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벌리 바라 봅시다

제 목   우리도 멀리 보십시다
 
히 11:17-26

“우리도 멀리 보십시다”


오늘 우리는 “히 11:17-26절”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을 의지해서 -.

「우리도 멀리 보십시다」라고 하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증거 해 드리겠습니다.




★ 첫 째 : 아브라함은 멀리 보았습니다.

★ 둘 째 : 이 삭 도 멀리 보았습니다.

★ 셋 째 : 야 곱 도 멀리 보았습니다.

★ 넷 째 : 요 셉 도 멀리 보았습니다.

★ 다섯째 : 모 세 의 부모도 멀리 보았습니다.

★ 여섯째 : 모 세 도 멀리 보았습니다.




<히 11장> 은 「믿음 장」입니다. - <히 11장> 은 구 신약 시대의 신앙의 인물들과 함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신앙 선진을 소개하면서 여기 <히 11:17절>에서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의 눈으로 멀리 바라보고 환영했던

사람들이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이 신앙 선진들에 대해 증거 한 말씀에

도전을 받고 - 새해를 향해 힘찬 발걸음 내딛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 첫 째 : 아브라함은 멀리 보았습니다.




<창 15:5절> 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게 하신 후에

그에게 수많은 하늘의 별들을 보여 주시면서 앞으로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고 말씀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 하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창 15:6).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믿음 가지고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고 그때부터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롬 5:1).



그러면, 그때의 아브라함의 나이가 얼마였습니까?

그때가 그의 나이 75세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 사라는 65세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25년의 세월이 더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그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 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 “떠나라”고 하시면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려라 고 하시면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바 치 라 고 하시면 바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믿 으 라 고 하시면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 지금까지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에 자기 인생을 걸었습니다.

그는 이성에 설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체험이나 증거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말씀과 함께 출발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결단은 보통 결단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었습니다(수 24:2).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이주할 때의

이야기를 생략하고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가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에 그가 즉시 순종했던 기사만 다루고 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뼈를 깍고 살을 에이는 듯한 고통을 겪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

ㆍ반문하지 않았습니다.

ㆍ지체하지 않았습니다.

ㆍ불평하지 않았습니다.

ㆍ그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만약 그때에 아브라함이 코앞에 있는 자기 아들만 바라보았다면 그 시험을 이길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 둘 째 : 이삭도 멀리 보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이름은 출생 전에 지어졌다고 하였습니다(마 1:21).

그런데 이삭도 보면, 그의 이름이 출생 전에 지어진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 17:19).



<창 17:19절> 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삭 역시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이 워낙 탁월했기 때문에 이삭의 믿음이 돋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은 이삭 역시 훌륭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빌 2:8절> 에 “예수께서 -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삭에게도 그런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사람이 이삭이었습니다.



★ 이삭이 청소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그때 이삭이 번제물이 되기 위해 - 아버지 아브라함에 의해 모리아 산에서 결박당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창 22:1-14).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모순이었습니다.

이삭이 볼 때에도 그것은 말도 안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 이삭은 묵묵히 아버지에게 순종하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순종함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랐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삭은 어디를 가면 먼저 하나님께 예배부터 드렸습니다.

어디로 이사를 하게 되면 먼저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창 26:25절> 에 “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라”고 하였습니다.또 있습니다.

이삭은 임종 시에 예언자적 통찰력을 가지고(본문 20절) 먼 앞날을 내다보면서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습니다(창 27:27-40).




☆ 셋 째 : 야곱도 멀리 보았습니다.




사실 야곱은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변화되기 전의 야곱의 모습이었습니다.

추하고 그러면서도 약했던 야곱의 모습은 인생의 석양이 가까워지면서 많이

다듬어지게 되었습니다.

얍복강 나루에서 그의 생의 대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성난 형 에서가 거느린 400명을 앞에 놓고 그는 필사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려 씨름하듯

기도하였습니다.



ㆍ밤이 맞도록 기도하였습니다.

ㆍ환도 뼈가 부러져 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사자를 향하여 -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나는 당신을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고 하였습니다

(창 32:26).



그때 야곱에게는 재산에 대한 요구보다 생명에 대한 요구가 더 절실했습니다.

야곱은 바로 그 기도를 통해서 - 속이는 자 야곱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자ㆍ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저주신 자 「이스라엘」로 거듭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 그는 포기 할 줄도 아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창 43:14절> 에 “내가 내 아들 베냐민을 잃으면 잃으리라”고 야곱이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전 같으면, 야곱의 입에서 절대 그런 말이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엄마를 따라 시장(市場)에 갔습니다.

