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8:16-20
“가라, 가르치라,
지키게 하라”
♧ 오늘 우리는 “마 28:16-20절” 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가라 가르치라 지키게 하라」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증거 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가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둘째 : 예수님께서 가르치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셋째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도 지키고 다른 사람들도 지키게 하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이요 「대ㆍ위임령」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매우 중요한 동사 셋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go (2)Teach (3)To observe 입니다.
(1)가라 (2)가르치라 (3)지키게 하라 고 하는
매우 중요한 단어 셋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 (1)「가라」고 하는 말씀은 「복음전파」에 대한 명령입니다.
그리고 (2)「가르치라」고 하는 말씀은 “교육” 에 대한 명령입니다.
또 한 가지, (3)「지키게 하라」고 하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명령입니다.
바로 이 세 가지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기 직전에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
교회는 예배드리는 일 외에도 이와 같이 전도, 교육, 봉사 그리고 성도로서의 삶이 있어야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요 4:23-24절>에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에배할지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예배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 만큼 복되고 영광된 일도 없습니다.
「예배」ㆍ다음으로 중요한 것은ㆍ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성도가 성도로서의 삶을 사는 일입니다.
★ 첫째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가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19절>에 “너희는 가서”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전파에 대한 주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예배」 다음으로 힘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는 일」입니다.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가지 대조되는 말씀을 우리에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1)오라! 는 말씀과 (2)가라! 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1:28).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막 2:17ㆍ눅 5:32)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도 나다나엘에게 와보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요 1:46).
<사 1:18절>에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고 말씀합니다.
“너희는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와 같은 부르심에 따라 주님 앞에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주님께서 다시금 우리를 향해서 가라! 고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전도의 사명, 교육의 사명, 먼저 믿는 성도로써 본을 보여야 될 사명을 우리에게 맡겨주시면서 - 가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먼저 큰 기쁨의 좋은 소식 - 화급히 온 세상에 전하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야 합니다.
오기만하고ㆍ가지 않는 교회는 - 주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교회입니다.
일하지 않는 교회요, 주님의 뜻을 외면하는 교회입니다.
사데 교회처럼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입니다(계 3:1).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의례히 (1)혈압 과 (2)맥박 과 (3)체온 과 (4)호흡 상태를 점검받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중환자일 경우에는 한 가지를 더 검사합니다.
「링겔」을 통해 들어간 량과 소변을 통해 배출 된 량이 같은가? 다른가? 에 대해서 한 가지 더 검사를 받게 됩니다.
만일 이 때 링겔을 통해 들어간 량보다 배출된 량이 눈에 띠게 적거나ㆍ많을 때는 의료진이 긴장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inㆍout」의 균형은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적용됩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을 받고 은혜를 받았으면 그것을 다시 전하고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잘 되지 않게 되면 영적생명의 병세가 위독해 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내적충동」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일단 구원받았으니까 「안심」이다.
다른 사람은 구원받든지ㆍ구원 못 받든지 나는 모르겠다 고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나라 6.25 전쟁 때ㆍ미군 해병 5중대에 배속 받아 종군기자로 활동한 「히킨스」라고 하는 「여기자」가 있었습니다.
★ 어느 날 치열한 전투가 전개된 후에 몇 시간을 행군을 하고나서 잠시 휴식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한 병사가 나무에 기대어 앉아서 C레이숀 깡통에서 음식을 꺼내서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여기자가 ㆍ그 군인에게 접근해서 - 그에게 말을 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약 당신에게 어떤 소원이든지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당신은 지금 무엇을 요구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을 때 그가 눈을 감고 직접 하나님께 구하기를 이렇게 구했습니다.
Thank you Lordㆍyou gave me today.
Please just give me tomorrow -.
오늘을 살게 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내일도 허락해 주옵소서. - 하고 기도했습니다.
이 소원을 들은 종군기자 「히킨스」는ㆍ기사의 타이틀을 「나에게 내일도 허락해 주옵소서!」라고 써서 미국에 있는 신문사로 보냈습니다.
「병사」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풍전등화와 같은 격전장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그 「기사」를 쓰고나서ㆍ「히킨스」는 신문기자 최고의 영예인 「퓰리쳐 상」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ㆍ저 죽어가는 자들에게 - .구원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저 수많은 사람들에게 -.
「내일」이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ㆍ가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눅 14:23절>에 “길과 산울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19-20).
이 말씀은 「복음 전도의 대상」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ㆍ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가까운데 있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ㆍ그리고 먼데 있는 사람들ㆍ먼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실로 주님은 어떤 특정한 신분, 제한 된 지역에만 복음을 전하는 편협한 복음 전파를 명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모든 족속’ 곧 모든 지역의 모든 사람들,즉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고 민족의 담장을 허물고 정치와 이념을 초월하며 신분을 불문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이 말씀에 순종해서
전도하는 성도,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둘째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사명 가운데 「복음전파」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교육의 사명」입니다.
전도를 해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에 대해서도 - 교회는 그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를 돌봐야 합니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세례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b)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가 「전도」도 해야 되지만 「전도」받은 사람이 「세례」받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가 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를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 말씀으로 그를 「양육」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대표적인 사역도 보면, 예수님의 대표적 사역 3가지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마 9:35절>에 “예수께서 모든 성과 모든 촌에 두루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 성장」이라고 할 때ㆍ「성장」이라고 하는 말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질적인 성장이고ㆍ그 중에 하나는 양적인 성장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같이 「성장」할 때 균형 있는 「성장」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으로 어린 성도들의 믿음을 「성장」시켜야 합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자라게 해 줘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믿은지 얼마 안되는 어른도 마찬가지고.
