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5:22-26
“마라의 여정”
♧ 오늘 우리는 <출 15:22-26절> 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
「마라의 여정」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증거 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 물을 얻지 못한 광야 사흘 길은 인생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시련기를 가리킵니다.
★둘째 : 마라의 물은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같습니다.
★셋째 : 마라 우물가의 한 나무는 하나님의 구체적이고 은밀하신 사랑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에는 애굽에 머물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서는 장면과 -.
수르광야에서 마라까지의 삼일 길의 노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노정은 고난의 행군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 희망이 보이는가 싶더니 또다시 절망의 그늘이 그들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현장에 개입해 주셨습니다.
󰊱 첫째 : 물을 얻지 못한 광야 사흘 길은 인생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시련기를 가리킵니다.
본문 <22절>에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르광야로 들어서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의 능력을 찬양하며 신바람 나는 행진을 계속 했습니다.
본문 앞의 <1-21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기뻤습니다.
그들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뜨겁고 메마른 광야에서 사흘 동안이나 물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목이 말라...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한 여름 날씨보다 훨씬 더 무더운 -.섭씨 40도, 50도 나 되는 광야를 물 없이 행군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낙타는 여벌 물주머니를 따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막에서도 한두 달은 끄덕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릇습니다.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고도 40일 까지는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40일 동안 음식은 먹지 않더라도 -. <매일> 물은 마셔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물까지 안마시면 그 사람은 죽습니다.
물이 없는 곳에서는 식물도 살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물은 곧 생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물 없이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식물이든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처음에 애굽에서 나올 때는 나름대로 얼마씩의 물을 준비해 가지고 나왔었습니다.
그러나 그 물은 이미 바닥난지 오래였습니다.
그들은 비록 사흘 동안 이기는 했지만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이제 여행 중에 물을 만나지 못하면 그들도 꼼짝없이 죽을 판이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헉헉대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생존까지도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성경에 그들이 물을 얻지 못한 기간은 분명히 「사흘 동안」이었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 기간은 감당할 만한 기간이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 시련은 감당할 만한 시련이었습니다.
힘은 들고 고생은 되었지만 그렇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고전 10:13절>에 있는 말씀을 우리가 압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십니다.
내 능력도 아십니다. 나의 연약함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시련을 주시되 감당할 만한 시련만 허락하십니다.
<전 7:14절>에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그가 너희로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케 하사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생동안 평탄한 길만 걷게 하시지 않습니다.
도중에 시련기를 주십니다. 형통과 곤고를 병행케 하십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1)우리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입니다.
(2)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3)연단하시고 훈련하셔서 우리의 신앙인격을 다듬으시기 위해서입니다.
(4)단련하신 후에 그만하면 됐다! 하고 합격(合格)시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입니다.
시련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오지 않습니다.
시련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옵니다(히 12:8).
이것을 아는 사람만 시련의 때를 감사함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링컨은 일리노이주의 뉴 세일럼 이라는 곳에서 친구와 동업으로 조그마한 잡화상 하나를 경영했으나...잘 되지가 않아 빚만 잔뜩 짊어지고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만일 그 잡화상이 잘 되어서 날로 번창했더라면 그는 돈 버는 재미에 법률공부 같은 것은 아예 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 실패가 링컨으로 하여금 법률을 공부하게 하였고, 장차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서양 속담에 모험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는 말이 있습니다.(No Venture. No sgain)
처음부터 실패하기 위해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지만...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없으면 아무런 성공도 거두기 어렵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시련의 때에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약 1:2절>에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했습니다.
ㆍ그것은 우리의 시련 뒤에 -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좋은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ㆍ그러므로 시련의 때를 잘 이겨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어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둘째 : 마라의 물은 世上이 주는 즐거움과 같습니다.
물 때문에 고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드디어 마라에서 「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23절> 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마라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물이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즐거움이 역역한 모습으로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환호성을 발하였습니다. 이제는 갈한 목을 축일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했습니다.
참 시원한 생수를 마시게 되었다 고 좋아했습니다.
위기감 때문에 불안해하던 얼굴들이 모두 밝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안도는 잠시 뿐의 안도였습니다. 그 기쁨은 잠시 뿐의 기쁨이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 「물」은 써서 마실 수 없는 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23).
여러분, 이 마라의 물은 世上이 주는 즐거움과 같습니다.
마라의 물이 백성들에게 만족을 줄 것처럼 손짓하는 바람에 백성들은 큰 기대와 함께 그곳으로 달려갔었습니다. 그러나 그 물은 실망만을 안겨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는 우리에게 만족을 줄 것처럼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재물이 나에게 만족을 줄 것처럼 보여집니다.
권세와 명예가 나에게 -. 쾌락이 나에게 만족을 줄 것처럼 유혹합니다.
그러나 <전 1:2절>은 이런 모든 것을 소유하고 경험한 솔로몬의 입을 통해서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고 증거하고 있습니다(전 1:14).
죄와 함께 누리는 즐거움〈?반드시 후회와 아픔이 따릅니다.
<요 4장>에는 「수가성에 물길러 왔다가 예수님을 만나는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여인은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치우면서도 만족할 줄을 모르던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4:13-1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이 반색을 하면서 세상에 그런 물도 다 있습니까?
그런 물을 저에게도 주십시오! 그럽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가서 너의 그 남편 다섯을 데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4:16).
예수님의 그 말씀은,
(1)죄를 책망하는 말씀이요, 회개하고 떳떳한 삶을 살라는 권면이었습니다.
(2)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살 것이 아니라 -.