엄마가 물건을 고르는 동안 아이는 먹고 싶은 「체리」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가게 주인이 눈치를 채고 아이에게 한 주먹 집어! 그랬습니다.

아이가 수줍은 듯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이 성큼 한 주먹 집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그걸 두 손으로 받았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까 가게 주인이 체리를 집으라고 했을 때 왜 안집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가 주면 - 아저씨는 손이 더 크니까 내가 집는 것보다 더 많을 거 아녜요.

그리고 눈치 보일 일도 없구요...

또 제가 두 손으로 받으면 보기도 좋고 많이 받을 수 있잖아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ㆍ요즘 어린아이들도 이렇게 영리하다니까요.

그런데요ㆍ욕심이 앞서면 그런게 잘 안보입니다.




여러분 - 바둑이나 장기 둘 때ㆍ옆에서 구경해 보신 적 있습니까?

구경해 보니까 어때요? - 내가 둘 때보다 훨씬 더 잘 보이죠 ㆍ

그래서 훈수하고 싶어지게 됩니다.

왜 내가 직접 둘 때보다 훨씬 더 잘 보일까요?

그것은 내가 꼭 이기겠다 고 하는 집착 없이 -.

객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얍복 강가에서의 기도 이후 이제 야곱은 멀리 볼 줄도 아는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멀리 바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창 49:10절> 에 보면, 그가 그의 아들 유다를 축복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

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마침내 그는 - 믿음의 눈으로 다윗 왕과 다윗의 후손으로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것까지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 넷 째 : 요셉도 멀리 보았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 두 아들 가운데 열한 번째 아들이었지만 야곱은 - 요셉이 그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낳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

그를 늘 장자처럼 생각하고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요셉이 17살 때 이복형제들에 의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거기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습니다.

<창 3장> 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는 눈앞에 있는 선악과만 바라보다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지만 -. 청년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동침 요구를 받았을 때 ㆍ

내가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이 큰 악을 행할 수 없다면서 그의 요구를 거절하였습니다.




여러분ㆍ 이것이 「코람데오의 신앙」입니다.

「코람데오」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라고 하는 뜻입니다.




또한 요셉은 기도하는 가운데 ... 그의 이복형들을 용서하였습니다.

훗날 애굽으로 곡식을 구하러 온 그의 이복형들을 만나서 요셉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이리로 보내신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 이십니다 - 이 어려운 때에 -.

이 기근의 때에 -. 고향에 있는 우리 가족들을 다 살려내시려고 ... 하나님이 나를

이곳으로 미리 보내셨습니다 그러니 형님들은 저를 보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창 45:5-7) 하고 말합니다.




여러분! 누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ㆍ기도의 사람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ㆍ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사람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ㆍ용서할 줄 아는 사람만 이런 말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갔을 때 - 자기를 광야 구덩이에 던져 넣어 죽이려다가 그때 마침 애굽의 상고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돈을 받고 자기를 노예로 팔아넘긴 그 형들만 늘 생각하고 있었다면 요셉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화병이 생겨서 오래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분한생각ㆍ고독감ㆍ배신감ㆍ절망감ㆍ치욕ㆍ체념ㆍ맺힌 한 때문에 결국 실패자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거기 애굽에서도 늘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 모든 시련을 믿음으로 이겨 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애굽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했습니다.

이렇게 성공한 사람이 성공한 땅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요셉이 죽으면서 무엇이라고 유언합니까?

“언젠가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실터인데 ... 그때는 내 해골도 꼭 같이 가져가 다오”(창 50:25) 하고 부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후 약400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면서 그 다급한 상황 가운데서도 요셉의 해골을 메고 나오지 않습니까? <출 13:19절> 에 보면 나와있습니다.

그때, 그 후손들이 요셉의 해골을 메고 나오면서 무엇을 생각했겠습니까?

과연, 우리 조상 요셉의 믿음대로 되는구나! 고 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 다섯 째 : 모세의 부모도 멀리 보았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아므람과 요게벳 이었습니다(출 6:20).

특별히 요게벳은 성경에 나오는 3대 현모 중에 한사람입니다.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와 함께 성경에 나오는 3대 현모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아므람과 요게벳은 매우 어려운 때를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히브리인 가정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모두 죽여버리라 고 하는 「바로」의

엄한 명령이 내려져 있던 때에 바로 그 현장인 애굽에 살고 있었습니다(출 1:16).

