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3:1
“사랑의 예수님”
♧ 오늘 우리는 “요 13:1절”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에 의지해서 「사랑의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증거 해
드리겠습니다.
★ 첫 째 : 예수님께서ㆍ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 둘 째 :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 셋 째 :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요일 4:7-8절> 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ㆍ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 (8)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사랑” 이십니다.
여기 오늘 본문 < 요 13:1절 > 에 “예수께서 ...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성도들을 끝까지 붙들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절대로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변함이 없는 사랑ㆍ다함이 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쏟아 부어주십니다.
★ 첫 째 : 예수님께서 자기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본문> 에 보면,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라고 하였습니다.
이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날이 불과 하루밖에 남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이때는 이제 곧 예수님께서 대적 자들의 손에 붙잡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게
되는 긴박한 때였습니다.
바로 이런 때에도 예수님은 아무런 동요 없이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 「사랑의 진수」를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때의 주님의 사랑이야말로 전혀 가식이 없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전혀 꾸밈이 없는 순수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ㆍ우리 주님에게는 이미 -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위해ㆍ자기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누구나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순수해지고 진지해지고 담대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못할 일이 없게 됩니다.
미련도 포기합니다.
맺혔던 응어리도 풀고 원수진 일도 풀어버립니다.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달라지게 됩니다.
미국의 흑인 지도자였던 「마틴루터 킹」 목사는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죽은 후에
어떤 사람으로 평가 받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했던 사람”
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한 「모든 사람」이라고 하는 말 속에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흑인들을 멸시한 백인들도 나는 사랑 한다」고 하는 뜻이 들어있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고백입니까?
유월절 전에 -. 그러니까 주님께서 그날 밤에 잡히시기 전에 -. 바로 그날 저녁에 -.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던 이때야 말로 참으로
의미심장하고 엄숙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바로 이러한 때에 우리 주님께서 하신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신 일이었습니다.
여기 「자기 사람」은 - 누구를 가리키는가 하면
ㆍ예수님께 속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ㆍ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ㆍ구원해 내야 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자기 사람들을 사랑했다」고 하는 이 말씀은 - 결코 이기적인
사랑을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 오늘 성경에서 말씀하는 「자기 사람은 예수님께서 책임을 지고 구원해내야 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물론, 우리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주님 앞에 나오는 자들에 대해서는 그 생명을 주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는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으로 입증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ㆍ누가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습니까?
사실 우리 인간들의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이요 변하기 쉬운 사랑입니다.
가장 숭고한 사랑으로 불려지는 부모의 사랑도 여기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부부의 사랑 역시 주고받아야 하는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 부부간의 사랑도 돌아서면
남남이 되어버리고 마는 가변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다릇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강권하는 사랑입니다.
무조건적ㆍ무제한적 사랑입니다.
희생적 사랑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런 사랑을 저와 여러분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이 어찌 큰지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을 저와 여러분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사랑을 베풀어 주고 계십니다.
아무도 주님의 사랑에서 -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롬 8:35절> 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인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 무엇도 우리를 -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롬 8:39) 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의 이 사랑을 받고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 요일 4:18절 > 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에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주님의 사람의 능력으로 이제부터 그 두려움을 내쫒아 버리시기 바랍니다.
기쁨과 감사와 평안과 위로와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바꾸어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해 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절대로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ㆍ그는 능력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ㆍ그는 사랑이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랑으로 감싸주십니다.
★ 둘 째 :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본문에 “주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디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신다고요?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십니까?
세상이 어떤 곳입니까?
환난 많고 풍파 많은 곳이 세상입니다. 죄악이 관영 한 곳이 세상입니다.
바로 이러한 세상에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을 우리 주님께서 기억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 수고와 슬픔과 죄와 고통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고 약속하시면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부르시고 -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고 쉼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행복한 미래를 약속해 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결코 저와 여러분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십니다(요 14:18).
또 있습니다.
이 세상은 - 우리가 잠시 나그네로 다녀가는 곳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아닙니다.
< 벧전 2:11절 > 에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에게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나그네는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이고 언젠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도 떠나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면, 떠나고 또 떠나서 맨 나중에 어디로 가야합니까?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본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돌아갈 준비를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때가 되면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아버지께 돌아갈 수 있습니다.
< 요 14:1-3절 > 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사랑이 많으신 우리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으로 하여금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의 잠시의 삶으로 모든 것이 끝나게 하지 아니하시고 -.
