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나라

제 목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나라
 
제목 :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나라

본문 : 요 11:50-52절





♧ 3.1절 제89주년 기념주일인 오늘 우리는 “요 11:50-52절”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에 의지해서 -.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나라」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증거 해 드리겠습니다.




★첫 째 : 이 나라 이 백성이 모두 예수를 구주로 영접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둘 째 : 이 백성이 죄를 버려야 합니다.

★셋 째 :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독소를 제거하고 주안에서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져야

합니다.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전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부터 89년 전에 있었던 기미년 3월 1일의 대한독립만세운동

이었습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그들에게 압제 당하던 이 민족이 그 때에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면서 분연히 일어섰던 것입니다.

☆일본은 총칼로 우리를 진압했지만 우리는 끝까지 평화와 무저항주의로 나가면서

이 나라의 독립을 호소했었습니다.



그 때에 민족을 위해 희생한 애국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애국자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람들을 보게 되면, 거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목숨 바쳐 살아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공동체를 위해서 희생코저 한 그들의 정신은 위대한 삶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그 민족을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 죽으셨다”(52)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 곧 「이방 세계에서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위해서도 죽으셨다 고 했습니다.

「그들도 하나가 되기를 원하셨다」ㆍ「예수님께서 우리도 하나로 대우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유대민족으로 유대 땅에서 태어나셨고 유대민족의 애국자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모든 민족의 애국자도 되십니다.

우리 민족의 애국자도 되십니다.




☆ 첫째 : 이 나라 이 백성이 모두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50절>에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유대의 예루살렘 산헤드린 공의회가 모였을 때 당시 대제사장이자 산헤드린 공의회 의장이었던 가야바가 한 말이었습니다.

이 말은 다른 말이 아니었습니다. - 우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자! 그렇게

해서 유대 민족을 살리자! 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면, 가야바가 왜 이런 제안을 하였습니까?

그것은 백성들의 시선이 자꾸만 예수님에게 쏠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죽이기 위해서 한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본문의 배경을 먼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려내신

일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죽어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일은(요 11:1-44) 예수님이야 말로 부활과 생명이시오 신적 권능을 지니신 메시아이신 사실이 명확히 증거 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요 12:11).

예수를 임금 삼으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요 6:15).

그렇게 되니까 로마 총독부에 아부하여 권력을 쥐고 있던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들과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바짝 긴장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정치가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민심의 흐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의 유대 교권주의자들ㆍ지배세력들이 그래서 긴장하고 그래서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로마 총독부와 결탁해서 자신들의 이권을 찾고 권세를 누려왔는데 이제 그것을 잃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산헤드린 공의회로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산헤드린 공의회는 이스라엘의 최고 의결기관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사법권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공의회 제도는 모세 때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를 통과할 때 많은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문제를 모세 혼자서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모세가ㆍ각 지파에서 70인을 선정해서 모세를 도와 백성들의 송사를 재판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그 전통이 예수님 당시까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이나 장로들의 유전을 어기는 자가 발생하면 공회를 모으고 그 범법여부를 조사하여 결과대로 집행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공회의 의장인 가야바는 몇 사람의 말이 오고간 후에 문제의 해결은 간단하다고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민족을 위해서 제물이 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문제의 인물인 예수만 죽이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가야바의 주장은 외형적으로 잘못이 없어 보였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로서 로마의 학대를 받으면서 가난과 굶주림과 헐벗음과 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가 나타나서 천국복음을 전파 하더니 ... 이번에는 죽은 나사로를 살려낸 것입니다.

그래서 산헤드린 공의회가 그것을 문제 삼은 것입니다.

공의회의장 가야바는 저 예수란 자가 사람을 살렸으니 이제 모든 사람들이 저를 지지할 것이요,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추대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된다면 로마정부에서 가만히 있겠느냐?

군대를 동원하여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갈 것이다 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는 것이 우리

민족을 위하여 바람직한 일이라고 그는 말하였습니다.

얼른 보면 나라와 민족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개인의 안녕과 영달보다도 공동체의 안녕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정치학상의 금언을 들어서 한 그의 말은 -.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조국을 패망으로부터 건지는 일이라면 기꺼이 그 목숨을 바치도록 해야 한다는 그런 논리였습니다.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한다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그러나 그 이면에 어떤 의도가 숨어 있었습니까?

공공의 안녕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자기들이 싫어하는 사람ㆍ또는 정치적 경쟁자를

무고히 피를 흘리게 하겠다는 악한 의도가 숨어있었습니다.

이처럼 산헤드린 공의회 재판은 이미 결론이 나 있었습니다.



여러분ㆍ이렇게 각본이 짜여진 재판은 하나마나입니다.