청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가 하면, 특별히 자녀들이 어렸을 때에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딤후 3:15-17절> 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15)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성경」은 신앙과 생활의 「유일의 법칙」입니다.
ㆍ성경 말씀으로ㆍ자랄 때ㆍ「온전」하게 자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신 6:5-7절>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7)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집에 있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났을 때에든지 -네 자녀에게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 말씀이 그 유명한 쉐마교육의 핵심입니다.
<신 6:4절>의 들으라(쉐마)에서 시작되는 쉐마교육의 핵심입니다.
오늘날의 유대인들로 유대인이 되게 한 비밀이 바로 이 쉐마교육에 있습니다.
ㆍ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ㆍ자녀가 어릴 때부터 - 부모가 그 자녀에게 성경말씀을 가르치는데 있습니다.
그 옛날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과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그들이 애굽에 살면서도 그 자녀들에게 이 쉐마교육을 시켰습니다.
모세에 대해서는 요게벳이 아예 바로 공주의 집에 유모로 들어가서 이 쉐마교육을 시켰습니다.
베드로도 어렸을 때 그 부모에게 이 쉐마교육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 그 기라성 같은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들 앞에서 얼마나 당당합니까?
대법관, 장관들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너희 말 듣는 것이 옳다고 보느냐? 면서 그들을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행 4:19).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들이 베드로를 학문이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그 말 듣고 아무 말도 못하지 않습니까?
지금도 이스라엘에 가면 집집마다 대문에 성경구절이 들어있는 작은 상자가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은 인성교육과 인격교육에 있어서 공황기를 겪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여전히 공부도 가르치고 성적도 매기고 있습니다.
그런데ㆍ사람이 되라ㆍ바로 살아라ㆍ진실한 사람이 되라 는 말은 제대로 가르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해 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해줘야 합니다.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 셋째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도 지키고 다른 사람도 지키게 하라 고
말씀 하십니다.
<19절>중반절과 <20절>상반절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복음 전파의 목표를 제시해 주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르치고 훈련시켜 그들로 주님을 따르는 자로 만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복음 전파의 목표는 죄로 물든 영혼들, 어둠과 절망 중에 탄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가르치며 주님의 뜻을 좇아 사는 법을 훈련시키는데 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마침내 혼자서도 능히 주님의 가신 길을 뒤좇을 수 있는 성숙한 제자로 양육시키는데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의 선배 되고 아비 된 자에게는 이처럼 한 영혼에 대한 끊임없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고전 4:15).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나를 잘 지키고, 잘 가꿔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나도 성장하고 형제도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엡 4:11-12절>에 “주께서 너희에게 직분을 맡긴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너희는 범사에 그에게까지(그리스도에게까지)자랄지라”(엡 4:1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이 무엇을 지키고 그리고 내 형제에게 무엇을 지키게 해야 합니까?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쏟아지는 질타를 우리가 압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언행이 믿지 않는 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최근 기독교인들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을 조사한 조사보고에 보게 되면,
(1)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보다 더 나은가? 라는 질문에 -
아니다ㆍ그렇지 않다 고 답하고 있습니다.
(2)기독교인이 더 애국적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3)교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 고 보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도 그냥 아닌 정도가 아니라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아니다」였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기존 신자들의 책임이 큽니다.
그렇다고 다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권사님이 늘 바쁘게 사는 이웃의 젊은 애기 엄마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 집 자녀가 유치원에 다녀오면 그 아이 엄마가 올 때까지 이 권사님이 돌봐주었습니다.
그랬는데 이 권사님이 예수 믿으라 는 말도 안했는데
얼마 후에 주일 아침에 그 젊은 사람이 찾아와서 할머니 오늘 저 좀 교회에 데려가 주세요! 하고 말하더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거부가 많은 것을 반드시 비관적 시각으로만 볼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그래도 당신들만은 우리와 다른 데가 있어야 한다는 기대와 요망사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저와 여러분이 잘하면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새로워지면 됩니다.
독수리 이야기 한 가지 해 드리겠습니다.
독수리는 보통 70년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독수리가 40년을 살고나면 그 때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잠적을 해서는 약150일 정도를 혼자 지내게 됩니다.
혼자 지내면서 무엇을 하는가 하면 - 자기를 다듬습니다.
ㆍ그동안 무딜대로 무뎌진 부리를 다듬고,
ㆍ제멋대로 자라 거칠어진 날개를 다듬고,
ㆍ가공할 무기로 사용해야 할 발톱을 다듬고 하면서 자기 자신이 다듬어야 할 것들을
다듬습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비록 미물이지만 얼마나 훌륭합니까?
링컨은 말하기를 사람이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 마음을 고약하게 쓴 사람은 주름살도 「이 놈!」한다는 거에요.
그렇지만 마음을 곱게 쓴 사람은 주름도 예쁘게 잡힌다 고 합니다.
<롬 12:1-2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먼저 새로워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롭게 되어서 우리 주변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오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지금 서울 경찰청 경찰 선교 후원회장으로 있는 윤응섭 장로가 1990년대 중반 경기도 경찰청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ㆍ교통순경들에게 교통위반자가 돈을 주면 그걸 받아 가지고 와서 신고하게 만들었습니다.
ㆍ신고하면 포상하였습니다.
ㆍ물론 돈 준 사람에게도 불이익을 주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경기도 관내에서 교통위반하고 나서 돈 주고 돈 받는 관습이 없어졌습니다.
그 후 서울에서도 없어지고 - 지방에서도 없어졌습니다.
여러분ㆍ예수 잘 믿는 사람ㆍ예수 잘 믿고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 하나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문제는 「나」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달라지므로 내 교회가 달라지고, 주변이 달라지고, 사회가 달라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서 전하고, 가르치고, 나도 지키고 그리고 내 형제도 지키게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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