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의 은혜

제 목   찬송의 은혜
 
시 150:1-6

“찬송의 은혜”


♧ 오늘 우리는 “시 150:1-6절” 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에 의지해서 -.

「찬송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증거 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 찬송할 때 슬픔과 두려움이 물러가고 위로와 평안과 즐거움이 임합니다.

★둘째 : 찬송할 때 악귀가 물러갑니다.

★셋째 : 찬송할 때 대적이 물러갑니다.




찬송과 노래와 복음성가를 구별해서 말하라고 하면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부르는 것은 찬송입니다.

내가 중심이 돼서 부르는 것은 「노래」입니다.




그리고 이 노래와 찬송 중간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복음성가」입니다.

찬송과 찬양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 무엇을 찬송해야 합니까?




먼 저 :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찬송해야 합니다.

그다음 :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찬송해야 합니다.

그리고 : 앞으로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 주실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사 43:21절> 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이유가 설명되어져 있습니다.

- “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트라고 하는 신학자는 말하기를 기독교는 찬송하는 종교이다.

- 무신론과 불가지론에는 찬송이라는 것이 없다.



그것들은 도대체 찬송할 만한 것들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고 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찬송이 있는 종교입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은혜가 너무도 크고 놀랍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불교계에서 1600년의 긴 역사를 가진 자기네 종교보다도 100여년 밖에 안 되는 짧은 역사를 가진 기독교가 우리나라에서 그처럼 빨리 발전하고 국민들의 마음에 깊이 파고드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결론 가운데 하나로 기독교에는 불교에는 없는 「찬송」이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년 전에 자기들도 「찬불가」라는 것을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찬불가를 누가 만들어 주었는가 하면 기독교 장로회 소속 교회의 집사이면서

음악대학 교수로 있던 나운영씨가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운영씨는 그 때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라는 찬송가 411장을 놓고,

「예수」라는 말을 「부처」라고 고치고 「성경」이라는 말은 대신 「불경」이라고

고쳐서 「부처 사랑하심은」이라고 하는 찬불가 제1곡을 만들었습니다.




가사는 틀리지만 곡은 찬송가 411장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그 때 뜻있는 분들이 말하기를 ...아무리 기장교회 집사라도 그렇지 ...

어떻게 그런 식으로 「찬불가」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하면서 탄식을 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의 자리에 부처를 앉혀 놓는다고 해도 부처가 소망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예수님 대신에 부처를 찬양한다고 해도 불교에 구원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우리의 찬양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본문에서는 그 하나님을 찬양하되 극진히 찬양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6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첫 째 : 찬송할 때 슬픔과 두려움이 물러가고

위로와 평안과 즐거움이 임합니다.




<고후 1:3-4절> 에 “(3)찬송하리로다 그는 위로의 하나님이시요

(4)...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시는 이시로다”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ㆍ찬송할 때 슬픔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루만져 주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다고 하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이유를 모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죄의 담이 있으면 찬송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입에서 터져 나오는 찬송을 통하여 “정말 내가 은혜를 받았구나”

하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도 찬송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그 은혜가 소멸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 감동이 점차 줄어들면서 나중에는 다른 일에 파묻혀 버리고 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찬송을 하게 되면 그 은혜가 더욱 살아나게 됩니다.

더 풍성해집니다.

그 감동이 오래도록 지속됩니다.




ㆍ찬송하면 슬픔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위로가 임합니다.

ㆍ찬송하면 불안이 물러가고 평안이 찾아옵니다.

ㆍ찬송하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생기게 됩니다.



찬송은 세상노래와 다릇습니다.

세속 음악은 그 듣는 대상이 사람입니다.

세상노래는 아무리 아름다워도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찬송은 다릇습니다.

성도의 찬송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십니다.

찬송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듭니다.

하늘보좌를 움직이게 만듭니다.

그래서 찬송이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이 성도의 마음에 변화를 주는 것입니다.




찬송으로 인해 그리스도인에게 은혜와 감동이 넘치게 됩니다.