지금 가야바는 한 사람을 죽여야 민족이 산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죄없는 한 사람을 죽임으로 자기들이 살겠다는 악한의도가 숨겨있었습니다.

따라서 “한 사람이 죽어서 민족이 망하지 않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어찌 알지 못하느냐” 고 한 가야바의 말이야 말로 너무도 비열한 말이었습니다.



이러한 가야바의 선동으로 인해 산헤드린 공회는 결국 그리스도를 죽이기로 결정하고 살해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53절).

마침내 그를 십자가에 내어주게 됩니다. 그런데 <51절>ㆍ<52절> 을 보십시다.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 말은 그가 스스로 말한 것이 아니요 그가 그 해의 대제사장 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 또 그 민족을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가야바는 악한 의도로 그런 말을 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말까지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용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야바의 말이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사역을 예언한 것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악인을 통해서도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심오한 섭리를 새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옛날 모세가 모압 땅을 지날 때 모압 왕의 뇌물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발람 선지자로 하여금 저주 대신 축복을 세 번씩이나 하도록 만드신 분이십니다(민 23:1-24).



또 나귀의 입을 통해서도 발람 선지자를 책망하게 하신 분입니다(민 22:28-33).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불신자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도답게 행치 않으면 불신자들도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그럴 수 있느냐” 고 책망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불신자의 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갈릴레오가 지구는 돈다 는 지동설을 주장하자 로마 교황청이 그런 말 못하게 막았습니다.

지동설을 취소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마침내 갈릴레오는 로마 교황청에 불려가게 되었고 거기서 지동설을 취소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문 밖으로 나오면서 -.

「내가 취소는 했어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고 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ㆍ산헤드린 공의회 의장 가야바와 로마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나와 우리에게 유리하겠는가 를 따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온 인류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요, 기독교 진리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ㆍ이 「예수」를 모든 민족이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민족이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지켜주십니다.

<시 127:1절> 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헛되도다”고 말씀했습니다.



☆ 둘째 : 이 백성이 죄를 버려야 합니다.




<잠 14:30절>에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가야바는 그의 장인 안나스와 함께 18년 동안이나(AD 18-36년) 유대인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였습니다<마 26:57ㆍ요 18:13>.




그리스도를 체포하고, 그리스도를 심문하고, 그리스도를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겨

준 장본인이 바로 가야바 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지 3년 후에 가야바가 대제사장직에서 쫓겨났습니다(AD 37년).

그리고 그 후 33년 후에는 유대나라가 완전히 망해서 2,000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떠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주후 70년에 로마의 티토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가서 반란군들을 제압 하면서 유대인 1백10만명을 학살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였습니다. 국토를 초토화 하였습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을 노예로 끌고 갔습니다.



악한 생각, 악한 의도, 악한 행위가 문제입니다.

죄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이 관영한 소돔성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성을 심판하실 때에 먼저 그 속에 의인이 얼마나 있는가를 살펴보셨습니다.




이 시대에도 의인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너무도 감사한 말씀이 있습니다.



<롬 3:23-2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을 의인 삼아주셨습니다.

여러분ㆍ우리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죄인 취급하지 않으십니다.

「의인」으로 대우해 주십니다.



그것은 여러분과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공로 의지하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마다 각 분야에서 저마다 목소리를 냅니다.

정치가들은 정치가들이 나라를 살린다고 열변합니다.

사업가는 경제 발전만이 나라를 번영시킨다고 말합니다.

군사 전문가들은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이 나라 안보의 최우선이라고 주장합니다.

교육가들은 새로운 지식, 조기 교육을 통해서 새로운 조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진보적인 사상가들은 사회를 개혁해야 나라가 산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의가 나라를 영화롭게 한다 고 말씀합니다.

죄가 백성을 욕되게 한다 고 말씀합니다(잠 14:30).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소망을 심는 자가 애국자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이 다 망하는 것처럼 떠들어 댈지라도 소망을 가지십시오.

아무리 사업이 안 된다고 해도 옛날 보릿고개 때 굶주리던 것보다는 낫습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 말해도 일제 때나 6.25 직후보다는 낫습니다.

전세방에 산다고 탄식해도 옛날 우리 조상들에 비하면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십시오.

만나는 사람마다 희망을 주십시오.




자녀에게도 희망을 심어주십시오.

자녀들에게 희망을 주는 아버지가 애국자입니다.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 여의도 광장에서 외쳤던 한마디가 지금도 이 민족의 희망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캐나다에 갔습니다. 아침 새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일본 동경에 갔습니다. 자동차 엔진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한국 서울에 왔습니다. 새벽 교회당 종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세계의 희망은 한국에 있습니다. 새벽에 깨어 기도하는 나라, 새벽을 하나님 앞에 바치는 나라 코리아가 세계의 희망입니다.” 하고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끝까지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주님은 살아계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나라를 지켜주십니다.