참으로 복되고 영원한 나라를 예비해 놓으셨다! 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은혜와 이 사랑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성도는, 이 은혜와 이 사랑에 대해서 감사 감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 내용 가운데 하나를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가 싫었습니다.
너무 고지식하고 완고하고 감정이 메말라 있는 아버지가 싫었습니다.
아버지가 자녀들이 어렸을 때 손 한번 따뜻하게 잡아준 적이 없었습니다.
대신에 자식들이 잘못하면 호되게 꾸중하고 때리고 술 마시고 들어와서 집안을 온통 공포 분위기로 만들었습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볼 때마다 가슴에 분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은 그저 형식적으로만 아버지와아들일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버지가 병원 의사로부터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래 살아야 6개월 밖에 더 못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병원에 안가볼 수도 없고 해서 입원실로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그랬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이 왔다면서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평소에는 서로 말도 안하고 지냈는데 -. 병원 입원실에서 만났을 때는 달랐습니다.
아버지가 말씀은 안하시지만 - 아들아! 나는 너를 좋아 한단다!
「아들아 사랑 한다」고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 분의 눈빛에 역력히 드러났습니다.
병상의 아버지가 손을 내밀어 아들의 손을 잡고 자꾸만 만지작거렸습니다.
그런데도 이 아들은 - 아버지 빨리 나으세요!
「아버지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막상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
아버지가 참 안되었다는 마음도 들고-
이제는 아들의 마음이 많이 누그러져서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 사랑합니다! 하고 한 번 말씀 드리고 싶은데...
도무지 입에서만 뱅뱅 돌 뿐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하고 자기가 말하면 아버지가 너무너무 기뻐하실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많이 기운을 차리실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말」 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못했습니다.
그러기를 몇 번 거듭한 끝에 이 아들이 하루는 단단히 결심을 하고 가서
「아버지 사랑합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말을 듣고 아버지가 통곡을 하셨습니다.
통곡하시면서 아들아 내가 미안하다 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부등켜안고 울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 얘기를 해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혹 교회 나온 지는 오래 되었는데...
그렇지만 주님을 향해서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한 번도 진지하게 고백해 보지 못한 사람은 없느냐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 내미실 때...
내 쪽에서 자꾸만 멀리 도망가려고 하지는 않았느냐? 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랬더라도 괜찮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예수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하고 말씀하십시오!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내가 주님의 사랑에 푹 젖어 들 수가 있습니다.
★ 셋 째 :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여기 오늘 본문 < 요13:1절ㆍ하반절 > 에
“예수께서...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ㆍ우리 주님은 인류를 죄에서 사하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기로 작정하셨던...
처음에 먹었던 그 마음 그대로 변치 않고 십자가를 감당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주님의 「끝까지의 사랑의 절정」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의 허물과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의 패역에도 불구하고 실망이나 중단을 모르고ㆍ끝까지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여기 오늘 본문의 「끝까지」라는 말에 사용된 헬라어
“에이스 텔로스”(εί󰐠 τέλος) 는
(1) 생명 다하기 까지 (2) 또는 완전하고도 영원히 라고 하는 뜻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결코 부족함이 없이 완벽하게 사랑하시는 이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실로 가슴 뭉클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다는데 있습니다.
무조건적으로, 최선을 다해, 영원히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주님은 그 사랑으로 원수도 사랑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원수를 사랑하실 때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아십니까?
(1) 먼저, 원수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2) 다음, 원수를 이해하셨습니다.
(3) 그 다음, 원수를 용서하셨습니다.
(4) 그리고, 원수를 사랑으로 변화시켜 나가셨습니다.
주님께서 원수를 이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ㆍ우리 예수님의 이해는 끝까지의 이해이고 -.
우리 예수님의 용서는 끝까지의 용서이고 -.
우리 예수님의 사랑은 끝까지의 사랑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말할 수 없이 연약할 그 때에 (롬 5:6)
우리가 죄인 그대로 있을 그 때에(롬 5:8),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고 있을 그 때에(롬 5:10) 우리로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려고 ... 우리 주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주시기 위해서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ㆍ지금껏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ㆍ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랑해 주십니다.
이 주님과 세상 끝날 까지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어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오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 되어 지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점점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목청껏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사랑의 능력을 소유 할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미워하면서 살 시간이 없습니다. 사랑만 하면서 살아도 - 시간이 부족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그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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