(3)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면서 살 것이 아니라 -.
(4)물 한 그릇 선뜻 내줄 수 없으리만큼 짜증스런 삶을 살 것이 아니라
⇒ 죄 사함 받고...영혼의 평안을 누리면서 -. 신령한 기쁨을 누리면서 살라! 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자신의 생의 목마름을 푸는 방법으로 물질과 향락을 택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끝도 없고 만족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물은 무엇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었습니까?
주님께서 성도에게 주실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요 7:38-39절>에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공급하시는 물은 곧 인간의 영혼 속에 공급하실 「성령」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공급하실 「물」입니다.
물은 갈증을 해소시켜 줄 뿐 아니라, 사람 몸에 「생기」를 줍니다.
물은 생명을 살리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은 씻어 줍니다. - 몸속에 있는 독소도 제거해 줍니다.
물은 몸을 부드럽게 합니다. 인체의 구조를 보면 - 70% 이상이 물로 되어있습니다.
ㆍ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수분이 마르고 굳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노인들이 넘어지면 뼈를 잘 다치게 됩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다릇습니다.
젊은이는 몸에 수분이 많은 연한 가지와 같습니다.
☆ 그래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성경」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는 「물」은 이와는 차원이 또 다릇습니다.
「성경」에, - 「예수님」께서ㆍ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물」은 분명히 「생수」이상의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14절)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짐승」은 자기 욕구만 채워지면 만족해합니다.
가끔 T.V에서 「동물의 세계」를 보다 보면 동물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하는 이들을 만나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물들이 본능에 의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 - 도덕적 가치관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물의 세계는 먹는 것, 자는 것, 번식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었어도 -. 아무리 값비싼 옷을 입었어도 -.
아무리 좋은 집으로 이사를 해도 -. 「그때 뿐」입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도 거기에 「참 만족」이나 「참 평안」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침대에 누웠을지라도ㆍ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는 사람이 수두룩 합니다.
사람은 겉으로 보면 「물질」입니다. 생리적으로 보면 「짐승」과 다를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불멸의 영혼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불멸의 영혼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전에는 결코 「만족」이란 없습니다.
인간이 느끼는 “갈증” 가운데 가장 시급하고 심각한 갈증은 「영적 갈증」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 성령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져야 합니다.
물은 불을 끌 수가 있습니다.「동력」을 공급하는 불은 끄면 안되지만,
☆내 몸을 병들게 하는 정욕의 불은 꺼뜨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이기심의 불도 꺼뜨려야 합니다.
☆미움의 불ㆍ분노의 불ㆍ혈기의 「불」도 꺼뜨려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꺼뜨릴려면 「성령의 생수」가 임해야 꺼뜨릴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 「성령의 은혜」를 돈 없이 값없이 와서 사라 고 말씀합니다.
<사 55:1절>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갑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사라!」고 말씀합니까?「사야 내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라」고 하는 말씀은,
ㆍ그것을 너희 것으로 만들라 는 뜻입니다.
ㆍ그것이 너희의 소유가 되게 하라 는 뜻입니다.
「돈 없이 값없이 와서 사라」는 말씀을 보면 그것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ㆍ주님 앞에 그냥 빈손과 빈 마음으로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ㆍ내 모습 그대로 가지고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ㆍ나와서 주님께 은혜를 구하면ㆍ「주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의
은혜를 물 붓듯이 부어 주십니다!
「은혜의 생수」를 물 붓듯이 부어 주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수」는 여름에도, 겨울에도, 밤에도 , 낮에도 쉬지 않고 솟아납니다.
그러므로 이 성령의 은혜를 힘입어 생의 목마름을 모르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어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셋째 : 마라 우물가의 한 나무는 하나님의 구체적이고 은밀한 사랑을
보여 줍니다.
본문 <25절>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 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달아졌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물 때문에 고생고생 하면서 이 「마라」에 도착하게 될 줄을 미리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때를 대비해서 -.
도저히 써서 마실 수 없는 마라의 물을 마시기 좋은 단물로 바꾸어 주시기 위해서 -.
미리부터 그곳에 한 나무를 기르고 계셨습니다.
벌써부터 그곳에 한 나무를 기르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너무너무 자상하신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의 실패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 자녀의 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에게 응답하셨습니다(25).
모세가 애굽의 궁중에 있을 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곳은 광야였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광야를 통과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무를 지시하시기 전에는 아무도 그 나무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ㆍ믿음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 말씀을 대할 때 믿음으로 아멘하지 않으면 -.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그 분이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여기 오늘 본문 <26절>에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임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인생의 육신의 병도 고쳐주시지만 특별히 영혼의 병을 고쳐주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질병을 고치는 것은 잠시의 유익을 주지만 영혼의 병을 고쳐주게 되면...영원한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는 크든지 작든지 사망을 가져다 줍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약 1:15절>에 말씀했습니다.
큰 바위만 물에 가라앉는 것 아닙니다. 물에 던지면 작은 돌도 가라앉습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져 내시기 위해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죄를 말갛게 씻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여러분! 죄를 사해주시고 상한 심령을 싸매 주시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 주시고, 질병을 고쳐 주시고,
쓸모없는 사람을 쓸모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고,
새사람으로 변화시키시고, 치료하시는 이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이 바로 십자가(十字架)입니다.
마라 우물가에 미리부터 한 나무를 기르신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미 오래전부터 작정하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마라 우물가의 한 나무가 쓴 물을 생수로 바꾸어 놓았던 것처럼,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죽을 목숨을 생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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