그때가 주전 1400-1500년경 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모세의 부모들은 임금의 명령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23절> 에도 보게 되면, “모세의 부모가 애굽 왕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고 모세를 석 달을 숨겨 길렀다”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 모세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그렇게 했다”고 하였습니다(23).




헬라어 성경원문에 “아스테이온 파이디온 토 에이돈”(&#940;στε&#943;ον παιδ&#943;ον, Τ&#972;&#973; ε&#7991;δον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아름다운 일을 위해 태어난 아이인 것을 예견하고」라고 하는 뜻입니다.

때문에 <행 7:20절> 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인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아므람과 요게벳은 모세가 태어났을 때 단순히 자식을 사랑스럽게 느끼는 부모의 감정만 가지고 그 아이를 보지 않았습니다.




ㆍ내가 어떻게 보느냐? 가 아니라 -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어떻게 보시느냐?

ㆍ이 어려운 때 왜 이 아이를 태어나게 하셨느냐?

ㆍ여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렇다 이 아이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주어진 아이다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ㆍ이처럼 모세의 부모는 모세의 얼굴에서 그 아이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주어진 아이임을 발견 할 수 있을 정도로 영감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 여섯 째 : 모세도 멀리 보았습니다




모세의 생애를 보면 기적과 같은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가 태어나서 생명을 보전한 것 자체부터가 기적 이었습니다.

모세는 영웅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미디안 광야에서 80의 나이에 떨기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장면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고 -. 애굽의 통치자 바로와 싸우면서 출애굽 하는 장면은 얼마나 위대한 드라마 였는지 모릅니다.




비스가 산(山) 에서의 그의 죽음은 또 얼마나 신비스럽습니까? 그의 시체는 하나님에 의해 감추어져 찾을 길이 없었다 고 하였습니다(신 34:6).




성경은 이 모세를 가리켜서 <신 33:1> 에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히 11:24절>도 「믿음의 사람 모세」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여기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 하였다”(24)고 하였습니다. 그의 신앙은 「거절」할 것은 「거절」하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는 공주의 아들이라는 자리를 거절 하였습니다.

명예, 부귀, 영화 가 나빠서가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이러한 지위와 환경이 믿음 생활을 하는데 거치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거절한 것뿐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이ㆍ 우리가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르는데 방해가 되고

결단에 영향을 주고 우리로 외식하게 만든다면 우리도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ㆍ모세가 자신의 지위와 환경이 믿음과 양립할 수 없음을 알고 과감하게 그것을

버렸던 것처럼 우리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 한 후에 그가 선택한 것이

무엇입니까? <25절> 에 보니까 →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일”이었습니다.

모세가 명예와 낙을 거절한 후에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는 삶이었습니다.




거기에 고난이 따를 것이 뻔했지만 그래도 그 길을 기쁜 마음으로 선택하였습니다.

ㆍ그 선택은 자율적인 선택이었습니다.

ㆍ그 선택에는 희열이 있었습니다.

ㆍ그 선택은 마지못한 선택이 아니라 뜨거운 마음의 선택이었습니다.

본문 <26절> 은 흥미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 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그 시대에 그리스도가 계셨습니까?

그 시대는 역사적으로 아직 그리스도가 오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 사람들도 믿음으로 메시아ㆍ 곧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한 그 삶은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삶 바로 그것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성경은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선택한 것은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절 한다」는 것은 “소극적 차원”이고,

「선택 한다」는 것은 “적극적 차원”입니다.



거절은 그 자체에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보다 나은 선택이 따를 때에 의미가 있습니다.

선택하기 위해서 우리는 거절해야 합니다.

더 좋은 것을 선택하려면 좋지 못한 것을 거절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예수 믿고 나서 ... 저는 이것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것을 하지 않습니다 하고 안하는 것만 이야기 하는 분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안하는 것에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거절은 선택을 통해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문제는 거절할 것을 거절하지 못하고 선택해야 될 것을 선택하지 못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ㆍ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삶을 세상의 가장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결단한 후에 잃은 것이 많았습니다.




명예와 부귀와 낙을 잃었습니다.

그는 좋은 환경을 잃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이런 것들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더 큰 재물로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상(常)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26).

이 분명한 가치관 이 그를 뜨겁게 만들었습니다.