대신에 우리는 죄를 버리면 됩니다.




☆ 셋째 : 우리 안에 남아있는 독소를 제거하고 주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져야 합니다.




<51절>b-<52절>에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씀함이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자기 민족을 살리시고, 그리고 우리 한국 민족과 세계 모든 민족을

살리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 민족을 사랑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은 이 민족을 살리는 위대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가슴을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나쁜 독을 제거해 내야 합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속에 독이 들어와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일본으로부터 받은 수모와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남북 분단으로 말미암아 동족을 원수 삼은 독, 군사 독재자들에게 학대 받으면서 응어리진 독 등 이런 저런 독들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며칠 전에 뉴욕 필 오케스트라가 평양에서 미국 성조기를 당당하게 내걸고 연주회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평양에서 열기로 되어 있는 월드컵 축구 예선 경기에 참여하는 한국팀에 대해서는 애국가를 연주하지 못하도록 지금 평양당국이 막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사상의 독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남아있는 미움과 이기주의의 독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 일에 누가 앞장서야 합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 이 땅이 새로워지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복음이 이 민족에게 들어오면서부터 이 민족은 미신을 타파했습니다.

우상을 철거했습니다. 우매한 지식에서 깨어났습니다.

위대한 지도자들을 수 없이 배출했습니다.

민주주의 정신이 기독교에서 싹트게 되었습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은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라가

인천 제물포항에 발을 내디딘 날이었습니다.

이들은 의료와 교육봉사로 조선말기의 사회모순과 부패, 제국주의 침탈로 억눌린 민중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병원설립, 학교설립, 여성평등운동, 한글보급 운동 등 인간관의 변화를 가져온 혁명적

사건이었습니다.



1905년 일본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1910년 한일합병이 되면서 외세의 어두운 그림자가 조선반도를 덮었습니다.

당시 백성들에게 절실히 요청된 것은 위로와 용기와 희망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03년 원산에서 의료 선교사 하디의 철저한 낮아짐과 회개가

웨슬리식 부흥운동으로 발화돼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힘은 훗날 일본 식민통치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복음이 사회개혁과 해방의 힘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실제로 기미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 중 절반이 목사, 장로였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민중의 참여정신은 유관순 열사에서 정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3.1운동 이후 정치적 박해와 문화정치가 가해지자 한국교회는 성결운동과 사회계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절제회나 YMCA를 통해 금주운동과 금연운동, 계몽운동 등을 전개했습니다.

역사학자인 이만열 숙명여대 교수는 “3.1운동 당시 기독교인은 천도교의 10분의 1수준인 20만 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독립운동에서는 오히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기술하였습니다.



장로교와 감리교는 1885년부터 1909년까지 이화학당과 배재학당, 정신여학교, 숭실학교, 호수돈여고, 계명학교, 창신학교 등 38개의 학교를 서울, 평양, 원산, 목포, 해주, 대전, 부산, 여수, 대구, 전주 등지에 세웠습니다.

기독교 학교 720개에서 1만 7656명이 신학문을 배웠습니다.



해방과 건국 이후로 한국교회는 사회재건의 중추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비극적인 6.25 전쟁으로 수많은 고아와 과부, 빈민이 발생했지만 정부는 이들을 돌 볼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 때 기독교아동복리회, 선명회, 기독교세계봉사회, 홀트아동복지회 등을 회원으로 한 외국민간원조기관 한국 연합회(KAVA)가 1952년 세워졌고,

한국정부보다 더 많은 복지예산을 사용해 한 때는 ‘제2의 보사부’ 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외국 민간원조기관(KAVA) 한국연합회 소속의 128개 기관 중 50% 이상이 개신교 기관이었다는 점은 한국 사회의 재건에 교회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드러내지를 않아서 그렇지ㆍ 한국교회는 지금도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200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복지시설의 61.7%를 기독교에서 운영하고 있고, 천주교에서 19.8%, 불교에서 8.6%를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정신을 우리가 계속 살려야 합니다.

아니 더욱 헌신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감당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 민족이 잘되게 해야 합니다.

이 민족이 하나 되게 해야 합니다.

이 민족이 살고 죽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제 오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자기 목숨을 내놓고 죽어야만 애국이 아닙니다.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민족을 살리고 온 인류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면 그것이 애국입니다.

우리 민족 안에 남아있는 독소를 무엇으로 제거할 수 있습니까?

이 민족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처방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입니다.




애국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진정한 예수의 사람들이 다 되어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이 나라는 우리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