ㆍ성도 여러분, 이렇듯 찬송에는 영력이 있습니다.

ㆍ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인격을 다하여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 오늘 본문 <시편 150:6절> 에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 지어다 할렐루야”라고 했습니다.




내게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찬양은 보거나 듣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 구경꾼이 아니라 찬송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빌리 블레이는 “누군가가 나를 통 속에 가둔다면 나는 통의 구멍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라” 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찬송을 하는 것은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기쁘고 즐거울 때도 찬송해야 하지만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찬송해야 합니다.




<행 16:1-34절> 에 보면 바울과 실라는 고난의 깊은 밤에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들은 이유 없이 당하는 핍박 중에도 항변하지 않고 찬송했습니다(행 16:25).

그 찬송이 기적을 낳았습니다. 옥문이 열렸습니다.

간수와 간수의 가족이 다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문제의 해결을 원하십니까?

기도하세요.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귀에 들리는 것이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믿음 잃지 말고 기도하고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태양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자에게는 결코 어두운 그림자가 그 사람의 앞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입술에서도 바울과 실라가 했던 찬양의 고백이 흘러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가 저와 여러분에게도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역경이 있습니까?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 있습니까? 주님을 바라보며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6:30절> 을 보십시오.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두고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실 때 찬미하면서 가셨습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찬송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의 자리가 진동합니다. 처한 환경이 바뀝니다.

그러므로 가난의 착고, 질병의 착고, 고난의 착고가 끊어지도록 찬송합시다.

바울과 실라의 한밤중의 찬송이 저와 여러분의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 둘째 : 찬송할 때 악귀가 물러갑니다.




<삼상 16:23절>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 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선포하는 것이 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포하면 마귀가 벌벌 떨게 됩니다.



<약 2:19절> 에 “네가 하나님은 한 분 이신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ㆍ찬송할 때 귀신들이 떨고 질병이 낫고 귀신들린 사람한테서 귀신이 물러가는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여러분ㆍ구약시대에도 성령께서 활동하신 것 아시지요?

그렇지만 구약시대의 성령의 임재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이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성령의 임재는 철저히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성령의 임재는 성도의 구원의 보증으로 임재하십니다.

<엡 4:30절> 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구약시대에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삼상 16:14절> 에 보면, “여호와의 신이(성령께서)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시는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떠나셨다 고 했습니다.



대신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신이 그에게 들어가 그를 번뇌케 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신」이라는 말을 오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악신이 사울에게 들어가 활동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ㆍ또는 묵인하셨다 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악신을 직접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ㆍ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미치지 않는 영역은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마귀가 타락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괴롭히더라도(사 14:12) 그러나 사탄도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철저히 하나님의 통제를 받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욥 1:12).



사울의 경우를 놓고 볼 때, 성령께서 그를 떠나신 것은 그의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대신 악신이 사울에게 들어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어떤 이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다고 해서 그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내 삶과 내 영혼을 내가 지배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마 12:43-45절> 에 「빈집은 위험하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43)“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 되고,

수리 되었거늘”

(45)“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었느니라”




제가 이 말씀을 좀 풀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귀신이 일단 내 속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대신 성령께서 내 속에 들어와 좌정해 계시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귀신이 완전히 나를 포기하는 것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언제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하고 기회를 엿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틈이 보여면 얼른 다시 들어갑니다.

그러면 그 틈이 보일 때가 언제입니까? 내가 신앙생활 제대로 하지 않을 때입니다.

귀신이 다시금 나에게 들어올 때는 혼자 들어오지 않습니다.

다른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그 형편이 전보다 더 나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원하는 일은 하지 않고 원치 않는 일만 골라서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 망합니다. 사울도 망하고 가룟유다도 망했습니다.




여러분ㆍ집을 비워두면 위험합니다.

성령께서 나를 주장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그렇게를 못하고ㆍ내 안에 원치 않는 귀신이 들어왔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얼른 쫓아내야 합니다.

사울에게 들어간 악신을 쫓아낸 것처럼 쫓아내야 합니다.

