 삶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비극과 불행은 내 욕심, 내 생각, 내 주장을 따라갈 때 발생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만 따라가고 순종할 때에 그곳에 놀라운 은혜와 축복과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4.예수님의 인격을 본받는 것입니다.
따라간다는 말은 헬라 원어로 보면 제자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들이여, 험하고 높은 인생길에 지치고 피곤할 때 많아도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저 시온산에 서 계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할 날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내일도 낙심하고 절망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전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