사울에게 들어간 악신을 어떻게 쫓아냈습니까?

다윗이 수금을 들고 들어가서 손으로 탈 때 사울에게서 악신이 물러갔습니다(삼상 16:23).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때 기도만 -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찬송도 함께 해야 합니다. 찬송은 능력의 하나님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귀신이 그 찬송을 듣게 되면 벌써 기가 꺽이게 됩니다.




그때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더러운 귀신아 물러가라! 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귀신이 꼼짝 못하고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ㆍ예수 이름 앞에 사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도와 찬송으로 사탄을 이기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셋째 : 찬송할 때 대적이 물러갑니다.




<대하 20:15-22절> 에 (15)“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하고 (21)“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니”

(22)“그들(모압 암몬 마온 연합군)이 패하였더라” 고 하였습니다.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모압과 암몬과 마온 연합군의 침공을 받고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던 중에 여호사밧이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치러온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 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고 기도했습니다.

<대하 20:15절> 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선지자 야하시엘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말며 놀라지 말라 - 이 전쟁은 ...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너희는 서서 하나님의 구원 하는 것을 보라”(대하 20:15-1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여호사밧이 어떻게 합니까? 전쟁터에 군대 대신 찬양대를 앞장세워

내보냅니다.

그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너무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싸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는 찬양대에게 예복을 입혀서 - 찬양하면서 군대보다 앞서 나가게 한 것은 전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행동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여호사밧이 어째서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하였습니까?

ㆍ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그만큼 신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ㆍ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ㆍ이미 이 전쟁은 이긴 전쟁이라는 것을 그가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 밖에 없다 고 그가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하 20:21절> 에 보면, 그 때ㆍ대적을 향해서 찬양대가 앞서 나아가면서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도다”고 찬양했다 고 했습니다.

여러분ㆍ하나님께서 이 믿음ㆍ이 찬송을 받으셨을까요? 받지 않으셨을까요?

- 받으셨습니다.




여호사밧이 전쟁에서 이겼을까요? 졌을까요? - 이겼습니다.

<대하 20:23절> 에 “적진에 자중지란이 일어나서 서로 치고받고 싸우다가 한꺼번에

다 망해버리고 말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후군의 공격도 공격이었지만(대하 20:22)b 자중지란으로 피차 살육한 것이 더

문제였습니다.



여러분ㆍ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겁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 - 우리의 생각이나 방법을 초월해서

놀랍게 역사하십니다. 여러분ㆍ믿음의 기도와 감사 찬양이 이렇게 힘이 있습니다.




멀린 R.케로더스는 그의 저서 「찬송 생활의 권능」에서 정신 지체 딸을 둔 부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수년 동안 온갖 방법으로 딸을 치료하려 애쓰던 이들은 우연히 케로더스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 “역경 그 자체에 감사하고 그런 역경을 주신 하나님을 찬미 하십시오” 라고 하는 말씀이 선포 되었습니다.

부부는 고민했지만 말씀에 순종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저희는 주님이 저희를 사랑하시는 것과 저희 딸을 저희보다 더 사랑하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저희 딸에게 그런 병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다 이유가 있을 줄 알고 감사드립니다”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찬송했습니다.




그랬는데 놀랍게도 도저히 고칠 수 없을 것 같던 딸의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찬양과 감사는 우리의 삶을 대적하는 어떤 군대나 질병보다도

큰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이 상황이 안 좋고,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움의 터널 속에서도 우리가

찬양하며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찬양이 식어지지는 않았습니까?

내 마음 속에는 찬양이 없다는 분은 안계십니까?

나는 찬양을 모르고 산다는 분은 없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항상 찬송의 삶을 살아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평생 주님을 찬양하면서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통을 이기는 찬양의 승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찬양을 통해 승리를 체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감사로 찬송하는 가운데 마귀를 이기고 질병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전쟁에서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찬송을 통해 슬픔과 두려움을 물리치고 위로와 평안과 즐거움이 넘치는 여러분과 제가

다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